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털릴라”…LG엔솔 美 직원 구금에 K-배터리 ‘긴급 전수조사’

박한나 2025. 9. 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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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초 한국의 한 배터리 장비업체 직원들은 고객사인 미국 조지아공장에 긴급히 장비 납품과 설치를 위해 미국길에 올랐지만 전자여행허가(ESTA)를 이유로 입국을 거절당했다.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숙소 위치를 이유로 장기 현장 근무로 판단한 것이다.

#. 또 다른 배터리 기업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비자 발급 자체가 까다로워지면서 서부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애틀란타로 이동하는 우회경로를 택하고 있다. 불필요한 의심을 피하기 위한 조치지만 체류비용이 최소 2배 이상 늘어나는 부담을 감수하고 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 합작 ‘HL-GA공장’에서 ESTA뿐 아니라 B-1 비자 인력까지 쇠사슬에 묶여 구금당하자 미국 출장이 ‘셧다운’ 상태다. 업계 전반으로 출장 취소와 파견 대기가 잇따르고 있는데 수십조원을 투입한 미국 현지 투자가 비자 제도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힌 것이다.

7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조지아주 HL-GA 배터리 합작공장의 불법고용 단속 여파로 현재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B-1(단기상용) 비자 소지자의 인원 파악을 진행 중이다. B-1 비자는 회의 참석 등 단기 비즈니스 수행이 가능한 비자로 입국 시 체류 기간은 최대 6월이다.

결박당한 채 연행되는 한국인 추정 현장 근로자.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LG엔솔, ESTA ‘즉시 귀국’ 조치 …삼성SDI·SK온도 비자종류 전원 조사


또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 체류 중인 B1과 B2 비자 소지 임직원에게 본사의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사업장 출근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ESTA 소지자는 즉시 귀국하라고 했으며, 한국에 대기 중이던 신규 미국 출장 계획들도 모두 취소했다.

삼성SDI와 SK온 등도 자사 미국 출장과 협력업체 인력에 대한 전면 점검에 착수했다. 현지 근무 인원의 비자 종료와 유효기간, 협력사 국적과 계약 관계, 현지 법규 준수 여부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 한화오션 등 미국에 투자 중이거나 투자를 계획 중인 국내 기업들도 출장 대기 상태로,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조지아 합작공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한국인만 300여명이 구금된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민 단속 과정에서 멕시코나 중남미 국적자의 대규모 적발은 종종 있었지만, 특정 국가의 숙련 기술 인력이 수십 명 단위로 쇠사슬을 찬 채 집단 구금된 사례는 실제 유례가 없다. 유방국 국민들이 형사 범죄자에 준하는 방식으로 언행된 것도 이례적이다.

국내 기업들이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업종에 관계없이 공장 설비 셋업이나 특수 장비 설치 등 단기 파견 인력이 필요한 경우 B-1 비자나 ESTA로 출장을 떠나는 것이 관례였다.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비자 병목’에 막힌 K-배터리…H비자도 ‘하늘의 별 따기’


국내 기업들이 공장 준공 일정과 납기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정식 비자 발급에만 매달릴 경우 수개월간 공백이 발생해 사실상 허송세월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투자자 비자인 E비자를 발급받고 싶어도 주한 미국대사관 인터뷰를 해야 해 평균 약 3개월이 소요된다.

미국 주재원 비자인 L비자 역시 최대 5개월까지 걸린다. O비자는 박사 이상의 학위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상 등의 최소 3개 조건을 필요로로 해 협력업체 직원들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B1이나 ESTA 같은 임시방편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다. 고도의 기술 인력이 필요한 공장 설비 셋업이나 특수 장비 설치 업무를 소화할 수 있는 합당한 비자가 미국 비자 체계에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또 미국 현지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특정 전문직 취업 노동비자인 H-1B는 ‘하늘의 별 따기’다. 대규모 전문인력인 협력업체 직원들은 미국 이민 당국에서 전문직이 아니라 기능직으로 분류돼 비자 발급이 거부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여기에 노동비자 쿼터도 매년 8만5000여개로 제한돼 있다. 이미 미국 이민국(USCIS)은 지난달 이미 2026 회계연도에 발급될 H-1B 쿼터가 모두 소진됐다고 발표했다. 국내 배터리 3사만 해도 북미에서 동시에 수십GWh 규모의 신규 공장 건설을 진행 중인 만큼 필요한 기술 인력을 정식 비자를 통해 제때 충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김영준 성균관대는 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는 “공장 설비 셋업이나 특수장비 설치는 고도의 기술 인력이 필요한데 미국에 이 같은 인력은 사실상 전무하다”며 “투자 유치는 반기더니 정작 미국 비자 제도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구조적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7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LG에너지솔루션 김기수 인사최고책임자가 현장 대응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K-배터리 산업 전반 동일 위험…김기수 “조기 석방 최우선”


향후 SK온과 삼성SDI도 미국 공장 증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단속은 단일 기업을 넘어 한국 배터리 산업 전반에 파급력을 미칠 사건으로 평가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에 단속이 이뤄진 HL-GA 합작 공장 외에도 애리조나 단독공장과 혼다 합작공장에 대규모 셋업 인력이 필요하다.

SK온 역시 블루오벌SK 테네시 공장과 현대차와의 조지아 합작 공장 건설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 GM과 각각 합작해 2026년과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신규 공장을 짓고 있어 필수 인력을 제때 투입하지 못할 경우 납기와 준공 일정 지연은 불가피하다.

이번 사태로 IRA와 OBBBA 대응의 핵심 거점인 조지아 공장의 일정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하반기 착공한 만큼 HL-GA공장은 내년 초 가동으로 예상됐지만 감금된 직원들의 석방을 최우선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김기수 LG에너지솔루션 인사최고책임자(CHO)는 이날 오전 조지아주로 출국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지금은 우리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 모두의 신속한 조기 석방이 최우선”이라며 “정부에서도 총력을 다해서 대응해 주시고 있는 만큼 모두의 안전하고 신속한 복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한나 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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