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세운 뒤, 동네가 변했다…그래도 다시 무릎 꿇는 엄마들
[편집자주] 특수교육 대상 학생이 매년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다. 과거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어릴 때부터 조기 진단을 받는 사례가 많아진 덕분이다. 그러나 막상 이들을 적절하게 교육시킬 시설과 교사가 부족하다. 학생 수 증가속도에 비해 특수학교는 느리게 설립된 탓이다. 특수학교는 지역과의 상생을 위해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 도서관 등 편의시설을 제공할 예정이지만 일부 주민은 여전히 일방적인 반대를 고집한다. 장애학생도 가까운 동네에서 편안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교육권이 지켜지는 기본사회로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널따란 복도에 초등학교 5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선생님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던 정미경 서진학교 교감은 웃으며 "관심 주지 마세요"하고 언질을 줬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아이는 종종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다고 했다. 그는 "우리 학생들은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특수학교의 장점은 이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맞춤 교육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4일 머니투데이가 방문한 서진학교는 일반학교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9호선 가양역에서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 아파트 단지에 둘러쌓인 학교는 여느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켠에는 공용 휠체어가 정리돼 있다.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이 엄격히 분리되는 일반 학교와 달리, 복도에는 아이들이 종종 도움선생님의 손을 잡고 지나갔다. 몸은 훌쩍 컸지만 화장실도 어른과 함께 가야 하는 아이들이다.
서진학교는 2017년 학부모들이 '무릎 호소'로 여론이 바뀌고서야 2020년 가까스로 설립됐다. 오는 9일 서울 성수동에 특수학교인 성진학교 설립이 서울시의회에서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서진학교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다. 노민정 서진학교 학부모회장은 "시 외곽이 아니라 아파트, 대형마트 바로 옆에 특수학교가 있다보니 주민들도 장애아동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막연한 거부감과 우려가 완화되고 있다"며 "주민들이 먼저 '애가 혼자 있는걸 보게 되면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진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직업교육인 전공과까지 14년을 다닐 수 있다. 수업시간엔 국어, 수학, 영어가 아니라 뷰티룸, 세탁실에서 용모단정하게 옷 입기, 머리 감기, 빨래 널기 등을 배운다. 비장애아들은 가정에서 쉽게 교육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특수교육 아이들은 여러번 반복을 통해 교육해야 한다. 성미애 서진학교 교장은 "특수교육은 일상생활 자립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노 학부모회장도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자녀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일반학교를 다니다가 서진학교가 설립되면서 4학년에 전학왔다"며 "일반학교에서는 특수학급도 과밀이라 일반 교실에서 일부 생활해야 했는데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다보니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교실을 이탈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진학교에서는 중학교 3학년이 된 현재까지 편안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와도 교류를 넓히고 있다. 올해 6월 서진학교 바로 옆에는 강서도서관 가양관이 설립돼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서진학교를 건립하면서 주민 편의시설을 짓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주변에 있는 작은도서관들은 주말에 쉬는데다 평일에도 오후 5시면 문을 닫아 학교를 마친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했다. 같은날 방문한 도서관은 평일 오전에도 더위도 피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책을 읽는 시민들이 여럿 있었다.
최근에는 서진학교 졸업생 5명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기반으로 카페 취업에 성공했다. 이중 두명은 강서구에서 일한다. 서진학교에서 학생을 지원하는 사람 중 일부는 중장년세대의 일자리를 지원하는 강서50플러스센터를 통해 취업하기도 한다. 성 교장은 "개교 초기에는 악기를 켜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등의 민원도 있었지만 지금은 학생들과 주민이 함께 플로깅(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운동)에 나서는 등 함께 지역을 위한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며 "직업교육을 거쳐 지역에 있는 스마트팜 등에도 취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수학교의 벽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서진학교에서는 전학으로 한명을 충원했는데, 경쟁률이 16 대 1로 치솟았다. 특수교육 대상학생은 올해 12만735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서울 시내 특수학교는 32곳에 불과한 탓이다. 서초구 나래학교가 2019년, 강서구 서진학교가 2020년 각각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특수학교가 없는 자치구가 전체 25곳 중 8곳에 달한다. 이중 중랑구에는 동진학교, 성동에는 성진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이렇다보니 특수학교에 입학 시기에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노 학부모회장은 "학부모 사이에서는 면접관이 이름을 불렀을 때 반응만 해도 탈락, 인사만 해도 탈락이라는 말이 나온다"며 "아이와 동석해 면접관에게 우리아이가 얼마나 장애가 심각한 지 강조해 설명하고 집에 돌아오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성진학교 설립은 9일 서울시 의회만 통과되면 행정적 절차는 마무리된다"며 "특수교육대상 아이들도 근거리 통학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특수학교인 성진학교 설립이 마지막 문턱인 서울시의회를 넘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특수학교에 대해 "서울시의회는 누구도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애인 학부모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성진학교 건립을 위한 공유재산 관리계획 심의·의결에서 명확하게 '반대'를 표시한 의원은 없지만 막상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확언한 시의원도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다시 서울시의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심의를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한다.
