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있다. 전국에 잇다] '원조' 마산 아구찜
이은수 2025. 9. 9. 20:05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좁은 골목에 줄지어 선 아구찜집들의 간판 불빛이 일제히 켜지면 매운 양념 냄새가 골목 전체를 뒤덮는다. '아구찜 골목'으로 불리는 이곳은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명소다.
아구찜의 뿌리는 1960년대 마산 부둣가에 있다. 당시 어민들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아귀를 값싸게 내다 팔았다. 뼈가 많고 보기 흉한 생김새 때문에 '버리는 생선' 취급을 받았지만, 이를 콩나물과 갖은 양념에 넣어 찜으로 끓여내자 기막힌 맛이 탄생했다. 값싸면서도 얼큰하고 푸짐해 노동자와 서민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1970~80년대를 거치며 '마산 아구찜 골목'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손님이 몰렸다.
아구찜의 뿌리는 1960년대 마산 부둣가에 있다. 당시 어민들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아귀를 값싸게 내다 팔았다. 뼈가 많고 보기 흉한 생김새 때문에 '버리는 생선' 취급을 받았지만, 이를 콩나물과 갖은 양념에 넣어 찜으로 끓여내자 기막힌 맛이 탄생했다. 값싸면서도 얼큰하고 푸짐해 노동자와 서민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1970~80년대를 거치며 '마산 아구찜 골목'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손님이 몰렸다.

◇못생긴 생선, 서민의 지혜로 탈바꿈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구찜 골목을 걸으면, 김이 자욱한 찜통에서 매콤한 향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아구찜의 원조는 바로 이곳 마산이다.
아구, 즉 아귀는 과거에는 버려지던 생선이었다. 흉측한 외모에 살도 잘 부서져 상품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70년대 마산 어시장에서 값싼 아구를 어떻게든 팔아야 했던 상인과 주부들이 매운 양념을 더해 찜으로 만들어낸 것이 지금의 아구찜의 시작이다. 여기에 콩나물과 미나리를 듬뿍 넣으면서 비린내는 잡히고, 맛은 살아났다. 궁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푸짐한 한 끼를 나누고자 했던 서민의 지혜가 서린 음식이었다.
오동동 아구찜 골목에서 만난 손님들은 저마다 만족감을 드러냈다. 생아구찜을 맛본 중년 남성은 "전분이 들어가 걸쭉하면서도 감칠맛이 좋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반면 건아구찜을 즐긴 50대 여성은 "녹말이 들어가지 않아 칼칼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오동동 아구찜 거리의 '마산 특화 음식'은 이제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자랑이 되었다.

◇전국으로 퍼진 마산의 향토음식
1970년대 후반부터 아구찜은 외지인들 사이에서 '마산에 가면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알려졌다. 군항제 관광객, 출장 온 직장인들이 오동동 골목을 찾아 발길을 모았다. 매콤한 양념과 아구살의 담백한 맛, 아귀 껍질의 쫄깃함은 입맛을 사로잡았다.
