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 못 막아도 재난은 막을 수 있다[취재 후]

2025. 9. 10.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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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저수지 바닥이 말라 있다. 정효진 기자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 지난 8월 극심한 가뭄으로 50% 제한급수에 돌입했던 강릉시가 불과 열흘 만에 수도계량기의 75%를 잠그는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강릉시민의 식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3%대까지 떨어져 식수 공급의 마지노선이 사실상 무너졌다. 수도검침원이 다녀간 가정에선 평소 4분의 1밖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샤워나 빨래, 요리 같은 일상이 강릉 시민들에게는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됐다.

가뭄 상황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음식점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는 휴업을 당연히 예상한다는 듯 “문제는 과연 언제까지 문을 닫느냐”라고 했다. 주방 이모도, 서빙을 보는 아르바이트생도 휴가를 준다고 했다. 당연히 무급이다. 불편쯤으로 치부됐던 가뭄은 이제 강릉 시민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강릉 지역 가뭄의 일차적인 원인은 이상기후다. 한 번씩 큰비를 뿌려주며 영동 지역 가뭄 해갈에 도움을 줬던 태풍이 올해는 오지 않았다. 여름내 역대급 폭염을 만들어낸 뜨겁고 축축한 북태평양고기압이 태풍의 진로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장마라는 이름이 무색했던 올해 장마는 태백산맥을 넘지 못하고 영서에만 비를 쏟아냈다. 강릉시의 최근 6개월 누적 강수량은 386.9㎜ 평년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코앞에 있는 이웃 도시 속초는 안정적으로 생활용수를 공급 중이다. 1990년대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렸던 고통이 지하댐이라는 해법으로 속초시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강릉 가뭄을 단순한 기후재난을 넘어 인재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강릉시도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지하댐을 짓고 있지만, 올해 닥친 가뭄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양수기로 저수지 이곳저곳을 훑고, 바닥 평탄화 작업으로 한 방울이라도 더 모아내려는 사투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이호준 기자



강릉시가 지난 9월 4일부터 전국에서 답지한 생수를 시민들에게 배급했다. 1인당 12ℓ로 6일치다. 개인들도 햇반과 생수를 따로 구입해 쟁여두기 시작했다. 분쟁 지역 국제 뉴스에서나 볼 법했던 장면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는 최근 폭염과 산불, 폭우에 가뭄까지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기후가 빈발하고 있다. 오늘은 강릉이지만 내일은 또 어디에 문제가 생겼다는 뉴스가 들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이상기후 자체를 막을 능력은 우리에게 없다. 하지만 기후재난에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할 투자와 노력이 있다면 말이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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