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없는 박물관, 10년의 길 위에서] 2. 지붕없는 박물관을 위한 연대

박지혜 기자 2025. 9. 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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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일상·예술 이은 '10년간의 아름다운 동행'

문화재생 공통 키워드 속 빼뻘보관소·의정부문화재단 협업
지속 가능한 도시 회복 고민…실험·지원 선순환 구조 일궈내
더 필름, 시흥 지역 예술인 경험의 장 마련…주민 목소리 기록
신나는문화학교·고잔동 주민, 아픔 딛고 공동체 회복 '결실'
▲ 안산 신나는 문화학교 활동 현장 모습. /사진제공=신나는문화학교

지붕을 허물고 경기도 전역을 기억과 보존의 공간으로 꾸려간 '지붕없는 박물관'의 실험. 건축물 대신 사람과 자연, 문화와 기억의 관계를 전시해 온 이 실험은 지난 10년간 지역의 일상과 예술을 연결하는 독특한 공공문화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 가운데, 박물관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위해 꾸려진 다양한 '연대'의 형태는 충돌과 합의, 실험과 제도화의 과정을 따라가며 지붕 없는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했다. 보다 탄탄한 네트워크, 주민 주도의 지속 가능성, 제도와 시민 사이를 잇는 유연한 거버넌스는 공동체가 스스로 문화의 주체가 돼 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 의정부문화재단 및 빼뻘보관소 관계자들이 회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빼뻘보관소

▲기지촌 마을의 '문화재생' 위한 신뢰의 협업

2019년 미술작가 김현주, 조광희의 애정 어린 시선에서 시작된 빼뻘보관소는 한국전쟁 속 기지촌 마을로 흥망성쇠를 겪은 의정부 빼뻘마을에서부터 출발했다. 소외되고 억압된 삶을 살아가던 기지촌 여성들과 역사의 흐름에 따라 무너져간 공동체에 집중한 두 작가는 다양한 문화예술적 실험들을 시도하며 빼뻘마을의 변화를 견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문화재생'이란 공통의 키워드 속에서 빼뻘보관소와 의정부문화재단과의 인연도 이어졌다. 지역 예술인들과 과정 중심의 예술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던 재단은 2021년부터 낙후된 도시의 지속 가능한 회복을 고민하고 주민들과 신뢰를 쌓아가는 빼뻘의 모습에 집중했고, 본격적인 협업을 시작했다.

마을의 문화적 재생에 방점을 둔 빼뻘보관소의 활동은 지역 자원에 대한 가치와 보존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붕없는 박물관'의 모토와도 잇닿으며, 의정부문화재단과 협력하는 경기에코뮤지엄 사업으로 흡수됐다. 재단은 지역의 삶과 장소, 사람들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빼뻘보관소는 현장에서 경험을 토대로 쌓은 특수성과 공동체성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며 '실험'과 '지원'의 선순환 구조를 이뤄낸 것이다.

특히 가시적인 성과 중심의 평가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작업 과정의 이해는 안정적인 영향력과 파급력을 담보해, 지역 예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속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김현주 작가는 "기존에 지역과 밀접한 작업을 해온 기관과 에코뮤지엄 사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협업할 수 있다 보니 쉽게 나오지 않는 지역의 변화를 끌어내는 동력을 얻게 됐다"며, "재단의 행정가들이 현장에 직접 나서 지원하고, 후원자가 아닌 연대자로서 신뢰 관계를 맺고 협력의 시간을 만들고 있어 진정한 가치가 실현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창모 의정부문화재단 팀장은 "실제로 오랜 시간동안 지역에서 활동해온 예술인들이 마을과 지역에 대해 이해하고 설명하는 깊이는 차원이 다르다"며, "넉넉한 지원을 못함에도 열심히 활동해 주는 예술가들에게 감사하다. 재단에서도 지역 예술가들이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2024 시흥 독립영화제 현장사진. /사진제공=시흥시

▲돕고 도우며 '시흥' 브랜딩을 여는 연대의 기록

사진 촬영과 영상 제작 회사에서 출발한 더필름은 '영화'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한 사회적기업이다. 시흥 지역에서 '예술'의 꿈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최소한 경험의 장을 마련해주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더필름은 시흥 지역의 특성에 착안해, 지금껏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공단의 삶과 역사를 기록하고, 산과 바다, 들판을 모두 갖고 있는 다양하고 폭넓은 도시의 면모들을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

지역의 문화와 공동체를 매개로 한 작업들은 시흥시와의 연대로 이어졌다. 더필름은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를 개최하고 시민영화학교, 다큐멘터리 제작, 기록 사업 등으로 주민과 예술인을 묶어내며 문화적 실험을 이어왔는데, 시는 이 과정에서 공간 협력과 행정적 지원, 예산 지원을 통해 더필름의 기획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3355 문화동네 같은 협력 공간에서 지역 기획자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다양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열고 지역의 노동과 생활, 기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연대와 협력의 구조를 견고히 만들기도 했다.

