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삯 깎고 올레길 벤치마킹…서해 최북단 섬들, 체류인구 늘리기 승부수

이환직 2025. 9. 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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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극·장] #30 인천 옹진군
버스 수준 여객선 요금 '바다패스' 발판
제주 본떠 서해 NLL 평화의 길 조성
'머무는 섬으로' 거듭나기 위해 안간힘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월요일에 상영합니다.
지난달 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도 선착장에서 관광객들이 공영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환직 기자

"승봉도 자월도 소이작도 대이작도에 덕적도까지 이달에만 벌써 다섯 번째 섬 여행이네요."

지난달 22일 오후 인천 옹진군 덕적도 선착장에서 만난 이은일(74·인천 동구)씨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등산복 차림에 등산 스틱을 든 그는 "(은퇴 후) 여유가 생겨 취미 삼아 장봉도처럼 가까운 섬을 찾아 트레킹을 하고 있다"며 "여객선 요금이 저렴해져서 더 자주, 더 먼 섬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1층 대기홀. 주말을 앞두고 덕적도, 이작도, 연평도로 향하는 관광객들과 집으로 향하는 섬 주민들이 뒤섞여 이른 시간인데도 활기가 넘쳤다. 가족들과 연평도로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30대 남성은 "인천시민은 여객선 요금이 (편도) 1,500원"이라며 "버스 요금 수준이니 부담이 전혀 안 돼 섬에 많이들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 요금보다 싼 뱃삯…여객선 이용객 33% 늘어

지난달 22일 인천 옹진군 덕적도 선착장에 정박한 여객선에서 쏟아져 나온 관광객과 섬 주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이환직 기자

24개 유인도를 포함해 115개 섬으로 이뤄진 기초자치단체 옹진군은 올해 인천시와 함께 여객선 요금 할인 폭을 크게 늘렸다. '바다패스' 사업이다. 지난해까지는 섬 주민만 대중교통 요금(편도 1,500원)을 내고 여객선을 탔지만 올해부터는 모든 인천시민으로 확대됐다. 유류할증료와 여객터미널 이용료를 합쳐도 수도권 지하철 기본요금(1,550원)보다 50원이 싸다. 여기에 다른 시도 주민 평일 요금 지원 폭도 최대 50%에서 70%로 늘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코리아프린세스호를 타고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가면 정상 요금이 7만5,000원이지만 인천시민은 1,500원, 타 시도민은 2만5,000원만 내면 된다.

여객선 요금을 버스요금 수준으로 낮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올해 1~7월 옹진군 섬을 연결하는 연안여객선 이용객은 44만9,793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3만8,019명보다 32.7%(11만774명) 증가했다. 인천시민만 따지면 지난해 29만2,920명에서 올해 37만9,313명으로 29.5%(8만6,393명), 타 시도민은 4만5,099명에서 7만480명으로 무려 56.3%(2만5,381명) 늘었다.

바다패스 시행 후 급증한 여객선 승객. 그래픽=강준구 기자

재정자립도가 전국 지자체 중 최하위권(지난해 기준 9.64%)일 정도로 형편이 열악한 옹진군이 여객선 요금 지원에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문경복 옹진군수는 "섬 접근성을 높여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생활인구는 지역에 거주하는 정주인구 외에 통근·통학·관광 등 목적으로 머물며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인구 개념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방 소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23년 도입했다. 행안부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라 지난해부터 옹진군을 비롯한 89개 인구 감소 지역의 생활인구를 산정·발표하고 있다.

