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과 피아노? 차가운 논리·따스한 감성 닮았죠”

김성현 기자 2025. 9. 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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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하버드 ‘공부 벌레’ 아리스토 샴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홍콩 출신 피아니스트 아리스토 샴이 결선에서 협연하는 모습. 그는 하버드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복수 학위’ 과정을 밟았다./반 클라이번 콩쿠르 페이스북

홍콩 출신 피아니스트 아리스토 샴(29)은 임윤찬에 이은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다. ‘대회 우승 후배’인 그에게는 독특한 점이 하나 더 있다. 미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점이다.

그는 하버드대와 미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NEC)에서 ‘복수 학위’ 과정을 밟았다. 우리에게는 ‘하버드 대학의 공부 벌레들’이라는 소설과 영화·드라마로도 친숙하다. 그 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첫 내한 독주회를 위해 방한한 그는 지난 6일 인터뷰에서 “하버드대는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뿐 아니라 강한 개성과 재미난 사연, 가족적 배경을 지닌 학생들을 찾는다. 이 때문에 정작 학부 과정에서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다”며 웃었다.

그는 홍콩에서 물리 교사인 아버지와 피아노 강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탁월하다’는 뜻의 ‘아리스토’를 그의 태명(胎名)으로 지어주었다.

태명처럼 세 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열 살 때는 에틀링겐 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08년 지나 바카우어 청소년 콩쿠르와 2011년 미네소타 콩쿠르까지 연이어 석권했다. 영국 방송 다큐멘터리에 출연할 만큼 ‘음악 영재’로 주목받았다. 그는 “‘음악 영재’로 불리면 일찍부터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는 행운이지만, 반대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무작정 뛰어들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음악의 비중을 줄이더라도 최대한 다양한 삶의 경험을 쌓고 싶어서 경제학을 택했다”고 했다. 학부 시절에는 홍콩의 교통 혼잡과 터널 통행료 인상의 상관관계에 대해 계량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논문도 썼다.

“얼핏 무관하게 보이는 경제학과 음악은 ‘이성과 인간미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리스토 샴은 “논리적이고 구조적 토대가 바탕을 이루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나만의 메시지와 감정을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곡가도 브람스(1833~1897)다. “차갑고 엄격하게 보이는 작품의 구조 위에 고독과 쓸쓸함 같은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아니스트 아리스토 샴

다만 학부 과정이었기 때문에 경제학 전공뿐 아니라 역사와 정치학, 언어와 사진까지 되도록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음악 역시 폭넓은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연습에만 매몰되면 전달할 메시지를 놓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음악과 학업을 병행하는 ‘복수 학위’ 제도는 최근 한국 음악계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올해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우승자로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NEC에 다니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세현(18)이 대표적이다.

일찍부터 ‘음악 영재’로 주목받은 아리스토 샴은 가시밭길 없이 꽃길만 걸었을 것 같지만, “좌절과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도 많다”고 했다. 지난 2021년 노르웨이 콩쿠르에서 결선 진출에 탈락한 뒤 거꾸로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피아노에 헌신하는 동료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심이 들었다. 나 역시 헌신할 대상은 음악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2019년 런던 심포니(지휘자 사이먼 래틀)와 협연했지만, 그 뒤 팬데믹으로 연주 무대가 급감하기도 했다. 그 기간 그는 홍콩 라디오 방송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을 연주하고 직접 해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음악이든 삶이든 자기 주도형인 셈이다. 그의 첫 내한 독주회는 대구(7일)·천안(9일)·서울 거암아트홀(11일)로 이어진다. 11월 21일에는 다시 서울 예술의전당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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