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 이채민, 열흘의 기적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5. 9. 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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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폭군의 셰프' 이채민 / 사진=tvN

2021년 tvN '하이클래스'로 데뷔한 이채민은 이제 4년 차 배우다. 나이는 만 스물다섯. 2023년 tvN '일타스캔들'에서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으로 눈도장을 찍었고, 이듬해 넷플릭스 시리즈 '하이라키'로 첫 주연도 맡았다. 지난 4월 MBC '바니와 오빠들'의 주연으로도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다수의 출연작에서 교복을 입거나 학생으로 등장할 만큼 교정의 바람과 분필 냄새가 어울리는 얼굴이다.

그런 그가 tvN '폭군의 셰프'에서 곤룡포를 걸친 채 등장한 순간, 그 얼굴은 더 이상 교정 아래 머물지 않게 됐다. 결핍과 상처를 품은 군주 그 자체가 되어 왕의 시간을 증명했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과 사초의 부재가 낳은 결핍, 권력의 무게에 짓눌려 폭정으로 치닫는 군주의 칠흑을 자신의 얼굴에 오롯하게 담아낸 것이다.

'폭군의 셰프'에서 이채민이 보여준 속도감 있는 성장은 놀라울 정도다. 원래 예정된 주연 배우의 하차 이후 단기간에 투입된 그는, 불과 열흘 남짓한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완벽히 흡수했다. '사극 베테랑' 장태유 감독의 노련한 디렉팅이 든든한 바탕이 되었겠지만, 그 결핍을 온몸으로 체화하고 인물의 껍질을 깨뜨린 것은 오로지 이채민의 집중력과 흡인력이다.

'폭군의 셰프' 이채민 / 사진=tvN

이헌의 서사는 화려한 왕관보다 부재로부터 시작된다. 여덟 살에 어머니가 폐비되고, 그 기록은 사라졌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날들의 분노. 이채민은 이러한 인물의 결핍을 대사 하나하나에 스며들게 했다. "그날의 진실을 밝힐 사초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눈빛에는 무언가 꺼지지 않는 허기가 스며 있다.

연지영(임윤아)의 고추장 버터 비빔밥을 처음 맛보는 장면은 이채민의 얼굴이 가진 힘을 가장 잘 보여준다. 알싸한 매운맛이 들어오는 순간 번쩍 뜨는 눈, 독이라며 경계하는 표정, 그리고 결국 따뜻한 위로에 무너져 내리듯 흔들리는 입매까지. 짧은 몇 초 동안 그의 얼굴은 수십 겹의 감정을 오간다.

이채민의 연기는 절제와 폭발 사이에서 리듬을 찾는다. 신하들을 앞에 두고 있을 때는 목소리를 눌러 낮추며 무게를 유지하고, 연지영의 음식을 삼킬 때는 알록달록한 표정 변화를 보여준다. 연지영의 요리가 진상될 때마다 기대감을 갖게 하는 건 그 리액션을 살아 있는 감각으로 번역해 내는 이채민의 얼굴이다.

'폭군의 셰프' 이채민 / 사진=tvN

이러한 연기의 리듬은 임윤아와의 호흡 속에서 더욱 빛났다. 연지영이 내놓는 한 끼마다 이채민은 표정의 농도를 달리하며 반응했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는 감각과 감정을 부딪치게 만들었고, 군주와 요리사의 관계를 서서히 설득력 있게 쌓아 올렸다. 로맨스의 첫 불씨 역시 바로 이 순간 시작됐다.

이 역할은 확실하게 이채민에게 전환점을 가져다줬다. '사극이 퍼스널컬러'라는 평가와 더불어 '신의 한수가 된 남주 교체'라는 칭찬이 쏟아진다. 장태유 감독 역시 제작발표회에서 "이채민에게 100% 이상 만족했다. 더할 나위 없다"고 말했고, 상대역으로 호흡한 임윤아도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굉장히 뛰어나 몰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함께 호흡한 최귀화나 서이숙도 이채민을 향해 "대단하더라", "책임감 있는 배우"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아이돌 출신이 아니기에 스타성에 기댈 수도 없었고, 판타지나 사극 장르에 몸을 실은 적도 없다. 그러나 환경을 탓하거나 경험 부족을 핑계 삼지 않았다. 벼랑 끝에 섰을 때 오히려 초인적인 힘이 발휘될 때가 있다. 이채민에게 '폭군의 셰프'는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불과 열흘 남짓한 준비 기간에도 그는 대본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인물의 상처를 자기 감정으로 옮겨왔고, 표정과 호흡의 디테일로 왕의 고독과 로맨스의 설렘을 설득력 있게 채워 넣었다. 때문에 시청자는 신예의 미숙함보다 의외의 미더움에 더한 짜릿함을 마주하게 된다. 이헌은 그에게 있어 첫 대표작이자, 앞으로 나아갈 배우의 길을 보여주는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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