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섬, 월미도] 5. 전쟁 속 민간인들 희생…책임 없는 75년의 침묵
충북 노근리에 피난민 몰려
美 공중 공격에 218명 희생
피해 지원책 의료지원금뿐
과거사 규명 사각지대 놓여


인천상륙작전으로부터 50여일 전인 1950년 7월26일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는 500~600명으로 추정되는 피난민이 몰렸다. 피난민 대열이 경부선 철길로 올라섰을 때 공중 공격이 시작됐다. 살아남은 민간인들이 갇힌 노근리 쌍굴을 향해서도 나흘간 사격이 이어졌다.
2006년 발간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보고서'를 보면 사망 150명을 포함해 218명이 희생자로 인정됐다. 희생자 가운데 10세 이하는 62명에 달했다. 발포 주체는 미군이었다.
노근리 사건은 1994년에야 피해자였던 정은용(2014년 작고)씨가 펴낸 실화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로 세간에 알려졌다. 1999년에는 AP통신이 보도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주목받았다. 한미 양국 정부는 2001년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유감을 표명했다.
2004년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노근리사건법)이 제정됐지만, 가해자 처리 문제는 미완으로 남았다. 전갑생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냉전평화연구센터장은 "한미 공동 조사까지 진행됐는데도 전쟁 당시 미군 자료가 완전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며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서 공개 자료마저 다시 기밀로 묶였다. 월미도 폭격 규명 역시 기밀 자료들이 공개돼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 사건은 과거사 규명과 배상·보상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근리사건법에도 피해 지원책은 의료지원금 정도만 포함됐다. 2022년 대법원은 노근리 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올 초까지 진실화해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한 이상희 변호사는 "한국전쟁 시기 미군이나 북한군에 의해 희생된 경우에는 법원에서 배상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한국군 관여 책임이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전쟁 피해자 전체를 조망하면서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월미도 폭격 사건이 미군과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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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이순민·이아진·변성원·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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