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수출보국, 수입애국

2025. 9. 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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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는 수출로 성장해왔다.

'수출보국 수입애국'이라는 다소 낯선 슬로건을 내걸까 망설였던 것이다.

수출은 국부 창출의 상징으로 존중받아왔지만, 수입은 그에 비해 늘 주변부에 머물렀다.

'수출보국 수입애국'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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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는 수출로 성장해왔다. 전후 폐허 위에서 오직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고 '수출보국(輸出報國)'이라는 말이 국민적 구호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찬란한 수출 성과의 이면에는 언제나 묵묵한 수입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 수출품인 반도체는 한국 기술의 상징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리튬·코발트·희토류 등 핵심 원료는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K푸드의 대표 주자 라면도 다르지 않다. 국산 밀은 거의 없기에 주재료는 호주·미국·캐나다에서 들여오고, 튀기는 데 쓰이는 팜유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다. 이렇게 들여온 자원과 재료 위에 우리의 기술과 창의력이 더해져 세계인이 즐기는 상품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결국 수입 없는 수출은 존재할 수 없다.

지난 3월 한국수입협회 회장 취임식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다. '수출보국 수입애국'이라는 다소 낯선 슬로건을 내걸까 망설였던 것이다. 수출은 국부 창출의 상징으로 존중받아왔지만, 수입은 그에 비해 늘 주변부에 머물렀다. '수입을 애국과 연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했다. 수입이 없다면 수출도 불가능하다는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사실을 일깨우고 싶었다. 결국 행사장 정면에 여덟 글자를 걸었고, 회원사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가슴이 뻥 뚫린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수십 년 동안 마치 덜 애국적인 사업인 듯 치부돼온 수입업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듯한 순간이었다.

수입은 단순히 외국 물건을 들여오는 행위가 아니다. 국민 생활물가를 안정시키고 기업 경쟁력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원자재나 식량을 원활히 들여오지 못한다면 라면 값, 기름 값, 휴대전화 값은 순식간에 치솟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는 불편을 겪고, 기업은 생산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떠날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서 원자재를 확보하고 복잡한 공급망을 관리하는 수입업자는 사실상 수출 경쟁력의 숨은 주역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공급망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는 자원의 무기화를 현실로 만들었다. 어느 나라나 안정적인 수입망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중국은 값싼 인건비와 풍부한 자원으로 세계의 공장이 됐지만, 국제사회에서 신뢰도는 높지 않다.

반면 한국은 기술력과 디자인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광풍이 잘 보여주듯이 무엇이든 K자만 붙으면 세계에서 통한다. 여기에 안정적인 원자재 수입망까지 더해진다면 한국은 '믿을 수 있는 제조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제는 수출과 수입이 두 날개처럼 나란히 서야 한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날아오를 수 없다. 안정적이고 지혜로운 수입은 곧 경쟁력 있는 수출을 가능케 한다. '수출보국 수입애국'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한국 경제와 국민의 삶을 지켜낼 균형 잡힌 시각이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윤영미 한국수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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