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섬, 월미도] 5. 그리워도 닿지 못한 고향…마르지 않는 원주민 눈물
일제 국유화 논리, 111년째 귀향 발목
국방부·시는 피해 대책 떠넘기기 급급
원주민들, 전쟁 기억 속 19년째 위령제
응답 없는 태도에 원주민 목소리로 저항
정치권 '특수한 희생' 외면…법안 폐기
법적 뒷받침 없어…유족, 개별 소송 대응
진실화해위 보상 권고에도 정부 소극적
전문가 “사회가 원주민 소환·위로를”


"원주민들이 거주했던 토지는 1914년 조선총독부가 취득해 해방 이후 '귀속재산처리법'에 따라 대부분 국유화."
국방부는 2013년 '월미도 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 심의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국유지에서 거주했다"는 자료를 제출했다. 일제에 의한 월미도 마을 강제 철거와 이주 결과물인 조선총독부의 토지 취득, 국유화를 국방부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군이 주둔하는 동안 귀속재산 매수권이 소멸된 현실도 고려되지 않았다. 정작 1970년대 초반 미군기지를 넘겨받은 국방부는 내부 공문에서 마을 부지를 '징발 민유 재산'으로 표기했다.
그로부터 12년 후에도 조선총독부 국유화 논리는 또다시 되풀이됐다. 홍준호 인천시 행정국장은 이달 3일 기자 간담회에서 월미도 원주민 귀향 대책 질의에 "진상 규명이 전제돼야 하는데 국방부 쪽에선 1914년 이후 원주민이 말하는 터전에 대한 소유권 근거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월미도 마을을 침탈한 일제 식민 통치는 한 세기가 지나 국방부와 인천시의 '방어기제'가 됐다.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의 차이
지난 9일 월미도 원주민들은 마을이 있던 인천 중구 북성동1가 월미공원 전통정원에서 제를 지냈다. 75년 전 그날처럼 하늘은 맑았다. 민간인 희생자 넋을 기리는 위령제는 2007년부터 19년째 계속되고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인천상륙작전 75주년을 맞아 인천시는 12일부터 예산 17억4000만원(시비 15억6000만원)을 들여 일주일간 거리 축제와 문화 공연을 비롯한 기념 주간 행사를 개최한다. 오는 15일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 헌화' 행사도 예고됐다.
"우리가 바라는 귀향에 어느 누구도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인천시에 땅을 넘겼으니 인천시에 이야기하라고 하고, 인천시는 묵묵부답입니다."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는 지난달 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귀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천시장과 해군참모총장의 추모식 방문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규모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추모 행사에서 인천시장이 헌화한 건 지난해 유정복 시장이 처음이었다. 인천시장과 해군참모총장이 참석할 예정인 올해 헌화 행사는 인천상륙작전 기념식 당일 오후 2시5분부터 20분간 진행된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내 인천상륙작전 기념식과 재연 행사, 조형물 제막식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한인덕(80) 귀향대책위원장은 "인천상륙작전이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 수 없었겠지만, 국가를 위해서 희생당한 월미도 주민을 기억해야 한다"며 "기념행사를 크게 할 거면 원주민 희생과 귀향 문제부터 푸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특수성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월미도 원주민 귀향 요구에 응답하지 않은 건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17대와 19대 국회에서 특별법안이 장기간 계류 끝에 임기 만료로 폐기된 이후 월미도 관련 법안 발의는 20대 국회였던 2017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안상수 전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월미도 군부대 설치에 따른 월미도 이주자의 보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월미도 원주민 마을 폭격과 귀향 문제가 주목받지 못한 배경에는 '특별한 희생'을 둘러싼 판단이 자리했다. 2017년 국회 국방위원회는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월미도 이주자의 특별한 희생이 있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전쟁 직후 군부대 주둔에 따른 귀향 불가 사례는 월미도에만 적용된 특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없고, 이와 같은 특별법을 제정해 보상하게 되면 다른 유사한 보상 요구와 막대한 예산 소요가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수성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차이가 있다.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을 규명했던 김구현 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은 "융단 폭격 피해를 겪고 마을로도 끝내 돌아가지 못한 월미도 원주민은 국내 전체로 봐도 특수한 사례"라며 "미군 폭격과 주둔으로 인한 문제는 양국 정부 간 사안이라서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명백한 피해자가 있는 사건인데도 아무도 구제해주지 않는 건 국가 차원에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법적 뒷받침도 없는 월미도 원주민에게 사실상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다. 전쟁 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에 대한 배상 또는 보상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개별 소송하는 방법뿐이다. 월미도 원주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2013년 "소유권 또는 (귀속재산) 우선매수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과거사 관련 기존 법들에도 보상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시기 국군에 의한 경남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도, 미군이 총격을 가한 충북 영동 노근리 사건도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1996년과 2004년에 제정된 '거창사건법'과 '노근리사건법'에는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규정 없이 위령 사업, 의료 지원금 등에 대한 조항만 담겨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5년간의 2기 활동 종료를 앞두고 최근 '종합보고서'를 의결하며 진실 규명 사건에 대한 배상·보상법의 조속한 입법을 권고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비상임위원을 지낸 이상희 변호사는 "정부가 법률에 근거해서 전쟁 피해자를 구제해야 하는데, 희생자 유족들이 제기한 개별 법원 판결에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월미도 사례를 보더라도 인천상륙작전만 부각되고 피해는 언급되지 않는다. 원주민들을 사회가 소환하고 위로하는 게 귀향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태도의 차이
인천상륙작전 이후 월미도 민간인 희생과 귀향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배제됐다. 정부 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가 과거사정리법에 의해 규명한 결과도 수용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2013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진실화해위원회는 피해자 증언과 전후 월미도 주민 제적부를 근거로 100여명 희생자 발생을 추정했으나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태도에도 차이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결정한 노르망디상륙작전 역시 연합군 폭격이 빚은 과잉 살상 행위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다만 당시 피해가 집중됐던 프랑스 캉(Caen) 지역에 1988년 설립된 캉기념관은 '역사 기억의 장소' 역할을 수행한다. 인천연구원은 지난 5월 현지 조사 보고서에서 "캉기념관은 무기 일변도 전시와 승리에 초점이 맞춰진 기존 전쟁기념관과 달리 파괴된 마을과 수많은 희생을 기억해 전쟁의 참상을 알린다"고 설명했다.
전갑생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냉전평화연구센터장은 "성공과 결과만으로 인천상륙작전을 평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랑스는 2차 대전이 종전으로 향한 계기를 만든 노르망디상륙작전 과정에서의 피해를 조명한다"며 "전쟁에서 동반되는 민간인 희생이 부수적인 게 아니라 직접적 피해라는 것을 기억해야 인천상륙작전 의미도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월미도 원주민 피해는 여전히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묻혀 있다. 1951년 3월24일 월미도 원주민들은 인천시장에게 "부디 사정을 살펴 속히 고향으로 돌아가 살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진정했다. 2007년 4월4일 귀향대책위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에 "고향 마을로 돌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최소한의 인간적 요구는 그 어디에도 호소할 수가 없다"고 썼다.
그리고 지난달 7일 대통령실 앞 기자회견에서 귀향대책위는 "국방부와 인천시는 월미도 원주민 귀향을 서로 떠넘기며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흘렀어도 월미도로 돌아가지 못하는 실향민 기억은 75년 전 그날에 멈춰 있다.
▶ 관련기사 : [돌아갈 수 없는 섬, 월미도] 5. 전쟁 속 민간인들 희생…책임 없는 75년의 침묵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이순민·이아진·변성원·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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