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5] 작업복, ‘쇼’에서 삶이 되기까지

“2년 동안 안 입은 옷은 버리자!”
내 옷장 정리 원칙이다. 그러나 다짐대로 되는 일은 없다. 누구에게나 그런 옷이 하나쯤은 있을 거다. 한때 자주 입었지만 이제는 손이 잘 가지 않는, 그래도 버리지 못한 옷. 내 옷장에는 졸업 사진과 면접을 책임졌던 정장, 노동조합 조끼, 국회에서 입은 정장, 그리고 지금의 작업복이 함께 걸려있다. 내 옷장은 내 이력서다.
정치를 하는 동안 옷을 많이 활용했다. 현장 노동자의 작업복도 그때 처음 입어봤다. 국정감사 등 상임위원회 회의실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문하는 국회 본관 입구에서 카메라에 잡히려 애썼다.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이야기를, 당신들의 모습으로 해보겠다고 하니 기꺼이 작업복을 빌려주셨다. 국회에서 ‘큰일’ 할 거라고 노조에서 보내주신 옷은 세탁해 다려져 있었고 안전모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깨끗한 작업복은 현실을 상징하기엔 너무 말쑥했다. 하지만 말끔히 닦았어도 숨길 수 없던 안전모의 생채기엔 내가 전하고자 한 노동자들의 피땀이 있었다. 작업복은 노동자의 목소리였다.
목수가 된 뒤로, 이제 그 작업복은 내 생활이 됐다. 처음엔 어떤 옷이 작업하기에 좋은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버려도 되는 옷들을 적당히 입고 일했다. 그러다 사장님이 어엿한 작업복과 안전화를 사주셨다. 그날 현장에서 같이 일한 거의 모든 동료가 “이야~ 이제 목수 태가 나네!” 하고 웃으며 지나가셨다. 의원 시절 작업복을 입을 때마다 쇼라고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었는데 잘 어울린다니 어색했다. 옷이 몸에 맞는지보다 그 옷을 입은 나를 인정해 주는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지금은 내 나름대로 취향이 생겼다. 작업용 못 주머니는 따로 있으니 바지에 주머니가 너무 많을 필요는 없다. 허리에는 밴드가 있는 게 좋고, 벨트는 쉽게 탈착 가능한 형식을 선호한다. 티셔츠는 금방 망가지니까 저렴하게 여러 벌 사는 게 편하다. 다 같이 작업복 쇼핑하러 가면 색깔 가지고 투닥거린다. 내가 “아 저는 쿨톤이라 남색이 좋다고요!” 하면 부장님은 ‘저런 게 MZ인가?’ 하는 표정으로 다른 걸 골라주신다. 풀색 바지에 황토색 상의를 매치하면 아마존 익스프레스 직원이 돼버리는 것 같은데 예쁘다고 하시니 이해할 수 없다. 규탄한다.
옷장에 작업복이 늘어난다. 작업복은 내 몸이고, 내 목소리다. 말하지 않아도 옷이 나를 말한다. 내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내 옷장은 아직도 계속 쓰이는 이력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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