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돈 내고도 뺨 맞은 한국 기업들 노동 비자 더 받을까?

김준 기자 2025. 9. 8. 13: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한국인 노동자 체포·구금과 관련, “지금 이 나라에 배터리에 대해 아는 인력이 없다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 일부 인력을 (미국에) 불러들여 우리 인력이 배터리 제조든 컴퓨터 제조든 선박 건조이든 복잡한 작업을 하도록 훈련시키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들(한국)이 말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검토해보겠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투자 유치를 해놓고도 비자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편법이나 탈법을 저지르는 현 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나 기업들의 목소리가 전달됐기 때문으로 읽힌다.

이에 따라 미국 투자 한국 기업들의 오랜 민원이던 비자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8일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대부분의 한국 기업 직원들은 주재원 등 장기 체류자가 아닌 이상 미국 출장 때 비자면제 프로그램의 일종인 ESTA(전자여행허가제)나 상용·관광 비자인 B1, B2 비자를 통해 미국에 입국해왔다.

이번에 미국 이민국에 체포된 한국인 노동자들도 대부분이 ESTA나 B1, B2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단기 출장자로 알려졌다. 노동 비자는 거의 발급이 안되는 반면 ESTA는 큰 비용 없이 빠른 시간에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을 하려면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 쿼터가 제한돼있다. H-1B 비자 쿼터는 연간 8만5000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L비자도 있는데, 이는 본사 직원 해외 파견에 주로 이용되며, 최소 1년 근무 경력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엔솔은 미국 현지에서 3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4개 공장을 건설 중이다. 특히 이번에 단속된 공장처럼 공기 막바지에는 반드시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데, 노동 비자를 발급이 사실상 불가능해 단기 비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전문 인력들은 비자 기간이 지나면 다시 한국으로 출국했다가 재입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공개한 LG엔솔 배터리 공장 단속 현장. ICE 영상 캡처

이번에 체포된 노동자 중에는 LG엔솔의 인도네시아 배터리 공장 직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인인 이 직원은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건설과 세팅, 운영에 참여한 전문가다. 이민국이 덮친 배터리 공장 세팅을 위한 필수 인원임에도 노동 비자를 받지 못해 관광비자로 일하다 체포됐다.

최근 미국 정부가 불법 체류자 단속에 대한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음에도 한국 기업들이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도 있다.

조지아주는 과거에도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민국의 단속이 있었던 지역이다. 2021년 코로나 사태 당시 현지 기아차 공장에서 일할 직원이 부족하자 한국 내 현대차 그룹 계열사 직원들이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했다가 이민국의 단속을 받았다.

특히 미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래 불법 취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상황에서 이번 단속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할 말이 많고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현지 노동력만으로는 공기 맞추기가 불가능하고, 생산 시설이나 장비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라 아무나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전문 인력이 반드시 필요한데 비자를 안 내주니 편법을 사용한 것이라는 해명이다.

한 미국 투자 업체 관계자는 “공장 가동 일정 등은 미국 정부와 주 정부, 고객사들과 상의해서 결정하는 데, 이 모든 게 계약이고 약속이며 이행을 못 할 경우 엄청난 금전적 손실이 발생한다”면서 “그런데도 비자가 안 나오니 관광비자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투자 업체 직원은 “공장 세팅을 빨리 끝내고 가동을 서둘러야 현지 미국인들이 수천 개의 일자리를 갖게 된다”면서 “공장 완공과 가동을 위한 한국인들의 노동이 업체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이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낮다”고 안타까워했다.

미국 내 인력 사정으로 현지 기업에 공사를 맡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한국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주 정부에서 공장을 만들 때 현지 건설업체에게도 기회를 주라고 해서 맡긴 적이 있었는데 단순 건설 업무인데도 인력을 구하지 못해 그들 역시 ESTA를 통해 인력을 들여와 공사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면서 “단순한 일을 하는 노동자도 구하기 힘든데 배터리 공장처럼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미국 현지에 많지 않다”고 말했다.

조지아주의 보수적인 이민 정책도 이번 한국인 노동자 체포 구금에 한몫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조지아주는 면화 농장 등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현지 노동 인력이 부족해 미국 내 불법 체류자들이 대거 흘러들어오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주 의회에서 불법체류자들 관련 법령을 수시로 강화하고 이민국의 단속 강도도 높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한국 투자 기업에 대한 조지아 주 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는 피해갔지만 해당 지역 최대 규모인 현대차 메타플랜트와 조지아주 북부에 건설 중인 현대차 SK온 합작 공장도 단속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조지아에 거주한 한 시민은 “조지아주 면화와 옥수수 농장 등에는 일할 사람이 많지 않아 과거 한국 할머니들도 관광 비자로 입국해 목화 솜을 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조지아 등 미국 남부 주들의 이민국이 강한 불법체류자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