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인사회 “배신감”… 美언론도 “조지아 성장중심 흔들” 비판
휴대폰 둔채 끌려가는 직원도
트럼프 “인재입국 절차 보장”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메타플랜트)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연방 당국이 벌인 대규모 단속은 ‘급습’이었지만 수개월 관찰 끝에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 국토안보부 산하 HSI(국토안보수사국)를 비롯한 ICE, FBI, DEA(마약단속국) 등 여러 기관이 요주의 스팟으로 찍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단속 며칠 전 ICE 요원들의 동향에 대한 첩보까지 돌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 매뉴얼이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방어권 고지(미란다 원칙)도 않고 쇠사슬로 묶어= 대다수 직원들은 “휴대폰을 사무실에 둔 채 끌려 나갔고, 가족과 연락도 못했다”고 연합뉴스가 현지 취재로 전했다. 나중에 ICE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현장 영상 자료에는 수갑과 쇠사슬로 손목, 허리, 발목이 동시에 묶인 채 버스로 이송되는 장면이 담겼다. ‘미국의 필요’에 따라 공장을 지으러 온 근로자들을 비자내용이 다르다고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것은 심각한 결례이자 인권침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깊은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체포된 한국인 중 남성은 엘러벨 인근의 ICE 교정시설에, 여성 직원 소수는 3~4시간 거리의 스튜어트 여자 전용 시설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와 AP통신에 따르면 일부는 수감시설 내 사생활조차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돼 건강 위협이 제기됐다고 한다.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한 협력사 관계자는 “수갑이 너무 강하게 채워졌다”며 “미란다 원칙(피의자에게 방어권 고지)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비자 면제 프로그램(ESTA) 혹은 B1 단기 방문비자를 이용한 이들 대부분은 자진 출국을 선택해도 최대 10년 입국 제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 대다수가 관련 분야 기술진이어서 미국 입국 제한은 개인이나 회사 입장에서도 큰 인력누수가 아닐 수 없다.
◇美, 투자하라며 공장 짓는 기술자 입국은 제한 이중적= 미국 투자기업들은 현장 업무의 전문성을 고려해 한국에서 기술진을 파견해 공장 건설을 추진해 왔지만, 정작 미국은 적절한 비자를 제때 발급하지 않아 이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 장려하면서도, 필요 인력의 합법적 입국을 막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미국 당국이 한국 기업의 투자 유치를 장려하면서도, 정작 숙련 인력에 대한 비자 발급은 어렵게 하고 있다”며 “아시아계 기업들의 미국 투자 의지를 꺾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에선 “불법체류자 단속이 예상 됐었는데, 대응을 하지 않아 문제가 커졌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 기업이 비자 발급 지연을 이유로 현지 인력을 확보할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단기 체류 비자나 ESTA를 활용해 작업을 해온 관행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지 협력사 관계자에 따르면 “3일 전부터 단속 기류가 있었다”면서 문제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업무를 강행한 잘못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 언론은 이번 단속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조업 부활”과 “불법 노동에 대한 단속 강화”라는 상충되는 목표를 동시에 부각시켰다고 지적했다.
WSJ는 7일 온라인판 첫 화면에 ‘현대차에 대한 급습이 조지아의 성장 중심지를 흔들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지아의 한인 사회 사람들은 이번 이민단속 급습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한국과 좋은 관계”…“인재 입국절차 마련할 것”= 한국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과 사태 수습을 논의하고 있다. 조현 외교장관이 8일 워싱턴DC로 출국했다. 정부는 이들의 신속한 귀환을 위해 전세기를 띄울 예정이다. 귀국 일시는 10일쯤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미 이민당국에 재판보다는 모두 ‘자발적 출국’(Voluntary Departure)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다만 자진 출국을 해도 추후 미국에 입국할 때 입국 제한이나 불이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이 될 가능성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US오픈 테니스 남자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뒤 워싱턴DC로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과 문답하며 이번 이민 단속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미관계 경색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린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한국 등에서 전문가를 초청해 일정 기간 미국에 머물게 해 우리 인력을 배터리·컴퓨터·조선 등 복잡한 제조 분야에서 훈련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미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 인재들이 합법적이고 신속하게 입국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할 것”이라고도 썼다.
한국 정부와 기업 모두 이번 충격을 계기로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인력 파견체계 구축, 확대되는 대미 투자에 합당한 비자(H-1B, E-1 등) 추가 확보, 긴밀한 외교적 지원체계, 비상 대응 매뉴얼 등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실감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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