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할머니는 안 돼"…월세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 집주인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건강·질병 이유 임대 거부는 불법
계약 취소 때 '계약금'의 두 배 배상
임대차법 조항, 개별 계약보다 우선

Q: 정년 퇴직을 앞두고 부모님과 함께 지낼 월세집을 구하고 있는 H(58)다. 아버지는 심장 치료를 받는 데다 어머니는 치매 증상을 보이셔서 대학병원 근처를 수소문하던 중, 겨우 한 집을 찾았다. 집주인과 문자메시지로 보증금과 월세 금액을 확정했고, 약정 계약금(1,000만 원) 중 일부인 가계약금 500만 원도 송금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어머니의 치매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임차인이 계약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속였으므로 계약을 취소"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강하게 반발하자, 집주인은 "가계약금 500만 원을 돌려주겠으니 계약을 해제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인중개사가 설득했지만, 집주인이 말한 내용이 가관이었다. "계약을 진행하더라도 치매환자 때문에 월세 미납 위험이 크다. 만약 1회라도 연체한다면 즉시 계약 해지하고 내가 직접 집에 들어가 짐을 다 치워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대학병원 근처에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 6개월 만에 겨우 구한 집이다. 이 집 아니면 다른 곳을 구하기도 너무나 어렵다. 꼭 이 집에 살고 싶은데, 이런 부당한 요구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
A: 임대차계약에서 집주인이 막연한 우려나 편견으로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 법은 차별적 행위로부터 임차인을 보호하는 강력한 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있다. H씨가 겪고 있는 상황 역시 해결 방안이 있다. 집주인의 주장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우리 법체계가 보장하는 대응 방안을 안내하겠다.
인권위, "청각 장애자, 임대 거부는 위법"
집주인이 주장하는 '치매 사실 미고지로 인한 계약 취소’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가족의 건강이나 질병에 대해서는 임차인의 고지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미 같은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청각 어려움이 있는 노인에게 주택 임대를 거부한 건물주에게 인권교육을 권고했고, 임대 거부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이번 사례에서 이슈가 된 치매는 질병의 특성상 초기에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데도, 막연한 편견으로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편견에 기반한 임대 거부는 법상 근거가 없으며, H씨는 이미 체결된 계약을 당당히 이행 요구할 수 있다.
집주인의 두 번째 주장인 '가계약금 반환 해제'도 잘못된 주장이다. 임대차계약에서 집주인이 변심으로 계약을 해제하려면 계약금의 2배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 받은 가계약금이 아니라 문서로 합의한 계약금 전체가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H씨의 경우 문자메시지로 계약금을 명확히 합의했으므로, 가계약금 500만 원은 계약금의 일부일 뿐이며, 집주인이 해제하려면 합의한 계약금 전액(1,000만원)의 2배를 배상해야만 가능하다.
집주인의 세 번째 요구는 더욱 황당하다. 집주인의 '월세 1회 미납 시 자동해지 및 집기류 임의 처분' 요구는 법적 근거가 없다. 임대차에서의 기본 원칙은 법률이 개별 계약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월세를 “2회” 이상 연체 시에만 집주인이 계약 해지가 가능하며, 자동해지 조항 또한 무효이다. 그래서 설령 H씨가 계약서상 이런 특약에 동의한다 해도 특약이 전부 무효가 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집주인이 법을 위반해 무단 침입한다면 주거침입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치매에 대한 편견 해소 우선돼야
사실 H씨는 이미 승부를 끝낸 상태다. 계약금을 지급했고, 문자메시지로 주요 조건을 합의했으며, 집주인도 이를 수락했다. 이제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번복하려 한다면, 대가는 집주인이 치러야 한다. H씨는 당당히 계약 이행을 요구하거나, 2배 배상을 받고 더 좋은 조건의 집을 찾을 수도 있다.
H씨가 꼭 이 집에 살고 싶다면 치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집주인의 편견을 해소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치매 초기 단계 환자들은 대부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며, 적절한 관리하에서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간병인 고용 계획 등을 제시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H씨의 상황은 결국 가족을 지키려는 한 사람의 용기에 관한 것이다. 이는 우리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H씨에게 필요한 것은 법적 권리에 대한 확신과, 부모님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H씨의 사례는 나이 들고 아픈 부모님도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권리를 지키려는 중년 자녀의 노력이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010060001415)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1414190003905)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0710070003352)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3009540005661)
박은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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