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파견 격주로 바꿔야 할 판”… 대미투자 ‘꼬여버린 스텝’

장우진 2025. 9. 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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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출장 전면취소’ 검토… 현지 규정 준수여부 확인
LG엔솔도 전면중단 수순… 즉시 귀국·숙소 대기 지침도
수천명 주재원 비자발급 최소 1~2년… 공장 건설에 차질


“당분간 미국 현지에 당장 불요불급한 인력이라도 2주마다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취업비자를 받기 힘든 건 둘째치고,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어떤 직원도 미국 출장을 가고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7일 미국 정부의 한국인 불법체류자 구금 사태를 보며 이 같이 말했다.

미 조지아주 LG에너지솔루션-현대자동차그룹 합작 배터리공장(HL-GA) 건설 현장에 대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한국인 300여명이 구금당하자, 우리 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우리 기업들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수입 자동차 관세 완화를 비롯해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의 본격 가동 등 돌파구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한 반도체 장비 규제를 강화했고, 이번에는 예고도 없이 미국 현지에 투자 중인 한국 기업을 급습하면서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특히 미국에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거나 신규 투자를 예고한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업종의 주요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현대차는 미 출장 전면 출장 취소까지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긴급 모니터링을 통해 공급-하청업체에 대해 법률·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현대차 소속 임직원들은 이번 단속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미 법인은 지난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현대차는 사업을 운영하는 모든 시장의 모든 법률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용 검증 요건과 이민법이 포함된다”며 “법을 준수하지 않는 이에게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본사·협력사 직원 300여명이 구금된 LG에너지솔루션은 전날 임직원들에 대해 고객 미팅 등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시켰고, 현재 출장자는 업무 현황 등 고려해 즉시 귀국 또는 숙소 대기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5월 출장시스템에 ‘미국 ESTA는 짧은 체류를 위한 비자로, 1회에 2주 이내 출장’이라고 안내하는 등 선제대응을 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업무상 성격에 따라 출장 자제 또는 중단 등 다방면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우선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ESTA 또는 B1 비자로 미국에 체류 중인 직원을 급히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대거 확보하거나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E4)를 받아내지 않는 한 이들이 다시 미국으로 나갈 방법은 정식 주재원 비자(L1 또는 E2)를 받는 것뿐이다.

문제는 수천명에 이르는 인력이 주재원 비자를 받으려면 최소 1~2년이 걸린다는 데 있다. 조 단위 투자금을 들인 미국 공장 건설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장기 업무가 필요해도 현지 법인이 없고, 규모도 작은 한국 중소업체에 비자를 내주는 사례는 거의 없다. 학사 이상의 외국인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H1B 비자는 1년에 딱 한 번 추첨을 통해 발급하는데 경쟁률이 9 대 1이 넘는다.

국내 기업들은 지난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동차·조선·방산·원자력·에너지·핵심 광물 등 제조업 전반에 걸쳐 1500억달러(약 21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계획을 내놓았지만, 2주도 채 안돼 한국인 이민 단속·구금의 역풍을 맞은 셈이다.

이번 투자 계획에 동참한 기업은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HD현대·한화·삼성중공업(이하 조선), 두산에너빌리티·삼성물산(이하 원전), 고려아연(핵심 광물) 등이 포함된다.

여기에 미 정부가 한국 측에 어떠한 사전정보 없이 단속에 나선 점은 우리 정부의 대미 외교 능력의 취약점을 보여주는 대목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비자문제 해결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이번 대대적인 이민 단속에 나선 것을 놓고 미국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에 대한 미국 국민 고용을 최대한 압박하려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미 현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조지아주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법체류자 단속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전규연 하나증군 연구원은 “주요 공약 중 가장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불법 이민자 추방”이라고 진단했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미 고용시장에 참여하는 불법 이민자가 줄면서 미 고용지표에는 합법 체류자의 노동수요가 높아지는 현상이 반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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