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취업비자…쇠사슬에 묶인 한국 근로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5. 9. 9. 06: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동희의 思見]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사진=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2025.09.06./사진제공=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8월 7일(미국 현지시간) '대한민국 국가대표 캡틴' 손흥민 선수가 영국 토트넘 홋스퍼에서 미국 LAFC(로스앤젤레스 풋볼 클럽)로 이적을 공식 발표한 직후 그는 곧바로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하루 전 LAFC 홈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불과 입단 사흘만인 10일에 취업비자가 발급되자마자 시카고 원정경기에 출전해 맹활약을 펼쳤다. 세계적인 스타 선수에게 주어지는 프로선수용 취업비자(P-1A)의 신속성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지난 4일 미국 정부가 조지아주 서배너에 있는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30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를 불법 체류 혐의로 긴급 체포하는 과정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미국의 법과 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을 체포하는 과정은 물론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을 묶은 채 끌고 가는 굴욕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과유불급이다.

이 전문인력들은 단순히 개인의 생계를 위해 미국에 불법체류하러 간 사람들이 아니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을 통해 미국민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파견된 전문가들이다. 미국이 요구한 제조업 부흥 전략의 일환으로 배터리라는 미래 산업의 핵심을 미국 안에서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하러 간 것이다.

손흥민의 축구가 LAFC 팬을 즐겁게 하듯 이 근로자들의 숙련된 기술은 미국 공장의 심장을 뛰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공장을 급습해 300명에 달하는 한국인을 열악한 구금시설에 가두는 것은 동맹국 국민에 대한 예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물론 불법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다. 미국이 한국을 진정한 동맹으로 생각한다면 최소한의 외교적 접근이 필요했다. 미국 내에는 최첨단 배터리 공장을 구축할만한 숙련된 근로자가 없다. 라인에 들어가는 장비들을 셋업할 협력사 기술자들도 없다. 이번에 체포된 한국인들은 배터리 업계에서는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이자 한국 산업의 국가대표들이나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리그의 손흥민을 빠른 시간 내에 미국 무대에 서도록 배려한 나라가 정작 자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한국 전문가들에게는 제대로 된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은 상황은 되짚어볼 일이다. 이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대신 이들이 미국의 제조업 부활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면 이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제조업의 재건은 한국 기업과 한국 전문인력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현실을 외면한 채 동맹국 근로자들을 마치 국경을 몰래 넘은 불법 이민자 다루듯 한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한국은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며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뤄 원조를 할 수 있게 된 유일한 나라다. 미국의 원조와 협력이 결실을 맺은 대표적 성공모델로 미국 입장에서도 자랑스러워할만한 동반자다.

미국은 자국의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한국과의 새 성공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현지 법을 지키야 한다. 다만 미국도 한국의 첨단 제조 기술인력들이 법의 테두리에서 미국 근로자들을 교육하고, 미국 제조업의 르네상스를 이끌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새 성공모델이 만들어진다.

동맹은 일방적 희생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상호 존중과 신뢰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제대로 대우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스스로의 산업과 안보 그리고 미래의 번영을 위해서다. 그 출발점은 체포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 근로자들에 대한 예우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손흥민의 비자 발급 속도와 쇠사슬에 묶인 근로자들의 모습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메우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동맹의 자세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