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드라이브스루라니, 악몽이 다시 왔다”…강릉 ‘가뭄재난’ 수돗물 중단 임박

박수혁 기자 2025. 9. 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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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가뭄 한달 현장
강릉시청 직원들이 8일 시민들에게 생수를 나눠주고 있다. 박수혁 기자

“코로나19 때 드라이브스루(승차구매) 방식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던 악몽이 떠오릅니다. 당시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몰라 답답했는데, 이번 가뭄 사태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더 답답합니다.”

8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스피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권일배(68)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권씨는 “살다 살다 물까지 받으러 다닐 줄은 몰랐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다시 드라이브스루를 경험해보니 가뭄이 코로나 때처럼 ‘재난사태’라는 것이 더욱 실감이 난다. 시민 입장에선 물 한방울이라도 더 아껴쓰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강릉시청 직원들이 시민들에게 8일 생수를 나눠주고 있다. 박수혁 기자

강릉시가 저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지난 4일부터 모든 시민에게 생수 나눠주기를 시작했다. 강릉시는 애초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시민들에게 생수를 나눠줄 계획이었지만 저수율이 지속해서 하락하자 계획을 앞당겼다. 8일 오후 3시 기준 저수율은 12.4%다. 배부 물량은 3615t으로 1인당 12리터(1일 2리터씩 총 6일 사용량)이다.

이날 방문한 강릉스피드스케이팅장은 ‘코로나19’ 당시를 방불케 했다. 강릉시가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생수(병입수) 배급에 나섰기 때문이다. 배급 마지막 날인데도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끝도 없이 몰려왔다. 시청 직원들은 차량을 세우고 이름과 주소, 가구원 수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마친 뒤 뒷자리나 트렁크에 생수를 실어주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권혁륜 강릉시청 행정지원과 주무관은 “한 묶음에 12㎏이나 하는 생수를 온종일 나눠주고 집에 가면 초주검이 된다. 그래도 직원들이 힘들어 할까봐 본인이 싣겠다거나, 창문 너머로 ‘고맙다’ 혹은 ‘고생이 많다’고 응원하는 시민들 덕분에 버티고 있다. 코로나19처럼 가뭄도 반드시 끝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소방동원령 2차 발령으로 급수 지원을 위한 소방차 20대가 8일 추가로 강릉에 배치됐다. 박수혁 기자

강릉에선 주요 식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 하락을 막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날 강릉시 연곡면 강북공설운동장에는 경남과 경북, 전북, 울산, 대전, 부산 등 전국에서 달려온 1만리터급 물탱크차 20대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강릉에서는 재난사태가 선포된 지난달 30일부터 1차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돼 물탱크 등 차량 50대가 투입돼 활동해왔다. 7일 2차 발령으로 이날 20대가 추가돼 강릉에서 급수활동을 펴는 소방차는 모두 70대에 이른다. 소방 물탱크차 70대는 종일 인근 지역 소화전에서 담아온 물을 정수장에 쏟아붓거나 제한급수로 정수장 직접 공급이 중단된 저수조 100t 이상을 보유한 아파트나 대형 숙박업소 등을 찾아다니며 급수를 지원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국가소방동원령 2차 발령으로 급수지원을 위한 소방차 20대가 8일 추가로 강릉에 배치됐다. 박수혁 기자

경남 양산소방서에서 근무 중인 국경호 소방장은 “새벽 5시에 출발해 4시간 넘게 달려 강릉까지 왔다. 경남은 어제 비가 오고 아침저녁으론 제법 가을 느낌이 나는데 여기는 아직도 한여름 같은 날씨라 깜짝 놀랐다. 가뭄으로 고통받는 시민을 위해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급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급수 지원에 나선 소방관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날 현장에는 엘에스(LS)그룹의 지원을 받은 커피트럭이 등장해 연신 소방관들에게 커피 등 음료수와 샌드위치 등 간식을 나눠줬다. 커피트럭에는 ‘준비한 음료와 간식 드시고 오늘도 힘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커피트럭을 운영하는 변형규(35)씨는 “급수지원에 땀 흘리는 소방관들을 위해 아침 6시부터 나와 일하고 있다. 소방관·시민들 모두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낼 수 있게 맛있는 커피로 돕고 싶다”고 말하고 활짝 웃었다. 시민들은 ‘강릉의 물을 지켜주시는 소방관님,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내걸고 소방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엘에스(LS)그룹의 지원을 받은 커피트럭이 등장해 소방관들에게 커피 등 음료수와 샌드위치 등 간식을 나눠주는 모습. 박수혁 기자

정부에서도 육·해·공 다방면으로 급수 지원에 나서는 등 ‘가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해군은 지난 6일 강원 강릉지역 가뭄 해소를 위해 군수지원함 대청함(4200t급)을 투입해 급수지원에 나섰다. 오는 11일에도 대청함을 투입해 맑은 물 45만ℓ를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산림청과 국방부는 산불 진화헬기 등 10대를 투입해 경포호수에서 물을 담아 식수 공급원인 오봉저수지에 투하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총력전에도 강릉지역 생활용수의 87%를 담당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지속해서 하락해 ‘수돗물 공급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코앞에 두고 있다. 앞서 강릉시는 저수율이 10% 미만으로 내려가면 시간제·격일제 제한급수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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