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싶지만 엄마만 되고 싶은 건 아냐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5. 9. 10.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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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이토록 완벽한 불균형

마이카 버하르트 지음, 노지양 옮김, 길벗 펴냄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지칠 정도로 반복된 일상에도 만족하는 부모가 될 수 있길 바라.”

세계 정상급 등반가인 저자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쓴 5년간 일기를 묶었다. 험난한 암벽을 맨몸으로 오르던 여성이 ‘엄마’로서 부여받은 새로운 의무를 수행하며 마주한 감정의 파고가 세밀하게 엮였다.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하다가도 엄마만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는 그는 자주 ‘모른다’고 고백한다. ‘헌신적인 엄마이면서 운동선수가 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원하는 내가 잘못된 걸까?’ 힘겹게 한 발자국 나아가던 그는 다시 묻는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자신과 달리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배우자에 대한 질문과 의심, 분노, 상처가 날것 그대로 묻어 있다. ‘독박육아’를 방조하는 남편에게도 따끔한 충고가 될 책이다. 내 안의 무수한 나를 구원하고 싶은 한 여성의 처절한 기록.

 

포식하는 자본주의

낸시 프레이저·라엘 예기 지음, 장석준 옮김, 프시케의숲 펴냄

“자본주의에 맞서 겨룬다.”

요즘 국제무대에서 가장 치열한 반(反)자본주의 전사는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다. 시장 자유를 부정하며 국가가 인텔 등 민간기업의 지배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들’이 요동치는 현실의 반영이다.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가 경제(생산-분배)는 물론 사회적 재생산·자연·공권력·인종적 위계 등을 포괄하는 대단히 복잡한 질서라고 본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는 이윤율을 높이려는 본성 자체가 ‘이윤율 하락 경향’으로 귀결되는 체제였다. 프레이저는 자본주의가 수립한 사회질서를 스스로 갉아먹다가 위기에 처하는 체제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겪는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단지 공정과 분배 정의의 결여 때문만일까? 프레이저의 관점도 비판적으로 탐구해보시길 권한다.

 

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래빗홀 펴냄

“이 외로운 세계가, 그렇기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먼 행성이 고향인 ‘셀븐인’ 샐리 안에는 두 인격체가 있다. 취향도 성격도 다른 둘이지만, 이들은 류경아라는 한 인간을 사랑한다. 때로는 나보다 타 자아를 더 사랑하는 것 같은 경아의 눈빛 때문에 괴롭다. 요동치고 뒤섞이는 ‘나’라는 경계 때문에 둘은 더 이상 서로를 견딜 수 없다. 결국 셀븐인을 위한 ‘뇌신경조절술’을 받기로 결심하지만, 이 일로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 표제작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이토록 퀴어하고 치열하게 김초엽의 SF가 무엇인지 증명한다. 불가해하고 초인적인 가능성 앞에서도 모든 존재는 ‘자기 자신이 되고자’ 분투한다. 그래야만 타인을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SF는 사실 로맨스다. 김초엽은 이번에도 낯설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완성했다.

 

시 쓰기 안내서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펴냄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배울 수 있고 배워야만 하는 건 아주 많다.”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쓰는 법’이 아니라 ‘안내서’라는 말이 붙어서 그랬다.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대표작 한두 개쯤 주워 섬길 수 있는 유명 시인이 자신의 비기를 꺼내놓는데 이토록 겸손하다니. ‘법’과 ‘안내’ 사이의 간격을 상기하며, 그 사이에서 탄생하는 성실한 시의 언어를 따라 읽는 즐거움이 있다. 저자는 창작을 둘러싼 휘장을 걷어내는 데도 열심이다. 타고나는 것처럼 보이는 재능은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에”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경지를 이르는 말에 더 가깝다. 시인은 수없이 다시 쓰기라는 반복을 견딜 수 있어야 태어나는 존재다. 창작자가 아닌 독자로서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시가 태어나는 과정을 목격하는 즐거움이 있다. 문학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덩달아 더욱 다정해진다.

 

세상을 데이터베이스에 가둔 남자

매켄지 펑크 지음, 이영래 옮김, 다산초당 펴냄

“기계가 당신을 잘못 알 때가 아니라 당신을 정확히 알고 있을 때야말로 가장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원서 제목은 〈The Hank Show〉. 행크 애셔라는 인물을 다룬다. ‘데이터 융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폭풍 같은 삶을 살았다. 학교를 중퇴하고 도장공으로 일했던 그는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마약 밀수에 손을 댔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소질을 보인 그는 개인의 과거 기록을 분석해 ‘위험성’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큰 부를 축적했다. 범죄자와 실종된 아동을 찾아냈고, 9·11 테러 당시에는 테러리스트를 특정해 FBI 등의 주목을 받았다. 2013년, 행크 애셔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비영리 언론 〈프로퍼블리카〉 기자인 저자는 마약 밀수업자였던 행크 애셔가 천재 프로그래머, 사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다시 쓰는 자살론

김명희 지음, 그린비 펴냄

“헤아려보면 자살 문제는 여러 층위에서 정치와 연결된다.”

“각 사회는 그 국민을 자살로 이끄는 일정한 양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집단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통계청이 2024년 10월 발표한 ‘202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는 하루 평균 38.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저자는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이 세상에 나온 지 130여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살 공화국’ 멍에를 쓴 2025년의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현상’이라는 뒤르켐의 관점을 통해,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 각종 사회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5·18 희생자와 유가족, 이태원 참사 피해자 등 ‘자살 위기 집단’ 사례 연구 결과가 특히 눈에 띈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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