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구금사태 수습국면…트럼프 “숙련인력 불러야” 전문비자 10년숙원 풀릴까

임성현 특파원(einbahn@mk.co.kr), 김성훈 기자(kokkiri@mk.co.kr) 2025. 9. 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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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 방지엔 ‘전문비자’ 절실
호주·칠레 있는데 韓은 없어
한국인 ‘E-4 비자’ 신설법안
2012년부터 美의회 계류 중
美 내부서 이민당국에 쓴소리
“亞기업 대미투자 냉각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한 후 취재진에게 국정 현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이민당국의 한국 기업 공장 건설 현장 단속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라며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한 한국의 전문 인력이 미국에 들어와 현지 인력을 훈련시킬 필요성을 인정했다. [AFP = 연합뉴스]
한국 기업의 공격적 대미 투자처인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초유의 이민 단속 사태가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만에 억류된 근로자들이 자진 출국하는 데 양국이 합의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전체 상황을 살펴볼 것”이라며 사태 해결에 나선 모양새다. 섣부른 관측이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산업계의 숙원이던 현지 비자 개선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에게는 더는 갖고 있지 않은 산업이 많다”며 “우리는 인력을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력을 양성하는 방법은 해당 분야에 능숙한 사람을 불러들여 일정 기간 머물게 하고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를 불러들여 우리 국민을 훈련시켜서 미국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 = ICE 홈페이지]
불과 이틀 전인 5일 구금된 한국 근로자를 불법체류자로 지칭하며 이민당국을 옹호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불법체류자에게 초강경 대응을 해오던 이민 정책이 관세를 무기로 대규모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과 충돌하며 자국 제조업 부활를 노리던 정책 기조가 흔들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전문가 유치를 위한 전제조건이 바로 비자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합법적 취업 비자인 H1B의 쿼터가 턱없이 부족하고, 절차가 까다롭다 보니 편법이 횡행하고 결국 대미 투자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돼왔다.

이번에도 높은 비자 문턱에 근로자들이 급한 대로 단기 상용(B1) 비자나 무비자인 전자여행허가(ESTA)만으로 미국 현지에서 근로를 하다 대거 적발된 것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 미 조지아 한국업체에 대한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의 불법체류·고용 단속과 관련한 의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외교부 당국자는 8일 기자들과 만나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를 위해) 그동안 미국 측과 협의해왔고, 한미정상회담을 포함해 각급에서 면담할 때마다 항상 이 문제를 제기했다”면서도 좀처럼 진전이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은 2007년 FTA 타결 과정에서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 문제를 협정문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당초 정부는 FTA 협상 때 전문직 자격 상호 인정·비자 쿼터 부여를 제기했지만 미국은 의회의 권한이라며 구체적인 논의를 피했다.

이 때문에 앞서 미국과 FTA를 체결하며 전문직 비자 쿼터를 확보했던 멕시코, 캐나다, 칠레, 호주, 싱가포르 등과 비교해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후 2012년부터 정부는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 쿼터(E-4 비자)를 신설하는 ‘한국동반자법(Partner with Korea Act·PWKA)’ 입법을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수년째 설득전을 펴고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 = ICE 홈페이지]
한국인 전문직 인력 최대 1만5000명을 위한 최대 2년 기간의 비자를 신설하고, 고용 유지를 전제로 무제한 연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미국 로비 업체까지 고용해 최근 10년간 550만달러(약 76억원)를 들여 법안 통과를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 하원에선 영 김 의원(공화·캘리포니아)과 시드니 캠라거도브 의원(민주·캘리포니아)이 공동으로 발의한 상태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를 무기로 막대한 대미 투자를 얻어낸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번 사태의 불똥으로 각국의 대미 투자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내 제조업 붕괴를 부를 정도로 숙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미국으로선 취업비자 문제 해결 없이는 기대했던 투자 유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주 현대 배터리 공장에 대한 이민 단속 작전 이후 나는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 모든 외국 기업들에 이민법을 존중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혀 불법체류에 대해선 지금처럼 강경한 제재를 이어갈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한 후 취재진에게 국정 현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AP = 연합뉴스]
이번 사태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미국 이민당국의 과도한 단속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단속과 중범죄자를 다루는 것처럼 족쇄와 쇠사슬까지 동원된 단속 과정에 대해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미국에 3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한 지 불과 2주 만에 상대 국민을 향한 과도한 단속에 나섰다는 점에서 반감이 클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태미 오버비 전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이번 단속이 태평양 전역에 큰 충격을 줬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아시아 기업들의 미국 투자 의지에 냉각 효과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기업인들과의 정책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스1]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정책간담회에서 국내 기업의 원활한 미국 활동을 위해 비자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비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석방이 발표된 데 대해 경제계를 대표해 감사드린다”며 “향후 미국 내 국민 안전과 기업의 원만한 경영 활동을 위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비자 쿼터 확보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당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 = 임성현 특파원 / 서울 = 구정근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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