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마크롱’…프랑스 빚더미인데 정부 9개월만에 또 붕괴

김지헌 2025. 9. 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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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긴축추진’ 바이루 총리 불신임…내각 총사퇴
마크롱 책임론 확산…정국 혼란 불가피
재정위기 속 3년새 네번째 총리 교체
극좌정당, 탄핵안 예고…극우정당은 새 총선 요구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8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에서 불신임안 투표 직전 연섫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프랑스 정부가 8일(현지시간) 하원의 불신임 결정으로 9개월 만에 총사퇴하게 되면서 정국이 또 다시 혼돈에 빠지게 됐다.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이미 정치적 입지가 약화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책임론이 확산하며 극좌 정당의 대통령 탄핵안 발의 등 위기에 직면했다.

프랑스 하원 의원 574명(3명 공석) 중 절반을 훌쩍 넘긴 364명은 이날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이끄는 정부에 불신임 표를 던졌다. 이번 투표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긴축 재정을 주장해온 바이루 총리가 의회 갈등이 격화하자 자진해서 제시한 것이다. 현재 하원의 양대 축인 극우 국민연합(RN)과 좌파 연합을 구성하는 정당들이 모두 불신임에 표를 던졌다. 우파 공화당(LR) 내에서도 일부가 정부 불신임에 동참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 결과는 프랑스 의회 지형상 어느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RN이 프랑스 내 1위를 차지하자 RN의 세 확산을 저지하겠다며 전격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마크롱 대통령은 이때 악수를 둔 셈이다. 평소 자신은 “좌도 우도 아니”라며 중도 성향을 강조해온 마크롱 대통령 중심의 중도 범여권은 의회 내 다수당 지위를 잃었고, 오히려 좌우 양 진영의 의석수만 키워줬다. 어느 정치 세력도 절대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범여권은 좌우 양 진영이 손만 잡으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불안한 위치에 놓인 셈이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

당시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좌파 연합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좌파 출신 인사를 총리로 지명하라고 요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좌파에 정부 운영권을 넘겨줄 수 없다며 이 요구를 거부하고, 범여권과 그나마 결이 비슷한 공화당 출신 미셸 바르니에 총리를 임명했다.

지난해 9월 프랑스 미셸 바르니에 총리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은 12월 초 하원에서 가결됐다. 조기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어 우여곡절 끝에 내각이 출범한 지 석 달 만으로, 바르니에 총리는 1958년 5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최단명’ 총리로 기록됐다. 내각 불신임안이 의회 문턱을 넘은 것은 샤를 드골이 대통령이던 1962년 조르주 퐁피두 총리 내각 이후 62년 만이다.

불신임 계기는 2025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다. 바르니에 내각은 공공지출은 줄이고, 증세를 통해 적자를 메운다며 600억유로(약 89조3700억원)를 삭감한 예산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때부터 이미 마크롱 대통령이 차기 총리를 최대한 빠르게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과 함께 정국에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8일(현지시간) 프랑스 정부의 긴축 예산안에 대한 신임 투표를 앞두고 열린 의회 임시 회기의 모습. [AFP]

마크롱 대통령이 찾은 후임자가 자신의 오랜 우군이자 중도 진영 인사인 바이루 총리다. 그러나 그 역시 의회 내 야당의 협조를 얻는 데 실패한 채 바르니에 총리보다 더 강경한 긴축 정책을 추진하다 전철을 밟게 됐다.

바이루 총리는 지난 7월 15일 440억유로(약 66조원)의 예산 절감과 세수 증대를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 지침을 발표했다. 국방 예산을 제외한 정부 지출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고, 생산성 확대를 위해 공휴일 이틀을 폐지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정부 예산안에 대한 여론의 반발은 거셌다. 야당 역시 가을 정기 회기가 소집되면 즉각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압박했다. 바이루 총리는 이에 지난달 25일 프랑스가 처한 재정 위기를 거듭 설명하면서 본인이 먼저 나서 의회의 신임 투표를 요청했다. 충격파를 던져 국민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한편, 의회 신임을 얻어 긴축 재정을 밀어붙일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심산이었다.

바이루 총리는 이날 신임 투표에 앞선 정견 발표에서도 의원들에게 “여러분은 정부를 전복시킬 권한은 있지만, 현실을 지울 권한은 없다. 현실은 냉혹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지출은 더욱 증가할 것이며,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부채 부담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비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의 공공 부채는 지난해 기준 3조3000억유로(약 5200조원)로, 프랑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 수준이다.

그러나 이날 의회에서 총리 불신임이 가결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오랜 경쟁자로 차기 대권 야심을 보여온 RN의 마린 르펜 의원은 의회 해산을 요구했다. 그는 이날 의회 신임 투표에 앞선 정견 발표에서 대통령의 사임은 기대하지 않는다며 대신 “법적, 정치적, 도덕적으로 (의회) 해산이 (대통령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당 지지율 1위를 달리는 RN 입장에선 새 총선이 실시될 경우 잘하면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 세를 몰아 2026년 초 예정된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에서도 권력을 거머쥐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프랑스 정치권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사회당은 바이루 정부 붕괴를 당의 재도약 기회로 노리고 있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이날 TF1 뉴스에 출연해 “이 나라에는 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좌파가 이 나라를 통치할 때”라며 자신들이 정부 운영에 나설 준비가 됐음을 암시했다.

야당은 이 모든 상황의 근본적인 책임을 마크롱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 비판에 가장 앞장선 건 극좌 성향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다. 마틸드 파노 LFI 의원은 “우리는 동일한 정책을 계속할 또 다른 총리를 원하지 않는다”며 “지금 국가가 직면한 문제는 국민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의 퇴진”이라고 말했다. 9일 의회에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LFI와 좌파 연합을 구성한 상대적 온건 성향의 녹색당이나 사회당은 좌파 출신 총리 임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녹색당의 마린 통들리에 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다음 총리는 좌파 연합 출신일 수밖에 없다. 총선 1년 만에 프랑스 국민의 표를 존중할 때가 됐다”며 “우리는 준비됐다”고 마크롱 대통령을 압박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새로운 의회 해산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엘리제궁을 통한 성명에서 향후 며칠 내로 새 총리를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3년새 네번째 총리 교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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