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 학교 두고 먼 곳 등교?”…재건축 단지 ‘초교 배정’ 곳곳 갈등
잠실래미안아이파크·잠실르엘 등 교실 증축 반대
“특정 단지가 공립학교 독점 못해” 입주 예정 주민들 반발

서울 도심 아파트들의 재건축으로 갑작스럽게 세대수가 늘어나는 지역이 생겨나는 가운데 ‘전학생 학교 배정’ 문제가 새로운 갈등 요소로 점화되고 있다. 기존 주민들은 학급 과밀을 우려해 새 학생을 받기 꺼리는데, 앞으로 진행될 전반적인 학령인구 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학교 신축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사례로는 올해 말 입주를 앞둔 서울 송파구 재건축 단지 ‘잠실래미안아이파크’(잠래아)와 기존 배정 단지인 ‘파크리오’ 주민들의 갈등이 꼽힌다. 잠래아로 이사 올 초등학생들은 현행 통학 구역상 파크리오 학생들이 다니는 잠실초로 배정되는데, 이럴 경우 학급 과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잠래아 입주에 이어 내년 1월 ‘잠실르엘’ 입주까지 시작되면 이 지역 학급 과밀 문제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잠실초의 학급당 평균 인원은 20.6명으로 교육부 권장 기준(28명)보다 교육환경이 좋은 편이지만, 현 시설을 유지한 채 잠래아와 잠실르엘 학생들(교육청 기준 약 1천명 추산)이 유입되면 학급당 인원이 30명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교육청은 신규 유입 학생들을 잠실초와 인근 잠현초·잠동초에 분산 배정하면서 교실을 증축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지난달 26일 잠실초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실 증축 관련 온라인 설명회에 이어 29일 대면 설명회도 열었다. 하지만 파크리오 주민들은 공사 기간에 학생들이 지내야 할 모듈러 교실(조립식 교실) 등의 안전 문제를 들어 증축 공사에 반대하고 있다. 설명회에서도 피케팅 시위 등이 벌어졌고, 단지 내에 ‘잠실초·잠현초 교실 증축(모듈러)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을 걸거나, 교육청에 잇따라 민원을 넣는 등 단체 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파크리오 주민들은 통학 셔틀버스 등을 이용해 잠래아 학생들을 1㎞ 이상 떨어진 방이초에 배정하라는 등의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잠래아 쪽 학부모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잠래아가 재건축되기 전 잠실진주아파트였던 시절부터 초등학교 통학 구역상 잠실초 배정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잠래아 입주예정자 남아무개(39)씨는 “코앞에 초등학교가 버젓이 있는데 큰길을 두 번 건너야 하는 초등학교로 아이들을 보내라는 주장은 같은 학부모로서 서운한 마음이 들 정도”라며 “입주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잠실초를 파크리오가 지은 것도 아니고 공립학교를 특정 단지가 독점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학교 신설’ 필요성도 제기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애초 잠래아(2678가구)와 잠실르엘(1865가구)은 학교 신설 최소 기준인 4천가구에 못 미치는데다, 갈수록 가파르게 줄어드는 학령인구를 감안하면 학교 신설은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교육환경영향평가 업체인 이에이그룹엔지니어링의 손상혁 본부장은 “4천가구 이상 대단지에서 내놓은 기부채납 용지에 학교를 짓는 경우가 아니면 인구 구조상 학교를 새로 짓긴 쉽지 않다”며 “학교 쪽은 재건축 단지에서 기부채납한 자금으로 증축과 리모델링을 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잠래아의 경우 이미 교육청과 협의 끝에 99억원을 학교 증축 재원으로 기부채납하기로 한 상태다. 양진휴 잠래아 입주예정자협의회장도 “잠래아는 이미 재건축 사업 인가 때부터 교육환경영향평가를 받았고 굳이 학교를 신설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며 “2022년에 잠래아 입주 등을 대비해서 교육청이 잠실초 증축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파크리오 반대로 미뤄졌다”고 말했다. 교육환경영향평가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학생 수, 학교 환경, 안전 등 교육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심의제도인데, 반경 200m 이내에 학교가 있는 정비사업지라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런 갈등이 비단 잠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서울 서초구에서도 ‘래미안 원베일리’ 입주를 앞두고 원베일리의 통학구역인 잠원초의 학급 과밀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재건축 공사 때문에 인근 반포초마저 2023년부터 3년간 휴교에 돌입하면서 과밀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원베일리 거주 초등학생 일부가 반포대로 건너편 반원초로 배정되면서 문제는 일단락됐으나, 반원초 통학 동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초등학생 등·하굣길 안전 문제를 비롯해, ‘초품아’(초등학교가 바로 붙어 있어 도보 동선에 차로가 없는 아파트) 프리미엄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앞으로도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 입주 시마다 이런 문제는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이뤄지면 세대수 자체가 늘어나는데다, 학령기 자녀를 둔 가구가 학군지로 몰리는 경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주거학회논문집에 실린 ‘서울시 재건축 사업지역 내 초등학교 학생수 변동요인 분석’ 연구를 보면, 재건축 전후의 학생수 변화율이 최소 19.5% 감소부터 최대 18.4% 증가까지 편차가 무척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리영 안산미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건축이 이뤄진 신규 아파트에는 기존 구축 아파트보다 소득수준이 높고 자녀 수가 많아 교육에 관심이 많은 인구가 유입되는 경향이 크다”며 “특히 서울 강남권의 경우는 이런 문제가 반복될 수 있어 재건축 사업에서 유발 학령인구 추정을 할 때 교육 수요의 차이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명숙 부동산 마케팅 솔루션제작소 오지랖 대표는 “재건축에 따라 세대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아이들 학습권을 둘러싸고 단지 간 갈등으로 비화한 것은 안타까운 사례”라며 “주민 간 충돌 없이 교육 수요를 맞출 수 있도록 행정적인 사전 중재가 절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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