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일본인과 용산 전쟁기념관 1층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북한의 6·25 기습 남침 하루 만인 1950년 6월26일 우리 공군 조종사 10명이 급히 한국을 떠나 일본 이타즈케의 주일 미 공군 기지로 갔다. 당시 공군은 연락기, 훈련기만 있고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다. 일본에서 ‘벼락치기’로 전투기 조종술을 익힌 한국 조종사들은 고작 1주일 뒤 미군에서 넘겨받은 F-51 머스탱 전투기 10대를 몰고 돌아와 곧 실전에 투입됐다. 일본에 체류하며 연습한 기간이 워낙 짧았던 터라 희생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종사 10명 중 이근석 대령(훗날 준장 추서)이 가장 먼저 전사했다. 그는 두 번째로 출격한 1950년 7월4일 경기 수원 상공에서 북한 지상군과 교전하던 중 대공포에 맞자 그대로 적 탱크로 돌진해 장렬히 산화했다. 당시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어렵게 얻은 그 비행기(F-51)를 겨우 이틀 타고 전사한 것이 원통하다”라는 말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시 공간은 대략 1950년을 기점으로 둘로 나뉜다. 선사 시대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무렵까지의 전쟁사는 1층에서 간접 체험이 가능하다. 6·25 전쟁 기간 및 그 이후와 현대 한국군의 활약상은 2·3층에서 엿볼 수 있다. 그중 3층은 전란 당시 한국을 도운 유엔 참전 22개국에 고마움을 표하는 전시물과 조형물로 가득하다. 일본은 유엔 참전국이 아닌 만큼 3층에서 일본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 반면 1층은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부터 구한말 의병 전쟁, 그리고 일제강점기(1910∼1945) 독립 투쟁까지 일본에 관한 기록이 즐비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양국 간 과거사를 떠올리게 된다. 19세기 일본 등 강대국 군대가 쓴 일명 ‘개틀링 기관총’이 특히 그렇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 정부의 부탁으로 농민군 진압에 개입한 일본군이 구식 화승총과 죽창 등으로 어설프게 무장한 우리 농민들에게 난사해 무수한 희생자를 낳은 바로 그 무기 아닌가.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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