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저지른 일이 하늘에 가 닿았을까

고정국 2025. 9. 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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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135) 소리개

아득해 보일수록 마음 더욱 가는 것이
먼 데서 들을수록 사무침만 오는 것이
어느 뉘 원혼에 우랴, "삐이요르르, 삐이이 요르르르…"

땅에서 저지른 일이 하늘에 가 닿았을까
골짜기로 흐르다가 산정으로 치솟다가
구천을 맴도는 새야, "삐이요르르, 삐이이 요르르르…"

혼자서 지은 죄를 혼자서만 뉘우치다
억새밭 노을이 지면 바람처럼 가는 새야
세상사 탄식 뿐이랴, "삐이요르르, 삐이이 요르르르…"

금기 범한 사람들이 얼굴 들기 송구한 날
네 울다 떠난 자리 하늘 더욱 붉은 것도
임종이 먼 데 있으랴, "삐이요르르, 삐이이 요르르르…"

내일은 어느 등성이 구름결에 몰리다가
날갯짓 서러워지면 허공에다 획을 긋고
단죄도 하늘에 맡기랴, "삐이 요르르르 삐이이 요르르르르…"

/1989년 고정국 詩

#시작노트

나에게는 왼쪽 눈 바로 아래 아주 작은 흉터가 있습니다. 아마 두 살 때 쯤인가, 마당에 노니는 병아리가 하도 귀여워 손으로 잡았다가 그 어미닭이 달려와 나의 얼굴을 쪼으면서 생겨난 흉터랍니다. 그런데 그 때는 그 병아리를 노리는 맹금류인 독수리가 있었습니다. 하늘높이 빙빙 돌면서 지르는 울음소리는 처절했습니다. 그 후 점차 농경문화시대가 산업화로 바뀌면서 그 똥수레기(독수리)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세대가 지나, 나도 시 쓰는 삶을 살면서 그 새에 대해 시조 한 편 쓰려고 국어사전에 '소리개'라는 낱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사전에는 소리개가 아닌 '솔개'로 명명돼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새는 "삐요르르르, 삐이이 요르르르" 운다고 정리돼 있었습니다. 

다시 30년이 지난 어느 날,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에 「시인탄생, 두 살 때 썼던 일기」 이야기가 있었고, 그곳에 유난히 눈에 띄는 아버지 관련 단시조 한 수가 있었습니다. 

병아리 손에 잡고
어미닭에 얻어 쪼인

눈썹 밑 그 상처를 
한우처럼 핥아 주시던…

아바바, 아파파파파
나 두 살 때
아바바!

- <두 살 때 썼던 일기>(2005) 중 「아바바!」 전문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