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나라자동차에서 한국지엠까지… 부평공장 역사와 의미 [한국지엠 아카이빙 프로젝트·(2)]
<부평구문화재단 공동기획>
일제강점기 자동차 산업 ‘태동’… 현대사 변곡점마다 수없는 부침
신진자동차, 도요타와 제휴·생산
대우가 인수 간판 바꾸고 ‘전성기’
지역사회 지엠대우차 타기 운동도
파란만장 60년, 산업문화유산 가치

한국지엠 부평2공장의 역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와 궤적을 같이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산업화 시기,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주요 사건 속에 부평2공장의 굴곡진 역사가 담겨 있다.
부평에서 자동차산업이 태동한 시기는 일제강점기다. 일제에 의해 설립된 ‘조선국산자동차’가 1938년 현재의 한국지엠 부평공장 인근에 땅을 사들여 자동차 생산공장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재정상의 문제로 계획이 철회되고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하는데 머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평의 자동차산업은 1962년 본격 재개된다. 재일교포 박노정이 현재의 부평2공장 부지에 ‘새나라자동차’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의 현대식 완성차 조립공장을 세워 일본 닛산의 ‘블루버드’를 조립생산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횡령 등 부정행위 의혹이 불거지면서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1965년 신진자동차가 부평공장을 사들여 도요타자동차와 기술제휴를 맺고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 등의 차량을 생산했다. 당시 이렇다 할 완성차 업체가 없었던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신진자동차의 위상은 독보적이었다.
신진자동차는 이후 두 차례 ‘외환’에 휘청이며 1976년 경영권을 포기한다. 1971년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가 ‘한국과 거래하는 회사와 거래하지 않는다’는 ‘저우 4원칙’을 발표하자, 이를 의식한 도요타자동차가 신진자동차와의 제휴를 철회한 것이다. 신진자동차는 차선책으로 제너럴모터스(GM)와 공동 자본출자 형식으로 지엠코리아(GMK)를 설립하고 명맥을 이어갔지만, 경영난을 해소하지 못한 채 1976년 산업은행에 지분을 넘겼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던 지분은 대우그룹이 인수했다. ‘대우자동차’로 간판을 바꾼 부평2공장의 전성기도 이때 시작된다. 1986년 부평1공장이 들어선 것도 이 시기다. 대우차는 2개의 공장에서 소형차 ‘르망’부터 대형 고급세단 ‘로얄 시리즈’까지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는 종합 완성차 기업으로 거듭났다. 대우차의 월급날이면 부평역 일대 상권이 들썩였을 정도로 지역경제에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1999년 모기업 대우그룹 부도로 다시 먹구름이 드리웠다. 대우차 역시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었고, 3년간의 진통 끝에 GM이 새 주인으로 복귀해 ‘지엠대우’로 사명을 바꿔 달았다.
그러나 부평2공장은 ‘지엠대우’ 소속이 아닌 ‘대우인천차’라는 별도의 법인 산하로 들어가게 됐다. GM이 부평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곧바로 인수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노사 쟁의로 인한 손실이 전 세계 GM공장 대비 평균 이하를 기록하고 ▲6개월 연속 완전 2교대제로 가동하면서 노동생산성을 4% 이상 끌어올릴 경우 6년 내 통합한다는 조건이었다. 대우인천차는 수출 100만대 성과를 내는 등 GM이 제시한 조건을 빠르게 이행하며 2006년 지엠대우와 통합한다.
세 번째 외환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그해 12월 부평공장 전체가 조업 중단을 해야 할 만큼 상황이 악화했다. 경인일보 2008년 12월2일자 기사를 보면 ‘조업 중단 다음은 인력 감축이 아니겠다’하는 우려 섞인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지엠대우차 타기 운동’ 등 지역사회의 응원과 함께 금융위기 파고를 넘었지만, 대우라는 이름은 2011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공장 출입구에는 ‘한국지엠’이라는 이름이 새겨졌고 부평2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에는 대우 엠블럼이 아닌 ‘+자’ 형태의 쉐보레 엠블럼이 붙었다.
이후 부평공장에서 생산되는 차종의 수가 서서히 줄면서 부평2공장은 2022년 끝내 가동이 중단되기에 이른다. 차량 생산은 모두 부평1공장으로 통합됐고, 부평2공장은 활용 계획이 정해지지 않은 채 현재까지 방치돼 있다.
파란만장한 60여년 세월을 간직한 부평2공장의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단순히 자동차가 생산됐던 공간을 넘어 한국 산업사와 노동사에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소로서 산업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한달수 기자 da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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