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속도전? 살 사람은 "돈 없어"…지을 사람은 "돈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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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기 신도시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주민제안제도를 전면 도입하고, 정비계획 수립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등 '속도전'을 예고했다.
성남 분당, 고양 일산, 안양 평촌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속도를 높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대규모 자금 조달 없이는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주민들이 제안서를 내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도 시공사가 참여할 유인이 없다면 사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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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기 신도시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주민제안제도를 전면 도입하고, 정비계획 수립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등 '속도전'을 예고했다. 오랜 기간 정체돼 있던 재건축 사업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겠다는 신호다. 그러나 정작 시장에서는 이 같은 행정적 유연성보다 금융 규제와 사업성 악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먼저 풀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세종 관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7일 관계부처 합동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놨다. 성남 분당, 고양 일산, 안양 평촌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속도를 높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물량 제한은 여전하지만, 속도를 최대 1년 6개월 줄인다는 것이다.
핵심은 돈이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대규모 자금 조달 없이는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6·27 대출 규제 이후, 조합원이나 일반 수요자의 금융 접근성은 크게 낮아졌다. 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 제한, 경락잔금대출 한도 축소 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정비사업 추진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불안도 걸림돌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권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 1분기 말 4.49%로 지난해 말 대비 1.07%포인트 상승했다. PF 대출 연체율이 4%대에 진입한 것은 금융당국이 관련 통계를 공개하기 시작한 2023년 3월 말 이후 처음이다.
이번 공급대책 발표에서 대출규제 일부 강화 등 수요 억제책이 병행됐다는 것도 시장의 불안감을 키운다.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분양 시장까지 침체되면서 대형 건설사조차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정부가 절차를 아무리 줄여도 금융기관이 돈줄을 죄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업을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분양 시장도 문제다. 2025년 9월 전국 분양 예정 물량은 3만여가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7% 늘었다. 정부도 인정했듯이 수도권에는 공급이 부족하고 지방에는 공급이 넘친다. 넘치는 공급은 곧 미분양 리스크다. 수도권 외곽과 지방에서는 청약 경쟁률이 '1'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건설사 임원은 "공급 확대 정책은 결국 시장 흡수력을 고려하지 않은 공급 과잉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속도전'이라는 행정 구호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주민들이 제안서를 내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도 시공사가 참여할 유인이 없다면 사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사를 찾지 못하면 추진이 불가능하다. 시공사는 금융 불안과 분양 리스크 때문에 발을 뺀다. 이 딜레마가 풀리지 않는 한 재건축 활성화는 말뿐인 약속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금융 리스크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얘기가 빠졌다"며 "재초환은 재건축 사업에 있어 조합원의 추가분담금을 높이는 장애요인이므로 추후 이에 대한 내용이 보완돼야 한다"꼬 말했다.
당장 1기 신도시 주민들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안고 있다. 분당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재건축이 빨라진다고 하니 반갑지만 최근 금리와 분양 시장 상황을 보면 사업이 정말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정부가 속도를 내겠다고 하지만 조합이 돈을 못 구하고 시공사가 안 들어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절차를 줄이고 행정적 속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며 "공급 확대라는 '양적 목표'보다, 공급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하는 '질적 기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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