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65) 유신공, 왕의 길을 열다

유신공과 춘추공의 만남은 신라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길을 만들어낸 역사적인 사건으로 주목된다. 유신공이 춘추공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신라왕실의 부름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춘추공 또한 유신공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고구려를 거쳐 당나라까지 진출해 군사원조를 얻어내고, 백제를 정복해 18년 만에 복수를 이루는 일은 꿈에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피로써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서로를 보완하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당대 최고의 장군으로 성장하고, 가문의 수치를 씻고 왕으로 등극해 부귀영화를 맛보는 주인공이 됐다.

◆신화전설: 유신공의 위엄
선덕여왕 말기에 이르러 김유신 장군은 이미 삼국에서 감히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장수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아닌 사실로 시중에도 자자하게 소문나 있었다. 신라의 군사들을 호령하던 상대등 비담조차도 유신공 앞에서는 한 호흡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김유신 장군의 솜씨는 특출했다.
이러한 김유신 장군의 무위를 신뢰한 선덕여왕은 장군을 압독군주로 명해 고구려와 백제 등의 외부로부터 침입해 오는 세력에 대해 신라를 최종적으로 방어하는 무거운 책임을 맡겼다. 진덕여왕 시대에는 유신공은 춘추공과 더불어 나라의 중심인물들로 성장해 자리를 잡고, 국가 대사를 좌지우지 하는 핵심세력으로 등장했다.

신라 진덕여왕의 시대에 알천공, 임종공, 술종공, 무림공(자장의 아버지), 염장공, 유신공이 남산 오지암에 모여 나라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이때 큰 호랑이가 좌석으로 뛰어들어왔다. 여러 공들이 깜짝 놀라 일어났지만 알천공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히 웃고 이야기하면서 호랑이의 꼬리를 붙잡아 땅에 메어쳐 죽였다. 알천공의 완력이 이와 같았으므로 맨 윗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여러 공들은 모두 유신의 위엄에 복종했다. 이와 같이 역사 기록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보듯 권력의 중심은 유신공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흔적: 도당산
경주 남산은 고위산과 금오산, 도당산으로 크게 구분된다. 고위산은 남쪽, 금오봉은 가운데, 도당산은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도당산 주변에는 인왕사와 천관사 등의 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지금도 석재들이 남아 있다. 도당산의 기운은 상당히 영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가 처음 생성되기 이전 육부촌장들이 이곳에서 모여 회의를 열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한 이후 신라의 중요 회의들이 열렸던 곳이다. 김유신 장군이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한 곳도 도당산이다. 그러고 보면 도당산은 왕이 난 자리가 된다. 왕을 추대하기 위한 회의, 백제와의 전쟁을 앞두고도 긴 회의가 열렸을지 모른다.

일정이 바쁘다면 도당산에서 남산을 오르지 않고 남산 입구의 상서장을 둘러보고 돌아와도 산책로로 좋은 코스다. 상서장은 신라말 신동으로 알려진 최치원이 왕에게 올리는 글을 작성한 곳이라 하여 이름지어진 집이다.

◆스토리텔링: 김유신 신화의 서곡
서기 654년, 신라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진덕여왕이 붕어하고 왕위는 공석이 됐다. 왕실은 성골의 피가 마르며 뿌리부터 흔들렸고, 귀족들은 저마다 왕위를 노리며 칼을 갈고 있었다.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그때, 서라벌의 높은 성루 위에 한 사내가 조용히 서 있었다.
풍월주로 화랑의 우상이었던 김유신이다. 화랑에서 자라 무수한 전투를 지휘한 장군. 천신의 가호 아래 검을 들고 나라를 지켜온 영웅. 그의 눈은 왕경을 내려다보며 깊은 고요 속에 빛나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조용히 한 사내가 다가왔다. 가는 눈매에 부드러운 언변, 하지만 누구보다 날카로운 정세 판단을 지닌 외교의 달인 김춘추였다. 진지왕의 손자이며 진골 귀족 중 가장 정치적으로 노련한 솜씨로 궁중의 실세로 떠오르며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청년 정치가였다.
"이 나라가 더는 갈라지게 둘 수 없습니다." 김춘추의 말에 김유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골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진골이 나라를 이끌 때다. 귀족들의 움직임은 내가 봉쇄하고 하나로 뜻을 모으도록 하겠으니 편안하게 즉위식을 준비하시오."

서라벌의 밤은 숨죽인 채 피바람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유신은 자신이 이끄는 병력, 충성스런 화랑과 정예 병사들을 조용히 왕경으로 불러 들이고 곳곳에 매복하게 했다. 무력을 쓰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피를 흘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귀족들 중 일부는 반발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김춘추는 성골이 아니다! 감히 왕위를 넘보다니!" 하지만 김유신의 검 앞에 감히 대항할 자는 없었다. 그는 말없이 단상에 올라 섰고, 형형한 눈빛으로 반대하는 모두의 기세를 잠재웠다.
"이 나라에 더는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장군의 목소리는 천둥 같이 좌중을 압도했다. "김춘추 공은 외교로 고구려와 백제를 저지했고,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 나라의 길을 열었다. 그는 피가 아닌 지혜로 이 나라를 살렸다. 지금 이 나라를 이끌 어갈 지도자는 바로 춘추공 한 분 뿐이다!"
병사들은 칼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고, 백성들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신라는 성골의 시대를 마감하고, 진골 출신의 첫 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맞이했다.
즉위식은 검소했지만 위엄이 있었다. 왕좌에 앉은 김춘추는 김유신을 곁에 세우고 말했다. "이 왕좌는 나의 것이 아니요. 유신공의 검과 백성의 바람이 만든 자리요." 김유신은 고개를 숙였다. "왕이 계시지 않으면 검은 방황할 뿐입니다. 저는 이제 그 검을 삼국통일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날부터, 신라는 변하기 시작했다.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외교를 더욱 밀접하게 정비하고, 군제와 관제 개혁에 나섰다. 김유신은 장군으로 전장에 나서 백제의 동향을 살피고, 고구려의 틈을 읽었다. 두 사람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서로 다른 방식이었지만, 목표는 같았다. 신라의 통일, 하나 된 한반도. 백제와 고구려는 여전히 강대했고, 통일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하지만 김춘추의 책략과 김유신의 검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의 동맹은 단순한 권력 연합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피로 맺은 맹세였다.
언젠가 김유신은 전쟁터에서 피 묻은 갑옷을 입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읊었다. "검이 지키는 평화는 피로 물들었지만 그 피는 미래를 여는 씨앗이 되리라." 그리고 그 씨앗은 마침내 삼국통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 모든 것은 한 사람의 검이 한 사람의 왕을 세웠던 그 밤에 시작됐다. 하늘은 사람이 다스리지 않는다. 사람의 뜻이 하늘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뜻을 검으로 바꾼 자, 그가 바로 김유신이었다. 김춘추는 김유신과의 만남으로 왕좌에 올라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주인공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흥덕왕은 무를 통해 나라를 일으킨 김유신 장군의 공을 높이 받들어 김유신 장군을 흥무왕으로 추서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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