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안전하고 맛있다’… 다양한 식품인증 마크 단순한 상품 정보 넘어 소비자의 가치관 대변[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2025. 9. 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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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각국 식품인증 마크
영국 런던에 있는 웨이트로즈마트의 치즈 코너. 오른쪽 사진의 제품처럼 다양한 인증마크를 붙인 각국의 치즈들이 팔리고 있다. 런던=정주영 촬영

프랑스 여행 중 한 마트의 치즈 진열대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수십 종의 치즈 때문이었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듯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포장지마다 촘촘히 박힌 작은 인증마크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내가 더 안전한 상품이야, 더 맛있는 제품이야, 더 믿을 만한 식품이야”라고.

‘유럽연합(EU) 유기농인증’ ‘원산지 명칭 보호(PDO)’ ‘공정무역’ ‘HACCP’부터 너무 작아 잘 읽히지도 않는 마크까지. 일일이 다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아 가장 많은 인증이 붙은 제품을 집어 들었다. 복잡한 선택지 앞에서 나름의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흥미로운 건 나라별로 ‘믿음의 마크’가 다르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할랄(Halal)’ 마크 없는 치킨버거를 찾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 도축 방식부터 재료성분까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심사했다는 뜻이니 무슬림 소비자에게 절대적인 신뢰의 증표다. 엄격한 관리 기준 덕분에 종교와 상관없이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인식도 더해졌다.

‘코셔(Kosher)’ 역시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유대교인이 아니더라도, 조금 비싸더라도 코셔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유대 율법에 따라 철저히 관리된 덕분에 ‘깐깐하고 믿음직한 음식’이라는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신념의 언어로는 ‘비건(Vegan)’ 인증이 있다. 영국 카페에서 만난 비건 케이크는 ‘V-Label’ 마크 하나로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다. 비건은 단순히 채식주의자를 위한 선택지가 아니라, 동물과 지구를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자’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에서는 치즈, 와인, 올리브유 등에 붙는 ‘원산지 통제 명칭(AOP)’ 마크가 최고 품질을 상징한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생산 방식과 지역의 특색을 지켜온 제품에만 부여되는 이 마크는 단순한 품질 보증이 아니라 자부심의 표현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미국 농무부 유기농 인증(USDA Organic)’ 마크가 소비자의 지갑을 연다. 합성 농약, 항생제, 유전자변형 성분을 배제한 농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건강과 친환경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작은 로고 하나에 마음을 빼앗길까. 복잡한 원재료 성분표를 일일이 분석하기란 소비자에게 너무 벅찬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귀찮다. 이때 인증마크는 일종의 인지적 지름길 역할을 한다. 마치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 현지인 추천 맛집 대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정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벅스에 안심하고 들어가는 심리와 비슷하다.

물론 모든 인증이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관리가 허술한 곳에서는 인증 장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검증됐다’는 표식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여전히 강력한 구매동기다.

사실 우리 식탁도 이미 이런 로고들의 전시장이다. ‘친환경 인증’ 달걀과 ‘NON 유전자변형작물(GMO)’ 두부, ‘공정무역’ 커피까지. 인증마크는 단순한 상품정보를 넘어 소비자의 신념과 가치관을 대변하는 도구가 되었다. 결국, 식품 인증마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할지 묻는 작은 질문이다.

다음 장을 볼 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로고를 따라가 보자. 단순히 안전한 식품을 고르는 행위가 아니라, ‘나다운’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하는 일이니까.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마크의 과학과 감성

인증마크가 붙은 제품을 실제로 더 맛있다고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기대효과’ 또는 ‘플라세보 효과’의 한 형태로 본다. “유기농 딸기라니까 왠지 더 달다” “공정무역 커피라서 더 풍미가 깊은 것 같다”는 생각은 사실 뇌가 만들어낸 착각에 가깝다. 인증마크는 물리적 품질을 넘어 미각과 감정까지 건드리는 교묘한 심리적 장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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