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평창·정선에 산다는 이유로…목숨값이 다르다

이문영 기자 2025. 9. 1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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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드라마 ‘영월 나이트’ ⑤목숨값이 다르다
치료가능사망률 10만명당 57.26명, 서울 강남 주민보다 21명 더 죽어
강원도 영월·평창·정선에서 심뇌혈관 환자 관외 이송률은 86.8%였다. 관외 이송률이 높을수록 중증 응급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도 높아졌다. 7월17일 영월의료원에 구급차들이 주차돼 있다. 위준영 김승하 피디 marco0428@hani.co.kr
드라마는 현실을 비추지만 차별적으로 비춘다. 드라마가 비춘 어떤 현실이 ‘프라임 타임’을 차지하는 동안 드라마가 비추지 않는 어떤 현실은 편성표에서 사라진다. 집만 나서면 선택할 ‘의료’가 널려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을 때 의료에 닿는 과정 자체가 ‘비상사태’인 사람들의 곤경과 막막함은 드라마 소재조차 되지 못한다. 의료뿐 아니라 ‘의료의 이미지’에서도 ‘대도시 밖’은 말간 공백이 된다. ‘의료 대란 시대’에 정부 정책 개편을 결정하는 기준은 시청률보다 생명이어야 한다. 한번도 방영된 적 없는 논픽션 드라마를 한겨레가 시작했다. 의료취약지역 공공병원 메디컬 드라마 ‘영월 나이트’. 10부작이다.

당직 의사 조승연(62·현재 외과 근무)은 “환자가 사망한 줄 알았”다.

5월26일 아침 6시33분. 119구급대원들이 응급실로 환자를 싣고 왔을 때 80살 남성은 ‘세미 코마’ 상태였다.

“남편이 보이지 않아요.”

이른 새벽에 119로 걸려온 전화가 다급하게 ‘실종’을 신고했다. 환자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가족들이 찾아 헤매다 찾지 못하자 119로 연락했다. 영월의 한 오지를 담당하는 작은 지역대에서 구급대원들이 출동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모든 동선이 파악되는 도시와 달리 육중한 산맥에 안긴 시골 마을에서 길 잃은 사람의 행방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원들이 2시간 넘는 수색 끝에 농수로 도랑에서 환자를 발견했다. 물에 빠진 채 사력을 다했을 그가 수로 터널 안에 누워 있었다. 얼굴과 몸 곳곳에 찰과상이 있었다. 체온은 ‘측정 불가’였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막 깨어난 시골길을 달렸다. 15㎞ 거리에 영월의료원(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이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는 잠옷 차림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의료진도 긴장했다. 몸 온도가 20도가 되지 않았다. 의식이 없고 맥박은 약했다. “한두시간만 늦었어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환자가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의료진이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항생제와 수액을 투여했다. 담요 안으로 온풍기 바람을 넣어 체온을 올렸다. 산소 농도가 개선되지 않자 흉부 엑스레이를 찍었다. 왼쪽 가슴에 기흉이 보였고 폐가 쪼그라들어 있었다. 가슴에 흉관을 삽입해 산소포화도를 높였다. “응급실에서 숨을 거둘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다행히 환자는 버텨줬다. 체온이 상승하자 맥박이 잡히고 혈압도 올라갔다. 의식은 응급처치를 마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조승연이 내과와 협의해 입원실로 올렸다. 내과 병상에서 환자는 의식을 찾았으나 의사소통 능력까지 찾진 못했다. 가족이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만약 영월의료원이 없었다면

중증 응급환자의 삶과 죽음은 시간이 결정했다.

만약 환자가 영월 밖으로 이송됐다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만약 영월의료원이 없었다면 영월·평창·정선에서 그를 살려낼 의료기관도 없었다. 민간병원들이 들어오지 않는 의료취약지역에서 만약 공공병원마저 자리를 비웠다면 환자와 가족은 다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 최후의 ‘만약들’이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등을 대고 막아선 것이 ‘의료 사막’의 지방의료원들이었다.

영월·평창·정선(영월권) 사람들은 목숨값이 쌌다.

강원도의 2023년 ‘치료가능사망률’(치료가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진다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조기 사망자 비율)은 인구 10만명당 49.26명(국립중앙의료원 헬스맵)이었다. 17개 광역시·도(평균 45.37명) 가운데 네번째(충북이 49.94명으로 최다)로 많았다. 수치가 높은 지역일수록 의료 인프라가 부족했고 죽음과의 거리는 가까웠다. 서울시민들(39.55명)보다 강원도민들이 9.71명 더 죽었다.

