[특파원 리포트] 대만 통해 본 진보 정부의 위기

지난달 초 크리스천 휘튼 전 미국 국무부 수석고문이 쓴 칼럼이 대만 사회를 뒤흔들었다. 제목은 ‘대만이 트럼프를 잃은 이유’. 라이칭더 총통(대통령 격)이 이끄는 현 대만 정권의 대미(對美) 외교가 조 바이든 전 미 대통령과 민주당의 ‘워크(woke·진보 진영의 ‘정치적 올바름’)’ 성향에 기울어지는 바람에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과 관계가 멀어지게 됐다는 게 요지였다. 현 부총통이자 전 주미 대표를 지낸 샤오메이친을 저격하는 내용도 있었다. 휘튼은 “미국 체류 당시 샤오 부총통은 좌파적 성향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으며, 트럼프와 그의 정책을 싫어한다는 것을 쉽게 노출했다”며 “그의 뚜렷한 친(親)바이든적 입장은 군사 부문 등을 비롯해 대만에 상당한 지원을 제공하려는 친대만 공화당원들을 소외시켰다”라고 썼다.
아무도 거론한 적 없던 휘튼의 도발적인 주장은 트럼프 집권 이후 묘하게 소원해진 미국과 대만 관계에 대한 그럴듯한 해설지가 됐다. 미국은 지난 관세 협정에서 대만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한국·일본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수준의 미국 투자를 약속했음에도 두 국가(15%)보다 더 높은 관세를 부담하게 된 것이다. 지난달 미국을 경유해 중남미 수교국을 순방하겠다는 라이 총통의 계획이 트럼프 정부의 거절로 무산된 일도 있었다. 휘튼의 주장이 대만에서 빠르게 힘을 얻자 여권은 “실제 분위기보다는 일부 극우파의 시각을 과도하게 반영한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휘튼의 글이 대만 사회에서 ‘트럼프’라는 화두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으로 자리 잡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자타 공인 ‘미국통’인 샤오 부총통조차 외교 실패의 원흉으로 거론되는 현 상황은 트럼프 정권 아래에서의 대미 외교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만·미국 혼혈로 한때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경력 대부분을 미국에서 쌓은 샤오 부총통은 민진당이 추구하는 강력한 친미 노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공화당·민주당 가리지 않고 대만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인사들을 섭렵했을 그의 대미 외교조차도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뼈아픈 실책이 타산지석으로 다가온다.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대만보다 비교적 유리한 협상 카드를 갖고 있긴 하지만, 한국도 처지는 다르지 않다. 최근 벌어진 미 이민세관단속국의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급습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동맹국을 배신하고 거기에 “좌파 정부라서”라는 황당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일은 트럼프와 매가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실용 외교’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진보 진영 논리로 무장한 측근 그룹에 둘러싸인 이재명 정부가 과연 이 난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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