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관객 도착! 은밀히 안내하라”… 콘서트홀 ‘어둠 속 작전’[직접 해봤습니다]
4시간 긴장상태로 집중하는 일
“에어컨 바람에도 식은땀 줄줄”

공연, 미술, 영화, 음악, 출판, 종교 등 문화 영역을 취재하는 문화부 기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관객, 소비자, 외부인의 입장에 서서 취재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관찰자의 시선에서 자리를 옮겨 직접 내부자가 되어 보면 어떨까 궁금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서는 자리가 달라지니 눈길이 머무는 대상도 달라지고, 같은 것도 달리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직접 해보면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첫 순서는 클래식 콘서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안내자, 하우스 어텐던트입니다.
기본 15만 원(R석 기준),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가 오면 45만 원까지 티켓값이 뛰는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의 눈높이를 만족시켜라.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소재 롯데콘서트홀의 현장 요원 ‘하우스 어텐던트’(어텐던트)로 일일 취업해 보았다. 클래식을 담당하게 되면서 많은 날 저녁 콘서트홀을 찾았지만 대부분 공연 10분 전에야 간신히 도착하곤 했다. 하지만 티켓을 손에 쥐고 달려 8·9층 어느 게이트 앞에라도 도착하면 유니폼 근무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어둠 속에서 한참 무대를 보던 중 시야에 걸리는 유니폼 근무자들은 종종 옷깃에 달린 마이크에 무어라 속삭이거나 급히 공연장 밖으로 사라졌다가 어느새 돌아와 있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 걸까. 이들은 누굴까? 콘서트홀 운영의 한 축인 어텐던트의 옷을 입고 인이어가 연결된 무전기를 착용하게 된 계기다.
이날의 공연은 ‘클래식 레볼루션 2025:KBS 교향악단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이었다. 공연 시작은 7시 30분부터이지만 어텐던트들은 6시부터 10층 강당에 모였다. 마치 비행을 준비하는 승무원들처럼 공연과 관계된 정보를 속속들이 브리핑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80여 명 연주자가 무대를 채우는 심포니 오케스트라 편성, 첫 곡 다음 두 번째 곡을 시작하기 전 지연(지각) 관객 입장이 아주 잠깐 가능한 점, 오늘의 관객 저지 정도는 ‘하’(사진을 찍는 관객에게 주의만 전달. ‘상’의 경우는 삭제 조치 완료), 유료 관객 수는 ‘○○명’(대외비)….”
전원 20대로 이뤄진 26명의 어텐던트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볼펜으로 전달사항을 바쁘게 받아적었다. 근무하는 네다섯 시간 동안 분신과도 같은 휴대폰은 소지할 수가 없는 터다. 누구보다 극장 매너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어텐던트가 혹여나 휴대폰 벨소리를 내선 안 되기에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그런데 경영 파트에서나 신경 쓸 것 같은 유료 관객 수가 어텐던트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정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유료 관객의 반대 개념은 초대권 관객이다. 같이 근무를 선 한 2년 차 어텐던트는 “티케팅이 힘든(유료 관객이 대부분인) 공연일수록 그날 근무하는 어텐던트의 근무 환경이 쉽고 편해진다”고 귀띔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 등 스타 연주자 공연은 그야말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티켓을 구하는데, 이 관객들은 클래식 공연의 베테랑들이라 어텐던트보다도 더 엄격하게 공연 에티켓을 숙지하고 따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손이 많이 안 가서 일이 수월하다는 의미다.
△ PM 06 : 00
어텐던트 30명 정보숙지·청소
△ PM 07 : 00
“하우스 오픈” 무전에 관객 맞이
△ PM 07 : 30
공연 시작 후 지각 관객들 안내
△ PM 10 : 00
공연 종료 후 관람객 환송·폐문

오후 6시 30분, 이날 하루 할당받은 근무지인 9층 5번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다. 관객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전 공연장 내부로 이동해 좌석 점검과 청소도 진행했다. 공연 시작 30분 전인 7시, 관객을 맞이할 준비가 되자 인이어로 매니저의 “하우스 오픈” 무전이 흘렀다. 수표데스크로 급히 나와 의복을 정제했다. 롯데콘서트홀의 통유리가 석양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바람에 체온이 훅 올랐다. 에어컨을 튼 쾌적한 콘서트홀에서 일하는데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관객이 모두 입장하면 한숨 돌리고, 어쩌면 공연을 볼 짬이 생기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큰 오산이었다. 지연 관객이 한 사람씩 띄엄띄엄 나타났고 이들을 대기석에서 전실(외부문과 내부문 사이 공간)로, 전실에서 지정좌석으로 안내하는 일은 흡사 ‘작전’에 비할 만했다. 왼쪽 귀에 착용한 인이어에서는 매니저와 어텐던트 총 30여 명이 하나의 채널로 교신하고 있어 바쁘게 고막을 때렸다. 아직 바깥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른쪽 귀로는 눈앞에 있는 관객과 대화하고, 눈으로는 주변 상황을 계속해서 챙기기 바빴다. 깔끔한 환경에서 최저 시급 이상의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대학생 ‘꿀알바’가 아닐까 했던 생각은 산산이 깨졌다. 장장 4시간 넘게 초긴장 상태에서 오감을 발동해 일하는 일은 웬만한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일머리가 없으면 힘든 일임이 분명했다.
다만 30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니 자연스럽게 ‘전우애’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선임 어텐던트인 오윤서 슈퍼바이저는 “대부분 어텐던트가 2년을 꽉 채워 일하고, 계약이 만료되고 난 뒤에도 자비로 롯데콘서트홀에 공연을 보러 올 정도로 애정이 생긴다”고 말했다.
“2016년 롯데콘서트홀 개관 이래로 어텐던트들은 끈끈한 동료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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