강원도 내 6개 중진료권(지역별 의료 서비스 단위로 광역단체인 ‘대진료권’ 내 시군구를 묶어 설정) 중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난 사람은 영월권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강릉권 45.04→춘천권 47.85→속초권 49.54→원주권 49.81→동해권 53.74→영월권 57.26명). 강릉권과만 비교해도 12.22명 차이가 났다. 전국 70개 중진료권 중에선 포천권(66.06명), 충주권(60.91명), 정읍권(59.4명), 논산권(57.84명), 해남권(57.59명) 다음이었다. 영월권 주민들은 중진료권 평균(47.18명)보다 10.08명 더 사망했다. 서울 강남·서초·송파·동작·관악·강동을 포괄하는 서울 동남권(36.01명) 주민들보다는 무려 21.25명이 더 죽었다. 근래 두 지역 간 차이가 가장 컸던 2022년의 경우 27.92명(영월권 62.32명, 서울 동남권 34.40명)까지 벌어졌다. 급성기 중증 질환을 만났을 때 그들은 영월·평창·정선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생존 확률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거주지 위치에 따라 생사 경계가 요동친다는 사실은 불평등 중에서도 생명과 직결된 가장 지독한 차별이었다.

안경희 간호팀장은 휘청거리며 영월의료원 응급실로 걸어 들어오던 50대 남성을 기억했다.

지역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병상에 눕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검사 결과 뇌출혈로 확인됐다. 의료원에서 대처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었다. 영월의료원엔 심장과 뇌를 다룰 수 있는 의사와 장비가 없었다. 긴급 이송을 해야 했으나 기상 상태가 나빴다. 날아오던 소방 헬기도 돌아갔다. 앰뷸런스에 실려 75㎞ 떨어진 원주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골든타임을 넘긴 환자는 결국 숨졌다.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많이 안타까웠”다. “우리로서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7월17일 진료실 앞에서 한 환자가 혈압을 재고 있다. 위준영 김승하 피디

“최대 2.8배.”

격차는 중증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관내’ 의료기관으로 이송되는 비율로도 나타났다. 같은 강원도 안에서도 원주권 환자는 97.0%(국립중앙의료원 ‘2022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가 관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영월권의 경우 34.2%를 제외하곤 군 경계를 넘어야 했다. 영월권의 심뇌혈관 환자 관외 이송률은 86.8%였다. “심장을 못 보면 심장과 관계된 병증들도 보기 어려웠”(조승연)다. “거꾸로 심장이 커버되면 연관 질환들도 감당할 수 있었”다. 전국 중진료권 중 관내 이송거리(구급대원 출동부터 병원 도착까지)가 가장 긴 지역도 영월권(49㎞)이었다.

“관외 의료기관으로 이송되는 경우 이송 거리와 이송 시간이 증가하여 중증 응급환자 이송의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증가함.”(‘모니터링 연구’)

“서울 사람과 영월 사람은 목숨값이 다르다”는 사실을 서영준은 영월의료원장 부임 뒤 절감했다.

“생명의 가치는 똑같다지만 현실에서도 그런가. 영월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죽거나 장애인이 될 확률이 월등히 높다. 영월 사람들도 군민이기 전에 국민이다. 국민이라면 어디 살든 동일한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몫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충북 제천의 한 민간 종합병원을 찾아가 업무협약을 맺었다. 대처 속도가 생사를 가르는 ‘심근경색과 뇌졸중 등 중증 응급환자들은 최대한 빨리 보낼 테니 신속히 치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공공병원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명과 직결된 가장 지독한 차별

“쓸개를 떼야 할 것 같은데요.”

7월7일 새벽 4시40분. 조승연이 보호자에게 설명했다. 보호자가 상황을 인지하는 동안 병상에 누운 환자는 말이 없었다. 응급실에서 안정을 찾고 돌아간 환자가 몇시간 만에 되돌아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배가 아파요.”

자정을 갓 넘긴 시각(0시25분) 지팡이를 짚은 92살 할아버지를 아들이 부축해 응급실로 들어왔다. 환자가 복통을 호소했다. “집에서 자고 있는데 요양병원에 계시던 아버지가 ‘너무 아프다’고 전화하셔서 제가 가서 모시고 왔다”고 아들이 말했다.

