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중국 전승절과 한반도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섰다. 이 사진을 보면서 195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절 10주년을 맞아 당시 이 세 나라를 대표했던 지도자 마오쩌둥 주석,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함께 찍은 사진이 생각났다. 이 사진에는 북베트남의 호찌민 주석과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의 모습도 보인다.
지금 국제 정세가 66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느냐는 질문도 뒤따랐다.
1953년 3월 스탈린 사후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개인 숭배를 공식적으로 비판한 1956년 2월의 소련 공산당 제20차 당대회를 마치면서 정치적 위상을 공고히 다졌다.
1958년 소련식 사회주의 건설의 대안으로 제시된 ‘대약진운동’을 통해 단기간에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했던 마오쩌둥은 그의 야심 찬 기획이 대량 아사자를 내면서 내부적으로 진통을 겪었지만, 소련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기 시작할 때였다.
전후 복구사업에 대한 사회주의권의 지원이 절박했던 북한도 내부적으로 권력 갈등을 겪었다.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이 주둔하고 있는 조건에서 영향력이 컸던 이른바 ‘연안파’와 소련에서 귀국했던 고려인 ‘소련파’의 김일성에 대한 도전이 있었다. 1956년 8월 ‘종파 투쟁’을 거치면서 김일성 유일 지도체계로 마무리되었다.
이같이 1959년 당시 세 나라는 모두 국내 정치 갈등을 겪으면서 외교적으로도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념의 틈새는 생겼지만, 사회주의권의 주도권을 다투었던 소련과 중국은 남부 베트남의 해방을 직접 지원하는 호찌민의 ‘인민 전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959년의 톈안먼 성루 사진은 이런 역사적 배경도 담고 있다.
그때로부터 66년이 지난 오늘의 모습은 어떤가. 그사이 베트남은 숙원이었던 통일을 이루었고 해체된 소련의 기둥인 러시아는 과거 소비에트연방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와 3년 반 넘게 전쟁 중이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이라는 대혼란을 겪은 후 덩샤오핑이 제시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내걸고 현대화의 길을 걸은 지 40여년 만에 미국의 주도권에 도전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중·소 이념 분쟁 속에서 주체라는 정체성을 고집했던 북한은, 독일 통일에 빗대어 나돌았던 체제 붕괴라는 온갖 예측에도 중국과 러시아 정상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이 톈안먼 성루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
‘다극체제로의 전환기’ 메시지
이번 중국의 전승절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가지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되는 현실 때문에 군사 분야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그것에 비하면 아직은 열세이지만 이를 따라잡는 데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으리라고 관측된다. 중국은 2030년까지 대만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에서, 2035년까지는 특히 핵 무력에서, 또 2040년부터 국경절 100주년을 맞는 2049년 사이에는 미국과 전략적으로 대등한 수준에 도달하거나 오히려 이를 추월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6월14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미국의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 열병식과 이번 중국 열병식을 비교하는 기사나 논평도 종종 보인다. 물론 두 나라의 열병식 문화는 다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어 최첨단의 각종 무기를 대량으로 선보인 중국은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미국 행사에는 동원된 병력 규모도 작았고,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 공교롭게도 당일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이어서 생일 파티를 여느냐는 비아냥과 함께 “왕은 없다(No Kings)”는 구호를 내걸고 트럼프를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도 있었다.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다. 결코, 목적 없는 수단을 생각하지 말라”는 프러시아의 군사 이론가 클라우제비츠(1780~1831)의 경고처럼 무력시위는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외부 세계에 전달하는 수단이다. 이번 중국의 전승절이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었던 동서 냉전의 종결 이후 성립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라는 세계 질서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세계는 이미 다극체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다는 것을 알린 메시지였다.
서방의 집단 방위체제인 나토와 경제 공동체인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과 관세폭탄을 둘러싸고 트럼프 행정부와 마찰은 있지만, 여전히 미국 중심 일극체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이번 전승절 행사 참석을 거부했다.
2007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안보를 위해 미국·일본·인도와 호주가 출범시켰지만 별 역할을 보이지 않았던 ‘쿼드’는 2017년 재가동됐고, 이에 더해 미국·영국·호주는 무기의 기술적 분야에 집중된 상호방위 협정인 ‘오커스’를 발족했다. 중국은 이에 ‘비공식적인 반중국 안보 그룹’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인도의 모디 총리는 전승절 행사에는 불참했으나 이보다 앞서 톈진에서 열린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 인도와 분쟁 중인 파키스탄, 이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회원으로 있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는 참석했다. 국경 문제 등으로 중국과 불편한 관계지만 ‘글로벌 사우스’의 다자협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다극체제의 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와 정치적 이해관계의 조정에 아직 여러 제약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서방 산업국가 G7이 좌지우지해온 세계 질서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 모색은 그동안 꾸준히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2006년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출범시킨 브릭스(BRICS)다. 현재 이란, 인도네시아 등 몇 나라가 추가된 이 기구의 가맹국은 세계 인구의 48%와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본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11%에 해당하는 G7의 이 비중은 30% 정도다.
남북 평화체제 착실한 구축 기대
바로 이런 세계 질서의 다극화를 위한 지구적 체제 구축에서 중국의 정치, 경제 그리고 군사 분야의 역할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것으로 예견된다. 이런 변화가 한반도의 미래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해야만 하는 과제를 제시한다.
일극체제가 다극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는 통제되기 힘든 지역적인 소규모 분쟁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쟁은 한국전쟁 때도 그랬지만 지역적인 분쟁이 아니라 3차 세계대전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이 오래가고 있는 휴전 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여전히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지각판이 만나 충돌해서 가공할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조산대(造山帶)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대만의 장래는 위에서 지적한 경제 분야의 각축에 못지않은 아주 중대한 문제다. 이 문제의 해결이 무력에 의해 진행된다면 그 충격이 곧바로 이웃인 한반도를 무섭게 흔들 것은 자명하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체제’를, 중국은 ‘북·중·러 삼각체제’를 적극 가동해 각각 이에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 구조의 저변에는 과거 한국과 베트남 전쟁처럼 자유나 민주주의, 또는 민족해방이나 사회주의라는 가치나 이념보다 자국 이익의 극대화라는 철저한 현실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수시로 제기하는 트럼프 행정부나 미국과의 대결에서 하나의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안정을 지원하는 중국도 이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이렇게 현실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맞아 우리는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지녔던 사고방식을 뒤돌아보아야 한다. 북한은 2023년 말 기존의 ‘동족 개념’에 기반을 둔 남북관계 및 통일을 거부하면서 한반도에 ‘적대적 두 국가’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 한편에서는 이를 통일포기론, 다른 편에서는 붕괴 직전에 놓인 북한을 향한 공세를 더욱 강화해야만 한다는 흡수통일론의 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북한의 입장을 오히려 철저한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본다면 한반도 미래에 대한 다른 시각도 가능하다. 전환기의 불안정을 우선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평화체제의 착실한 구축이다. ‘세계는 지금 평화냐 전쟁이냐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는 시진핑의 연설을 들으며 현실과 이상을 함께 조심스럽게 보듬고 가는 한반도를 상상해본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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