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근로자 감금 사태로 불거진 韓의 느슨한 비자 발급 관행…정부 조치 필요
소기업들, 비용 절감·시간 단축 위해 우회 경로 택해
일본, 대만은 소기업들도 E 비자 발급 활발
대미 투자 규모 상응하는 대우 필요하단 지적도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무자 300여명이 체포돼 논란이 된 가운데, 우리 기업들의 느슨한 비자 발급 관행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원칙적으로 미국에서 근무에 투입되려면 출장자는 E(상사 주재원·투자사 직원), H(임시 근로자), L(일반 주재원) 비자 등을 받아야 하나, 기업들이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전자여행허가제(ESTA)나 B(상용관광비자)에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기업이 대만·일본처럼 E 비자 발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9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 기업은 주로 B 비자를 활용해 미국에 인력을 파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B 비자는 업무를 위한 B-1 유형과 관광을 위한 B-2 유형으로 나뉘는데, 이중 B-1은 미국 내 비즈니스 회의나 계약, 세미나 방문에 한해 6개월간 체류를 보장한다. 미 국무부가 공개한 비자 발급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이 발급받은 B 비자는 1만5495건으로, 전체 발급 건수(7만3167건)의 21%에 달했다. 약 22%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한 F(유학생) 비자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ESTA도 흔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ESTA는 미국에 무비자 상태로 일시 입국을 허가하는 증서로, 한국인이라면 90일 이하 단기 관광 및 출장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 ESTA 소지자는 B 비자 소지자와 마찬가지로 미국 내 노동 혹은 수익 창출이 금지되는데, 제품 설치나 수리, 교육 등은 예외적으로 인정돼 암묵적인 우회 경로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김익태 미국 변호사는 “ESTA의 경우 최대 72시간 내 처리가 완료돼 신속한 인력 투입에 용이하다”며 “이를 활용한 인력 파견이 관행으로 자리잡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B 비자와 ESTA를 활용한 인력 투입은 특히 소규모 기업들을 필두로 이뤄지고 있다. H 비자는 매년 3월쯤 무작위 추첨으로 발급이 이뤄지기에 현실적으로 활용이 불가능하고, L과 E 비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인력 파견 시 일반적인 주재원 비자로 알려진 L1 비자를 주로 활용한다. 발급까지 약 6개월 걸리며 비용은 인당 50~100만원 선인데, 법인 설립 기한 등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소규모 업체들은 대신 E2 비자 발급이 권장되는데, 이는 L1에 비해 요건과 비용은 덜하지만, 납기를 맞추기 위해 수시로 인력을 파견하는 업체들이 감당하기는 여전히 부담이 따른다. 이번 조지아 공장 단속에서 체포된 직원들 또한 대부분이 협력업체나 파견업체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외 국가의 경우 E 비자를 활용해 합법적으로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발급된 E 비자 건수는 약 1만7000건으로, 한국(약 6900건)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L1 비자 건수(약 7000건) 대비 2배에 달하는 수치로, 일본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방식을 통해 인력을 파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만 또한 L1 비자(약 1800건) 대비 E 비자 건수(약 3300건)가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L1 비자(약 6600건) 대비 E 비자 건수는 사실상 1:1 수준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정용 미국 변호사는 “일본과 대만의 경우 대기업이 아닌 협력업체더라도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강점이 있는 강소 기업들이 많아 미국에 활발하게 진출해 있다”며 “반면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미국 진출 규모가 작고, 장기 파견 인력이 아니라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기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를 고려했을 때 미국 측이 별도의 비자 프로그램을 신설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액은 총 150조원에 달하며,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이뤄지고 있음에도 비자 발급 절차는 여전히 과도하게 경직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활동 중인 위자현 변호사는 “일본에선 도요타, 대만에선 TSMC 정도가 대규모로 투자한 데 비해 한국은 모든 업종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투자를 감행해 왔다”며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의 E4 비자를 신설해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2012년부터 E4 비자를 신설하는 ‘한국 동반자법(PWKA)’ 입법을 위해 미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 왔다. 최근 10년간 E4 비자 신설을 위해 로비단체에 쏟아부은 돈이 550만달러(약 76억3000만원)에 달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수확은 없는 상태다. 위 변호사는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비자 발급 문턱이 대폭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정부의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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