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직 비자’ 줄였는데…공사 해야하는 한국 기업 ‘고육책’ 막혀

미국 정부가 조지아주 현대차그룹·엘지(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을 급습해 350여명의 노동자를 체포·구금한 이유는 이들이 갖고 있던 비자가 보장하지 않는 취업 활동을 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공장 건설을 위한 비자 발급이 트럼프 정부 이후 더욱 어려워졌고, 배터리 공장 건설과 설비 활용 경험이 있는 국내 노동자들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고육책’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 미 조지아주 포크스턴 시설에 구금된 한국인은 공장 건설을 담당하는 현대엔지니어링 협력사 노동자 60여명, 엘지에너지솔루션 소속 46명과 엘지에너지솔루션 협력사 250여명 등 350명에 이른다. 이들은 사업 목적으로 단기간 방문할 때 받는 비이민 단기 상용비자(B-1)와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를 받고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연말 준공을 목표로 막바지 단계여서 건설사(현대엔지니어링)는 소수의 인원이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배터리 생산을 위한 모듈장비 설치와 전력 관련 설비 업무가 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엘지에너지솔루션 쪽 인원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미 당국은 전문직 취업비자(H-1B)를 발급받아야 했다고 보고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H-1B는 기계·전기·소프트웨어 등을 다루는 엔지니어들이 일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자이지만, 업계에선 ‘하늘의 별 따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미국은 8만5천개의 H-1B 쿼터를 정했는데 47만명이 지원했다. 미국은 초과 접수된 신청자들을 무작위로 추첨해 비자를 발급한다. 최근 미국 이민국(USCUS)은 2026 회계연도에 발급될 전문직 취업 비자 쿼터가 이미 소진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비전문직 단기 취업 비자(H-2B)를 발급받아야 한다. H-2B는 미국 현지 고용주가 비농업 분야에서 단기간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려 할 때 신청하는 비자인데 마찬가지로 연간 6만5천개의 쿼터가 정해져 있고, 초과 접수되면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발급한다. 게다가 고용주가 신청할 때 미국 내에서 노동자를 고용하기가 쉽지 않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모두 지키면서 필요한 인력을 파견하고 준공일을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정부 관계자가 “전문직 비자 발급이 어렵다 보니, 기업들이 관행처럼 우회로를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 까닭이다. 앞서 미국 현지 건설 현장에서 체류 자격 문제로 체포된 전례가 있었던 점도 이같은 ‘불가피한 관행’을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2020년 9월에는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에스케이배터리아메리카(SKBA)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13명이 전자여행허가를 받고 일하다 체포된 뒤 자진 출국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번 단속으로 우리 기업의 이러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B-1이나 전자여행허가제로 입국한 한국인들이 미국 현지 공장 등에서 일하는 것을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산업계에선 미 이민당국이 고집하는 입국 절차를 통해서는 현지 투자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배터리 공장을 짓는 일인데 모듈과 장비 설치·운영을 위해서는 경험이 있는 한국인 노동자가 꼭 필요하다”며 “미국에서 공장을 보다 빠르게 지어야 현지 노동자도 채용할 수 있는데,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도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장벽과 더불어 비자 발급이 더욱 까다로워진 상황”이라며 “현대차그룹도 올해 조지아주 공장 증설 등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애로를 겪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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