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韓 근로자 체포 재발 방지책 시급히 마련해야

조선일보 2025. 9. 8. 00: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국토안보부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했다./ICE 홈페이지

미국 이민·수사 당국들의 불법 체류자 합동 단속으로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300여 명의 한국인 임직원·기술자와 근로자들이 체포됐다. 미 역사상 단일 사업장으로는 최대 규모 단속이었다. 마치 중범죄자인 것처럼 손과 다리를 쇠사슬이나 케이블 타이로 결박하는 장면이 공개됐고, 군용 차량과 헬리콥터까지 동원됐다.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대적 기획 단속이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 경제에 기여하려는 한국에 대한 신의를 무너트린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몇 달 전 정의선 현대차 회장을 백악관에 초청해 이 공장에 대한 투자에 감사 인사를 했었다. 지난달 하순 방미한 이재명 대통령도 3500억달러 투자 펀드에다 추가로 미국에 1500억달러 규모 공장을 짓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미측의 ‘제조업 부활’ 정책에 한국 정부·기업이 호응하고 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니 황망할 뿐이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했던 ‘전기차 보조금’을 끊어 놓고 무자비한 체포 작전까지 벌인 것은 동맹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미 유력 언론들조차 “가까운 동맹에 사전 통보도 없었다”고 지적했겠나.

트럼프 정부가 미국 내 투자를 압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대대적인 비자 단속을 벌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이 취업 비자 아닌 비자로 전문 인력을 미 공장 건설 현장에 파견하는 관행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미국 내에서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미 당국이 취업 비자를 제때 내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만 등도 미국 내 공장을 짓고 있는데 왜 하필 한국 공장에만 칼날을 겨누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 한국 기업들은 미국 투자 결정을 할 때 미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정책 변동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게 됐다. 미국이 말하는 ‘동맹’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미국 정부가 제시하는 투자 혜택은 정권이 바뀌어도 유효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단속 사흘 만에 한미 정부 간 석방 교섭이 타결돼 곧 체포된 인원들이 전세기 편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고 신속 대응에 나서야 한다. “미국에 계속 투자해야 하나”라는 국내 여론을 가감 없이 미측에 전달하고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구해 관철시켜야 한다. 원활한 비자 발급 등 미국 투자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만반의 제도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