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미친 나라…1억 성과급 때문? SK하이닉스 응원하는 ‘또 다른’ 이유?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이공계 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의료 분야의 면허증이 너무 오랫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가리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9/KorMedi/20250909140250318aigz.jpg)
반도체 회사 SK하이닉스 직원 한 사람당 연간 성과급이 1억 원을 넘길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최근 열린 2025년 임금단체협상에서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 데 합의했다. 기본급의 1000%로 묶여 있던 성과급 지급 한도 폐지에 잠정 합의한 것이다. 이는 10년 동안 적용된다. 기본급 인상률은 6%다. 증권가 등에선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37조 원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업이익 10%인 3조7000억 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면 직원 한 사람당 1억 원 이상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1억 성과급'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자부심…"우리가 세계 1위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가 실기(失期)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세계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다. HBM은 인공지능(AI) 칩 생산에서 꼭 필요한 D램 반도체다.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세계 D램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D램 점유율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HBM 성장에 힘입어 연간 글로벌 D램 시장 1위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삼성전자를 앞섰다는 자부심에다 성과급 상한제 폐지 소식까지 전해지자 사기가 크게 올랐다. 이런 성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욕이 넘치고 있다고 한다.
"이제야 우리 세상이 왔다"…타사 이공계 출신들도 내 일처럼 반기는 이유?
다른 회사 이공계 출신들도 내 일처럼 기뻐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야 우리 '공돌이' 세상이 왔다"고 반가워하고 있다. 공돌이는 공대를 다니는 남자 학생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지만, '소속감' '애정'이 담겨있기도 하다. 일반 국민들도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의대 안 가고 이공계를 선택한 직원들을 더 확실히 대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의대에 미친' 대한민국을 예전처럼 이공계가 더 대우받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공대에 미친' 중국은 과학기술에서 우리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다. 칭화대를 비롯한 중국의 이공계는 최고 인재들의 집합소가 된 지 오래다. 대한민국도 예전처럼 전교 1등이 의대보다는 이공계를 선택해야 생존할 수 있다. 지금 중년 세대들은 거리마다 '과학 입국'(과학으로 국력 육성) 표어가 내걸리고 중고생들이 장래 희망으로 과학기술자를 첫손가락으로 꼽던 시절을 기억한다. 해외여행 때마다 뿌듯해 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광고판은 '과학 입국' 표어가 원동력이 됐다. 공부 잘 하면 너도나도 공대, 이과대로 몰려갔다. 정부는 확실한 이공계 우대 정책으로 이들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SK하이닉스의 뛰어난 '선구안'…이공계 출신이라 가능했다
SK하이닉스가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HBM 세계 시장을 선점한 것은 이공계 출신 임직원들의 뛰어난 '선구안'이 바탕이 됐다. 의대 대신에 이공계를 선택했던 머리 좋은 중년의 연구원, 임원들의 판단이 주효했다. 반면에 경쟁사는 재무, 회계 담당자들의 입김이 강해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에 주저했다고 알려져 있다. 문과 출신(경리, 회계) 예산 담당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보고서' 작성에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SK하이닉스는 최고의 이공계 전문가들이 신속한 HBM 투자를 주도했다. 엄청난 투자비에 비해 미래가 불투명했기에 주위의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이공계 전문가들의 판단은 옳았다. AI 칩 생산에 꼭 필요한 D램 반도체인 HBM은 폭발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초대형 딥 러닝 모델인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한 AI 산업이 전세계적으로 본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당연히 최대 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HBM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현재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점유율 1위로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특히 AI 칩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너무 오래 지속되는 '이공계 위기'…"이제는 벗어나자"
국민들이 SK하이닉스에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25년 동안이나 지속되는 '이공계 위기' 탈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중국은 공대에 미쳤는데, 한국은 초등학생까지 의대 입학을 외치는 나라가 됐다. 초등학교 대상 의대입시 학원 간판을 보면 "정말 의대에 미친 나라"라는 쓴웃음이 나온다. 의대에 진학해도 '의사 과학자'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미용의료, 임상의사(환자 진료)를 원한다. 중국은 미래 먹거리 기술에서 저만치 앞서가는데 한국은 인재들이 미용의료 분야로 몰려간다. 이대로 가다간 미국, 유럽 한복판에 내걸린 우리나라 기업들의 광고판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의료 분야 '평생 면허증' 때문에…"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가 어두워졌다"
과거 전교 1등이 선택했던 이공계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빌미로 연구원, 기술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수시로 '명퇴' 공고를 냈다. 경영 상황이 좋아도 세대교체를 이유로 직원들을 잘랐다. 40대 중반에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을 보며 30세 직원들은 뒤늦게 의대 입학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공계 위기'의 시발점이다. 평생 직업이 보장되는 의료 분야 '면허증'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이공계 대학 4학년생은 "그 회사에 입사하면 40대에 명퇴해야 된다"며 주저한다.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SK하이닉스 '1억 성과급'은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공계 재도약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월급만 보면 고교 동기 의사 친구 부럽지 않다. 다만 40, 50대 명퇴는 여전히 부담이다. 한국은 오래 다닌 회사에서 나오면 재취업이 쉽지 않다. 자영업 상황도 최악이라 퇴직금을 까먹으며 생활해야 한다. 미국, 유럽처럼 '고용 유연성'을 쉽게 말할 수 없는 나라다.
40대, 50대 초반의 직원들을 거리로 내모는 회사에 누가 미래를 걸겠는가? 기업들은 인사혁신으로 중년의 임직원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중년의 직원들은 성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실적과 연동된 임금피크제 등도 감수해야 한다. '젊은 피'도 제때 수혈해 세대의 균형이 맞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제 지원 등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표현이다. 정부와 기업, 대학이 힘을 합쳐 다시 이공계 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의료 분야의 면허증이 너무 오랫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가리고 있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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