생활인구는 주민·외국인 등록인구(국내 거소 신고자 포함)에 체류인구를 더해 산정한다. 등록인구가 2만 명이 채 안 되는(올해 7월 말 기준 1만9,736명) 옹진군이지만 체류인구는 한 해 평균 400만 명에 이른다. 관광객과 섬에 주둔하는 군부대 관계자, 건설 일용직 노동자 등이 포함된 숫자다. 통계청이 올해 6월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생활인구 산정 결과를 봐도 옹진군은 등록인구 대비 체류인구가 14.2배나 된다. 인구 감소 지역 가운데 강원 양양군(17.3배)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생활인구를 늘릴 저력은 충분히 갖고 있는 셈이다. 옹진군 관계자는 "80인승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백령공항도 이르면 2030년 개항한다"며 "섬 접근성 개선과 생활인구 증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머무는 섬으로...NLL 평화의 길 조성

지난달 22일 이른 시간부터 인천 중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이 붐비고 있다. '바다패스'를 시작한 이후 생긴 변화다. 이환직 기자

서해 북방한계선(NLL) 평화의 길 조성은 '머무는 섬'을 만들기 위한 비장의 카드다. 이 사업은 백령도를 비롯해 대청·소청·연평·소연평도에 안보와 관광자원을 연계한 걷고 싶은 길을 조성하는 '서해 5도 평화 둘레길'에 △백령 심청마을 보훈문화공원화 △콩돌해안 해안파크 조성 △백령 청년 문화공연단 운영 △백령 아트 스테이지 조성 등을 합친 프로젝트다.

옹진군이 제주 올레길을 벤치마킹한 '서해 5도 평화 둘레길'은 NLL 평화의 길의 핵심이다. 2029년 말까지 278억 원을 들여 백령·대청·연평면에 총 길이 66.7㎞의 둘레길을 만드는 게 골자다. 섬별 둘레길 길이는 백령도 35.6㎞, 대청도 12.4㎞, 소청도 4.5㎞, 연평도 10.9㎞ 소연평도 3.3㎞다.

옹진군은 기존 둘레길과 도로, 숲길을 관광지와 안보체험 시설, 백령도 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 사건 등의 아픈 역사, 지역 특산품 등과 연결해 주제가 있는 노선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했고 내년 1월 실시설계 등을 거쳐 7월부터 백령도 구간 공사에 들어간다. 이어 2027년 4월에는 대청·연평 구간 착공이 예정돼 있다. 백령도 구간은 2029년 12월, 대청·연평도 구간은 2028년 1월 준공이 목표다.

두 번째 사업인 심청마을 보훈문화공원화는 31억8,700만 원을 들여 백령면 진촌리 심청각 인근 3만5,360㎡ 부지에 역사기념관, 전시 공간을 갖춘 8,568㎡ 규모 보훈문화공원을 설치하고 섬 곳곳에 있는 낡은 보훈시설을 이전·재정비하는 것이다. 올해 설계 용역을 거쳐 2027년 완성을 목표로 진행한다.

천연기념물인 백령면 남포리 콩돌해안에 휴게센터와 주차장 등을 만들고 콩돌해안길을 정비하는 해안파크 사업도 추진한다. 사업비는 30억 원, 사업 기간은 2027년까지다. 콩알만한 자갈들이 깔려 있는 콩돌해안은 백령도 대표 관광지이지만 그늘과 쉴 공간이 없어 관광객들이 체류하는 시간이 짧았다. 옹진군은 관광객을 오래 붙잡기 위해 특산물, 음료를 판매하는 2층 규모 휴게센터와 벤치 등을 조성한다. 콩돌해안길에는 야자 매트를 깔고 조명도 설치할 예정이다.


주민 불편 해소·예산 마련 과제..."인구 유입 선순환 구조 기대"

백령도 둘레길. 그래픽=박종범 기자

기대감 못지않게 과제도 많다. 여객선 요금 대중교통화에 따른 부작용과 NLL 평화의 길 조성에 소요되는 예산 마련이다. 섬 관광객이 늘면서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못한 다음 날이나 주말에는 섬 주민들이 배표를 구하지 못해 섬이나 뭍에 발이 묶이는 경우가 늘었다. 관광객들이 가져와 버리고 가는 쓰레기와 불법 산나물 채취·해루질도 골칫거리다. 당일치기 비중이 높은 데다 먹고 마실 것을 싸오는 관광객도 많아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덕적도 주민 김정덕(67)씨는 "아직까지는 득보다 실이 많은 것 같다"며 "자리를 잡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옹진군 관계자는 "접경지역이라는 서해 5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살려 관광이 체류로, 그리고 정주로 이어지는 인구 유입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며 "정부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조성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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