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보장, 이진숙의 경우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기자 2025. 9. 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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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7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정말 강적이다. 고립무원 상황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받기 신공’을 시전한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보수 여전사’,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불청객’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이야기다. 그는 요즘 정부를 상대로 가열찬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내 임기를 보장하라!” 기회 있을 때마다 “내 임기는 내년 8월까지”를 되뇐다.

물론 법에 규정된 임기는 보장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위원 임기를 3년으로 정해 놓고 있다. 이진숙의 임기, 내년 8월까지가 맞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임기를 보장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방통위설치법은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임기는 독립성 보장을 위한 장치다.

여타 중앙행정기관과는 달리, 별도의 법률로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행정기관이다. 방송의 재허가·재승인 등 방송사의 생살여탈권도 쥐고 있다. 방통위가 정치권력에 예속되면 방송 장악과 언론 탄압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 방통위를 보라.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이런 맥락을 거세한 채 단순히 ‘임기’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사안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이진숙 위원장의 ‘임기 보장 투쟁’은 과연 정당한가. 그간 그의 행적에 비춰 보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제 와서 ‘법치’ 운운하며 임기 보장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후안무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에둘러 말하지 않겠다. 이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 장악을 위해 방통위에 꽂은 인물이다. 정권 차원에서 기획한 ‘방송 장악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로 낙점된 이가 바로 이 위원장이다. 전임 이동관·김홍일 위원장이 방송 장악 1보 전진을 위해 차례로 ‘총알받이’를 한 결과다. 그 과정에서 연거푸 벌어진 ‘탄핵안 발의-꼼수 사퇴’ 소동은 하도 기괴해서 지금까지 뇌리에 선명하다.

이 위원장은 주어진 임무에 누구보다 충실했다. 취임 첫날 전체회의를 열어, 김홍일 위원장이 의결해 놓은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계획’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들을 갈아치웠다. 눈엣가시 같은 문화방송(MBC) 장악을 위해 감행된 이날 회의에는 이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단 두명만 참여했다. 둘 다 대통령 몫 방통위원이니, 사실상 대통령 의중대로 공영방송 이사진이 물갈이된 거나 마찬가 지다.

이 위원장은 2023년 6월 한국자유총연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엠비시를 국민에게 돌려주려면 중도적이고 중립적인 인물이 사장으로 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소신’을 현실화하고 싶었던 걸까? 그가 선임한 방송문화진흥회(문화방송 대주주) 이사들 가운데는 극단적으로 편향된 이들이 다수였다. 다행히 법원의 제동(이사 임명 효력 집행정지)으로 문화방송이 정권의 수중에 떨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불법적인 ‘2인 체제 의결’로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그는 수차례 보수 유튜브에 출연해 정치적 발언을 내뱉었다. “민주당이나 이 좌파 집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이다” “가짜 좌파들하고 싸우는 전사들이 필요하다”….

감사원은 지난 7월 이 위원장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주의’ 처분을 내렸다. “유튜브에 수차례 출연해 특정 정당을 직접 거명하며 이를 반대하거나 정치적 편향성을 나타내는 발언”을 하는 등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방통위설치법에는 “이 법 또는 그 밖의 다른 법률에 따른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 위원을 면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대통령실이 직권면직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그는 문화방송 자회사 주식 보유와 관련해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공직자윤리법 위반(이해충돌) 통보를 받기도 했다.

사실, 이재명 정부와 함께 가기 어렵다는 걸 이 위원장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대선 공약대로 방통위 개편이 이뤄지면 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적 조건도 있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임기 보장’을 요구하는 속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권과 맞짱 뜨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정치적 체급’을 높이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미 정치권에선 내년 대구시장 출마설이 나돈 지 오래다. 끝까지 방통위를 정치로 오염시키는 작태가 고약하기 짝이 없다.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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