“구토도 하셨어요?”

조승연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안 했다”고 답했다. 엑스레이 사진만으론 뚜렷한 증상이 확인되지 않았다. 조승연은 “고령이시니 입원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1시간 뒤 조금 진정된 아버지를 출근을 앞둔 아들이 일단 모시고 돌아갔다. 3시간여 만에 환자가 응급실로 다시 왔다. 아들 대신 ‘바통’을 넘겨받은 며느리가 함께였다. “요양병원으로 복귀하자마자 열이 올랐다”고 했다. 40도를 육박하고 있었다.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시티)을 했더니 쓸개 주위로 하얀 테두리가 보였다. 급성담낭염이었다. 터지기라도 하면 패혈증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고민하던 조승연이 보호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수술해야 할 듯합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여기서 하기엔 위험하고 큰 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영월권의 하나뿐인 종합병원이자 책임의료기관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자체 진료·수술 능력은 중요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전국의 175개 병원을 ‘포괄 2차 종합병원’으로 선정했다. 지역 내 포괄적 진료 역량을 강화해 주민들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지 않고도 의료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였다. ‘진료 가능한 수술·시술 350개 이상’을 충족하는 164개 병원을 선별했다. 11개 병원은 2년 내 기준 충족을 조건으로 ‘예비 지정’했다. 영월의료원은 예비 지정 기관에 속했다. “심장 시술과 간단한 뇌 수술도 가능한 포괄 2차 종합병원으로 작동하려면 전문의가 70~100명은 있어야 했”(조승연)다. 188병상의 영월의료원에선 24명의 의사가 14개 과에서 진료를 보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중증 환자 대부분을 관외 이송하는 처지지만 지역 간 목숨값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지방의료원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서영준) 했다. “민간병원의 ‘조건’을 확충할 책임은 오너에게 있지만 공공병원은 정부의 책임이기도”(조승연) 했다.

지난 6월30일 오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응급실로 올라가는 한 환자의 휠체어를 다른 환자가 밀어주고 있다. 이문영 기자

“환자 전원 문의드립니다.”

새벽 5시22분. 보호자가 이송을 원하는 원주의 대학병원으로 조승연이 전화했다. 환자가 진료를 봤던 병원이었다. 조승연이 시티 촬영 결과와 간 수치 등을 설명하며 말했다.

“92살 남성입니다. 수술을 하셔야겠는데 여기서는 힘들 듯해서요.”

그가 휴대전화로 시티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원주에서 사진 확인하고 연락 주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간호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알렸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살갑게 돌봤다.

“아버지, 선생님들이 내가 딸인 줄 아나 봐. 나 아버지 딸 할까?”

10여분 뒤 “지금 와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외과 의사가 나오는 아침 8시 이후 다시 연락해보라”는 답이 왔다. 조승연이 보호자의 의사를 물었다.

“최대한 빨리 수술 여부를 판단받는 게 중요해서요. 제천으로 갈 생각도 있으세요?”

보호자가 동의했다.

“여기 영월의료원 응급실인데요.”

새벽 5시37분. 조승연이 제천의 종합병원에 연락해 ‘과정’을 반복했다. 시티 사진을 보내준 뒤 답변을 기다렸다.

“오라고 하네요. 앰뷸런스 부를 테니 남편한테도 알리세요.”

의사의 말을 전하는 며느리를 올려다보며 시아버지가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

“지금 큰 병원으로 가요. 아버지, 그새 아침이야. 우리 밤 꼬박 새웠어요.”

“밤중에 중증 환자가 오면 응급실도 한바탕 난리를 쳐야”(조승연) 했다. 환자를 받아줄 관외 병원을 찾아 연결하느라 의료취약지역 공공병원도 꼬박 밤을 새웠다.

“나오셨어요?”

조승연이 굳은 목을 풀며 인사했다. 아침 6시. ‘나이트’(전날 밤 10시부터)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이 ‘데이’(오후 2시까지) 근무자들과 교대했다. 출근한 안경희 간호팀장이 업무를 인계받으며 긴 숨을 들이쉬었다.

※6회에선 시골 공공병원을 지탱하는 간호사들의 분투와 의료취약지역 간호 인력 확보를 위한 병원·자치단체의 고충을 전합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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