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꾸 알지?… 과거의 추억으로 떠오르는 그리운 고향 풍경[사랑합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가 아니라 ‘우리’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만큼 있는 ‘너’를 불러 ‘나’의 옆에 앉히고 손잡아 하나가 되게 하는 인간관계의 접착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기억(記憶)의 공유(公有)’가 아닐까 싶다. 특히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의미를 뛰어넘는 문화적 DNA를 공유한다는 것이어서 그것을 확인할 때는 마치 피붙이가 된 것 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오랫동안 격조했던 벗에게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중학교 동기와 고향이 같은 고등학교 동기가 우리 집 근처를 지나는 길인데 얼굴이나 보자 했다. 나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거의 평생을 보내다 고향에 기어들어 온 염치없는 사람이지만, 한 친구는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 무조건 찾아 섬기는, 오수의 의인(義人)이자 임실의 위인(偉人)이었다. 후드득하고 소나기가 지나가 더위가 한풀 꺾인 터라, 우리는 마당에서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풀어내던 중 그 친구가 “자네들 오빠꾸 알지?” 하며 말을 꺼냈다.
순간, 우리의 기억은 갑자기 필름이 거꾸로 감겨 수십 년 전 어느 오수 장날로 돌아갔다. 장날이면 누덕누덕한 옷차림으로 천하에 바쁠 일 없이 원동산 주변에서 비스듬히 엎드렸다가 느릿느릿 일어나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던 사람, 가게 문 앞에 서서 멀뚱히 주인을 바라볼 뿐 어떤 요구도 하지 않던 그 사람, 푼돈이 됐든 팔다 남은 물건이 됐든 주인이 건네주는 것만을 받고 슬쩍 고갯짓 인사를 하고 다음 가게로 향하던 그 사람은 그 자체로 오수의 한 풍경이었다. 눈살이 찌푸려질 일도 없고, 날마다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도 신기할 게 없던 그 사람을 우리는 “오빠꾸”라고 불렀다.
본명이 오 씨인지, 빠꾸가 무슨 뜻인지, 일가나 친척은 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출신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또 누구도 그것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는 오빠꾸일 뿐이었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 “너 오빠꾸가 잡아간다” 하면 울음을 그쳤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계집아이에게는 “오빠꾸한테 시집 보낸다”고 하면 생떼를 거뒀다. 재밌는 것은, 아이들이 왼쪽 손바닥을 편 채로 엄지를 세우고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을 차례차례 엄지에 갖다 대면서 “빠-꾸-야/빠-꾸-야-곰-배-빠-꾸-야-니-가-이-세-상-에-제-일-이-라-면-가-운-데-손-가-락-을-짚-어-보-아-라”라는 희한한 노래를 부르며 놀던 것을 기억한다. 노랫말처럼 우리의 오빠꾸는 얼굴이 심하게 얽은 곰배(곰보)였다. 오빠꾸는 놀리는 노래를 듣고도 화도 내지 않고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이렇듯 아이들에게는 겁나는 존재이기도 했고 놀림감도 됐지만, 실상 그가 누구를 위협한다거나 해코지를 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한가한 날은 오수 변두리를 서성거리다 논둑이나 밭둑의 기대 누울 만한 곳에 누워서 햇볕을 쬐다가 심드렁해지면 예의 그 느릿한 걸음으로 자신의 허름한 움막으로 기어들곤 했다. 오일장이 돌아오면 그 느린 오빠꾸도 조금은 바빴다. 근동 사람들이 거리에 그들먹하게 들어차고 여기저기서 장돌뱅이들이 손님을 부르고 외치는 등 몸을 부딪히며 지나다녀야 할 정도로 붐비는 장날이면 김이 술술 나는 장안집 국밥 솥 곁에 서서 주인이 말아주는 국밥 한 그릇 얻어먹고는 건어물전을 거쳐 고무신 가게, 좀약과 고무줄을 파는 행상 곁을 지나 포목점 아줌마 한번 바라보고 칼 벼르는 대장간 망치질 소리를 뒤로하고 원동산 약장수가 입담 좋게 약을 파는 모습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어슬렁어슬렁 골목 끝 이약국 앞에 이르면 대개는 그의 장날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오동영(임실 오수면 밤드내마을 정착·전직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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