◆ 서울시의회 "반대 의견도 테이블에 올려야"

7일 시의회에 따르면 안건 심의는 오는 9일 오전에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시의회 교육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국민의힘 의원9명과 민주당 의원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성진학교는 성수공고 폐교부지 중 3분의 2만 사용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수영장 등 주민편의시설로 짓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여러 차례 주민들과의 만나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던 성진학교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21일 주민설명회에서다. 황철규 서울시의원(국민의힘·성동4)은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6년 후 성수전략정비구역에 1만 세대가 들어올 때를 대비해 (성진학교 부지에) 고등학교를 함께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이에 동조한다. 설명회장 밖에는 '성수 2지구 명품화위원회' '성수 3지구 주택사업조합' 등 명의로 성진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성수동 거주 5년 차 조합원 윤모씨는 "재개발로 1만 세대 정도가 들어오는 데 근방에 일반고가 하나도 없다"며 "장애인 때문에 우리 애들을 버스 태워서 학교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 김 모씨도 "만 세대 학생들이 쓸 수 있는 데 소수 장애학생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다녀야 하냐"며 "입주할 사람들이 달라지면 일반고도 명문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시교육청은 신규 고등학교를 설립할 만큼 수요가 많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애초에 인근 경일고가 도선고와 통합 이전하는 계획도 재학생 수가 300여명으로 소규모학교 기준(300명)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저출산으로 재개발에도 신규 학교 수요가 낮은데다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재학생이 1000명 이상인 대형 고등학교를 선호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박상혁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국민의힘·서초1)은 반대 의견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위원장은 "합의가 되면 바로 상정해 통과시키겠지만, 안되면 투표로 갈 수도 있다"며 "별도 당론은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 소속 최재란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도 "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성진학교 건립에 찬성하지만 심의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기 어렵다"며 "다수인 국민의힘에서 안건 자체를 보류시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8년 전처럼 무릎 꿇은 학부모..."똑같은 상황 반복"

장애인 부모 측은 '일반고 동시 설립' 주장이 사실상 특수학교를 반대하기 위한 명분이라고 토로한다. 김남연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특수학교 관련 논의가 나오면 주민들이 사회적 공분을 피하기 위해 대놓고 반대는 안 하지만 (일반고처럼) 현실성 낮은 계획을 같이 제안해 무산시키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자 전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도 "성진학교와 일반고를 함께 짓는 것은 부지 규모상 말도 안된다"며 "2017년 서진학교에서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은지 10년도 안돼서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다만 특수학교가 들어온다고 해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원초적인 반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수공고 근처 부동산 중개업자 김모씨는 "부동산 시장이 오르는 분위기다보니 성진학교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인근 아파트들도 (성진학교 이슈 이후에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수학교와 부동산 가격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타지역의 경험으로 쌓인 덕분이다. 교육부 의뢰로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가 2016년 전국 16개 시·도의 167개 특수학교 주변의 부동산 가격 변화를 조사한 결과, 통계적으로 특수학교 인접지역과 비인접지역간 부동산 가격 변화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가장 최근인 2020년에 설립된 특수학교 서진학교 인근의 부동산 직원 이모씨(60대)도 "전반적으로 주택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영향을 받았지, 특수학교 영향은 없었다"면서 "5년 동안 서진학교에 관해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다. 계속 그런 건 아니지만, 급행 전철역 등이 생기다 보니 집값은 계속 오르는 추세였다"고 했다.
정인지 기자 injee@mt.co.kr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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