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호의 넥스트 프레임] 최고가만 보이는 시장, 사라진 균형

문준호 (주)선이한국 대표 2025. 9. 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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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준호 (주)선이한국 대표

실거래가 제도는 한때 부동산 시장을 맑히는 혁신이었다. 다운계약을 끊고 누가 얼마에 집을 샀는지 드러내며 거래를 투명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빛은 그림자가 되었다. 국토부가 공개하는 거래 데이터는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최고가'만 부각된다. 단 한 건의 고가 거래가 시장의 얼굴이 되고 평균은 사라진다. 불안한 실수요자들은 뒤처질까 서둘러 매수에 뛰어든다. 패닉바잉은 반복된다.

문제는 균형의 실종이다. 국토부는 시장을 달구는 정보는 신속히 공개하면서도 안정을 위한 데이터는 감춘다. 자금조달계획서 같은 건전성 지표가 대표적이다. 이 비대칭 속에서 국토부는 공급자 편에 섰다. 전세 제도를 키워 집값을 떠받치다 전세사기를 불렀고, 피해자 구제는 늦었다.

최근엔 금융 규제 틈을 파고든 '고레버리지 실수요자'가 늘고 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3040세대 부부가 대표적이다. 아내가 10억 집을 6억 대출로 사고, 남편은 전세 4억을 끼며 주택금융공사 보증으로 3.2억을 더 받는다. 총 LTV는 92%에 달한다. 과거엔 전세대출로 집값 100%까지 가능했는데, 규제가 강화된 뒤에도 90%까지 허용된다. 사실상 금융정책을 무력화하는 구멍이 전세대출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부작용도 나타난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가 늘면서 아이가 태어나도 통계상 '혼외출생'으로 잡힌다. 이는 단순한 가족 변화가 아니라, 부동산·금융정책이 빚어낸 왜곡된 결과다.

한국은 이미 아파트 공화국이다. 생산적 자산보다 아파트 가격에 매달리며 사회 전체가 얽혀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2035년 전후 한국이 제로성장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위험도 크다. 외부 충격이 뚜렷하지 않아도 원·달러 환율은 1370~1400원대에서 흔들린다. 투기적 심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상승을 짜내려는 집단 무의식을 드러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확대'가 아니다. 어떤 데이터를 언제, 어떻게 공개해야 시장이 안정되는지 설계가 필요하다. 최고가가 아니라 평균과 거래 흐름을 보여주고, 투기보다 실수요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은 집값을 올리는 불씨가 아니라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토대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다시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