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의 아련한 추억…서툴지만 솔직했던 청춘의 성장기 [리뷰]

손미정 2025. 9. 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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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백우· 정여희 주연 영화 ‘썸머 블루 아워’
설렘과 불안함 공존하는 청춘의 연애 그려
[(주)누리픽쳐스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널 정말 좋아해.”

진심 어린 고백의 외침이 시끄러운 기차 소리마저 뚫는다. 절박한 목소리는 건널목 너머 힘 없이 걸어가는 교복 차림의 여자에게 닿는다. 여자는 멈춰서서 목소리의 진원을 향해 몸을 돌린다. 반대편 차단기 너머에 같은 교복을 입은 한 남자의 모습이 스치고, 이미 눈물범벅이 된 여자가 멈추지 않을 듯한 울음을 다시 쏟아낸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서서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힘껏 새겨넣는 남자, 그리고 그 고백에 가슴 아프게 우는 여자. 마치 폭풍이 휩쓴 듯 빠르게 내달려온 기차가 두 사람 사이의 혼란한 공기를 가로지른다.

남자는 떠나간 기차와 함께 홀연히 사라진다. 여자는 모든 것이 떠나간 건널목에 홀로 선다. 사연을 알 수 없는 이 순간은 결코 잊지 못한 한 여자의 기억이다. 고등학교 시절, 아름답고 아련했던 추억의 일부다. 다 담지 못해 꺼낼 수밖에 없었던 두 남녀의 커다란 마음들이 넘치고 흘러, 이윽고 가슴에 저릿하게 스민다. 영화 ‘썸머 블루 아워’다.

[(주)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썸머 블루 아워’는 청춘의 첫사랑과 성장통을 다루며 ‘남색대문’(2002)과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 등으로 이어져 온 대만 청춘물의 계보를 잇는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마지막 여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과 우정을 지켜가는 세 청춘의 이야기를 담았다. 신예 구호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드라마 ‘상견니’를 통해 이름을 알린 시백우와 대만 금종상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정여희, 그리고 ‘영원한 1위’ 등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임자굉이 주연으로 분했다.

1학년 때부터 학교 육상부 계주 선수이자 동급생인 옌리야오(시백우 분)를 짝사랑해 온 쑤밍이(정여희 분). 그는 2학년에 올라가며 같은 반이 된 옌리야오와 그의 단짝 청옌(임자굉 분)과 함께 티격태격하는 일상을 보낸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쑤밍이와 아빠가 사진작가인 옌리야오는 카메라를 매개체로 좀 더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자신의 오랜 마음을 숨긴 채 옌리야오와의 학교 생활을 이어가는 쑤밍이와, 자신감 넘치고 따뜻한 겉모습 뒤에 왠지 모를 불안함을 감춘 옌리야오. 두 사람은 어느 날 쑤밍이의 고백을 계기로 연애를 시작한다. 옌리야오는 연애를 시작하기에 앞서 쑤밍이에게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어차피 지게 되는 게임이 있어. 그래도 계속할 거야?” 쑤밍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옌리야오는 조건을 말한다. 이유는 묻지 말고, 졸업 전까지만 연애를 하자고. 그때까진 쑤밍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겠다는 엔리야오의 약속과 함께 두 사람의 기한제 연애가 시작된다. 청옌은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두 사람의 연애를 곁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주)누리픽쳐스 제공]

두 사람이 함께한 고등학교 마지막 여름은 행복의 크기만큼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이유 불문 이별을 앞둔 두 사람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헤어짐은 쑤밍이를 위한 것”이라며 헤어짐을 예고한 옌리야오는 대체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영화는 고등학교 시절의 세 청춘과 대학생, 그리고 직장인이 된 주인공들을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사진작가가 된 쑤밍이가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대는 순간 펼쳐진 청춘의 기억들은 현재의 모습과 대비되며 더 풋풋하고 싱그럽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그 무엇보다 빛나는 청춘처럼, 영화는 흔하고 소소한 행복들로 청춘의 시간을 채워 넣는다. 손에 그려 넣은 케이크 위에 촛불을 켜 생일을 축하하고, 분수 옆을 거닐다 서로에게 물장난을 치며,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서 함께 노래를 들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쑤밍이와 옌리야오의 추억들은 평범한 듯 더 없이 반짝인다.

서사는 특별하지 않다. 다만 그 안에서 섬세하게 표현한 캐릭터들의 복잡한 내면과 미묘한 감정선이 흔한 서사를 흔하지 않게 엮어낸다. 솔직하지만 서툴고, 당당하지만 비밀도 많은 불완전한 청춘들은 서로가 함께한 시간을 딛고 성장한다. 쑤밍이를 분한 정여희는 늘 잃지 않는 웃음 속에서 복잡한 내면을 지닌 쑤밍의 서툰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시백우는 활달하고 자유분방하지만 남모를 비밀을 간직한 옌리야오를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두 사람 곁에서 묵묵히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청옌으로 분한 임자굉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의 복잡한 감정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주)누리픽쳐스 제공]

설렘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옌리야오와 쑤밍의 연애는 뜻밖에도 담백하게 지나간다. 그저 각자의 마음에 충실히,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한다. 가끔 프레임은 옌리야오가 바라본 쑤밍이, 그리고 쑤밍이가 바라본 옌리야오의 모습을 한 가운데에 놓고 잠시 멈춘다. 오랫동안 지긋이 피사체의 작은 표정까지도 잡아낸 카메라의 움직임 속에서, 서로를 찬찬히 눈에 담았을 옌리야오와 쑤밍의 애틋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느 순간 미묘한 불안은 가고, 풋풋하고 기분 좋은 떨림만이 잔잔히 남는다.

“너랑 함께면, 지게 될 게임을 하는 것 같지 않았어.” 내면의 갈등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세 청춘은 사랑과 우정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때문에 청춘 로맨스란 장르적 수식에도 영화가 주는 여운은 의외로 짙다. 청춘의 풋풋함에 한껏 설레고, 첫사랑의 아련함에 가슴이 저며온다.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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