연대는 단순한 공간 활용을 넘어 주민의 목소리와 생활사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확장됐고, 일상의 기억과 지역 정체성을 영상으로 엮어내면, 이를 시민 문화 정책과 맞닿게 하며 협력의 폭을 넓혔다.

전체적인 활동을 에코뮤지엄 사업과 연계해 문화공간 창공을 거점 공간화하며 행정적 협력 구조로 발전시킨 것도 선순환의 일환이다.

이경호 더필름 감독은 "일반 민간기업에선 거점 공간이나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 인력 등 들어가는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시와 유기적으로 협력하다보면 한정된 재원을 프로그램 내용에 쏟을 수 있고 홍보나 장소의 브랜딩 등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돼 훨씬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선 시흥시청 문화예술과 주무관은 "민간이 가지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잘 작동되도록 돕고, 행정적인 소통의 어려움이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들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며, "시와 연계된 지역 네트워크와의 연결 등 협력 제안을 위해 앞으로도 고심하고, 지속성을 가진 브랜딩을 만들어 가는 데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 안산 신나는 문화학교 활동 현장 모습. /사진제공=신나는문화학교

▲'고잔동'의 아픔 딛고 추억으로 나아가다

예술단체 신나는문화학교와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주민들의 연대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지역 사회가 겪은 아픔에서 출발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던 고잔동에는 일상의 삶 속에서도 끝없는 슬픔과 공백이 이어졌고, 신나는문화학교와 고잔동 주민들은 지역공동체가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시작은 소박한 식탁에서 시작됐다. "밥 한 끼 먹읍시다"는 안부의 말을 실행하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첫 걸음을 뗀 것이다. 본격적인 연대는 '지붕없는 박물관 사업'과 맞물리며 전개됐다. 2017년 다크투어 형식으로 지역의 일상, 기억,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던 프로그램을 2019년부터 '고잔동 마을 여행'으로 펼쳐내며, 고잔동 마을 주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 간 정기적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활과 추억을 기록하면 예술가들은 이를 문화적 형식으로 풀어내며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협력의 틀을 완성해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유가족들 역시 세월호 이후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와 다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존중됐고, 서로를 편하게 부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선 잊고 지낸 소중한 감정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더이상 유가족이 아닌 고잔동 주민으로서 공동체를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잊히거나 사라질 수 있는 기억을 보존하고 일상 속 경험을 문화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유가족과 주민이 함께 마을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며, 슬픔을 넘어선 연대가 형성됐다.

▲ 왼쪽부터 강효진 생태힐링투어 해설사, 정부자 에코뮤지엄 '곶안' 성찰투어분과장, 김태현 신나는문화학교 운영위원의 모습.

고잔동 주민인 강효진 생태힐링투어 해설사는 "마을 해설을 하다 보면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고잔동이 어두운 곳이 아닌 애들이 살기 편한 좋은 곳이구나 느끼게 된다"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 느끼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주민들이 함께 힐링하고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인 정부자 에코뮤지엄 '곶안' 성찰투어분과장은 "아이를 떠나보내고 '행복'이란 단어를 감히 어떻게 쓸까, 사치이고 미안하다는 마음뿐이었는데 프로그램을 들으며 많이 변한 것 같다"며, "고잔동을 돌아다니고 타인의 행복을 들으며 내 안의 행복이 되살아나는 '감사함'이 생겨났다. 용기 내어 함께하는 것도 행복임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김태현 신나는문화학교 운영위원은 "(에코뮤지엄 사업으로)세월호 희생자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가 아닌, 같은 동네에서 살아오던 보다 친근한 존재로 느껴지며 서로 연대하는 관계가 맺어질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에코뮤지엄 사업이 자생적이고 상설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 이 기사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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