1980년대 들어서는 부산, 서울 등 대도시에 아구찜 전문점이 속속 들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원조의 맛'을 찾는 사람들은 마산을 찾았고, 오동동 골목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상징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창원시는 아구찜 축제까지 열며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못생기고 버려지던 생선을 살려낸 서민의 음식이 어느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별미로 성장한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맛보기 힘든 건아구찜은 특히 마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별미로 통한다. 생아구찜부터 시작해 아구백찜, 말린아구찜, 아구수육, 아구불갈비, 아구해물찜까지 취향대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전통과 현대 사이, 아구찜의 새 도전
아구찜은 한때 버려지던 생선을 국민 음식으로 끌어올린 기적의 요리였지만, 지금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전통 방식의 상차림과 '빨갛고 매운 양념, 콩나물 가득'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는 젊은 세대의 취향과 거리가 있다. Z세대는 맵지 않은 메뉴, 색다른 비주얼, 간편한 식문화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부 업소들은 아구찜 위에 곱창이나 우삼겹을 곁들이는 퓨전 메뉴를 시도하며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그러나 '치즈 아구찜'이나 '크림 아구찜' 같은 급진적 변형 메뉴까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반면 간편식 시장 진출은 활발하다. '생아구찜 밀키트', '순살 아구찜 밀키트'가 온라인에서 판매되며 맞벌이 가정과 1인 가구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다만 매장에서 맛보는 풍미를 집에서 얼마나 구현할 수 있느냐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아구찜이 단순한 한 끼를 넘어 지역 정체성과 직결된 문화 콘텐츠라는 점을 강조한다. 마산대학교 이상원 교수(한국 조리기능장 심사위원)는 "현재 아구찜 상차림은 단조롭고 과거지향적"이라며 "달라진 시대에 맞게 보다 깔끔한 상차림과 새로운 요리 개발이 필요하고, 손님 취향에 맞는 인테리어와 마케팅도 적극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양한 소스 개발, 1인분 단위 소포장, 체험형 음식문화 콘텐츠 등 변화가 뒷받침될 때, 아구찜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향토 음식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예전처럼 자정까지 이어지던 밤문화는 사라졌다. "예전엔 밤 12시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8시 반이면 뚝 끊겨요."라는 상인의 말은 달라진 소비 문화를 보여준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 흐름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는 점은 마산 아구찜이 풀어야 할 숙제다. "아구찜은 서민의 눈물과 웃음이 배인 음식이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와 글로벌 시장을 향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오동동 한 상인의 말처럼, 아구찜은 새로운 도전의 역사 속에 있다.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오동동 아구할매집 한유선 대표 '탁구 라켓 대신 아구찜 솥을 잡다'
아구찜 골목의 맥을 잇는 힘…'악바리 근성'으로 버티는 3대째
오동동 아구할매집(마산합포구 아구찜길 13)을 지키는 이는 올해로 아구 요리 27년 차에 접어든 한유선 대표다. 그는 잘나가던 탁구선수였다. 현정화 선수와도 한때 맞붙은 경험이 있을 정도 였다. 그러나 카누 선수였던 남편과 결혼해 시집온 뒤, 시어머니에게서 '아구찜의 모든 것'을 배워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60년전 할매는 탁자 몇개만 놓고 '오동동 초가집(60년대)'이란 상호를 걸었다.
"둘째를 낳고 시어머니 일을 돕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설거지와 아이 어린이집 데려다주는 일부터 했어요. 시어머니는 음식에 칼같으신 분이었죠. 된장, 육수, 불 조절까지 하나하나 눈치껏 배우고 몸으로 익혀야 했습니다. 울기도 많이 했어요. 손님들이 '간이 안 맞다'고 항의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고 눈물이 핑 돌았죠."
시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에는 두려움이 더 컸다. "손님들이 시어머니를 찾으시던 때라 가게가 휘청일까 봐 쉬지도 못했어요. 그때 하루하루 버틴 게 다 근성 덕분입니다. 시어머니께서도 제 성격을 보고 '너는 악바리'라 하셨죠."
한 대표는 신선한 재료를 고집한다. "아구는 뻘에서 살아야 제맛이 납니다. 포항이나 구룡포에서 나는 생물이 신선하지요. 요즘은 생물찜, 수육, 건아구찜까지 다양하게 찾으시는 단골이 많습니다. 냉동아구가 보편화됐지만, 여전히 생물을 고집하는 건 손님 입맛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도 토로한다. "생물 아구 수급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기후위기도 그렇고, 양식이 안 되는 생선이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늘 재료 구하러 남해, 포항, 부산까지 직접 다녀야 하지요."
한유선 대표의 바람은 단순하다. "우리 집만 잘되는 게 아니라 골목 끝까지 아구찜 가게가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손님들한테 '맛있다'는 소리 듣는 게 가장 큰 힘입니다."
탁구 라켓 대신 아구찜 솥을 붙잡은 지 27년. 운동선수 시절 길러진 근성과 악바리 정신이 오늘의 그를 버티게 했다. 오동동 아구찜 골목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한, 마산 아구찜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은수기자 eunsu@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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