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달리기, 결론 아닌 ‘실패의 과정’ 통해 확신 쌓는다

10km 대회에 처음 나갈 때, 설레는 한편 얼마나 숨차고 힘들지 두려웠다. 또, 복장은 어떻게 하나 고민이 되어 달리기 좀 해봤다는 의국 선배에게 물었는데, 내게 맞는 답은 듣지 못했다. 늦가을 춘천, 아침 기온이 쌀쌀하기에 긴바지를 입었는데 달리는 내내 더웠다. 처음 풀코스 마라톤을 참가할 때도, 매일 달리고는 있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결국 30km 이상 장거리 달리기 연습 없이 42.195km를 난생처음 달리다 보니 전반 하프(21.1km) 이후 내내 죽을 것 같았다. 새로운 영역에 입문하면 모르는 게 많고, 잘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확인하고 싶다.
신발부터 착지법까지…달리기 정보 홍수
상전벽해,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십 년 전과 달리 ‘달리기 붐’이다. 각종 방송 매체와 소셜 미디어에 달리기 관련 내용이 셀 수 없이 많다. 인공지능(AI) 챗봇까지 가세해서 말 한마디, 손가락 터치에 정보가 쏟아진다. ‘신발은 이런 게 좋다.’, ‘트랙에서 뛰어야 부상이 적다.’, ‘인터벌은 휴식을 짧게 해야 효과 있다.’ ‘호흡은 길게 내뱉고 한 번에 많이 들이쉬는 게 효율적이다.’ ‘뒤꿈치 착지하면 부상 온다.’
그런데 초심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할수록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이게 나한테도 맞는 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더 나은 방법이 있는 건 아닐까?’
무엇을 선택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 결정을 뒷받침하는 명분과 근거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수긍이 되어야 한다. 그런 내면의 믿음은 시작에서 결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경험하면서 맥락을 이해할 때 만들어진다. 자신 안에 근거 없이 타인의 가르침과 조언을 따랐다가 “네가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책임져.” “당신 말대로 한 거잖아, 결과가 이게 뭐야?” 원망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AI 챗봇 서비스가 공개된 이래로 많은 사람이 의존하고 있다. 연구, 업무뿐 아니라, 일상 여가 중 시시콜콜하게 정보를 얻고 감정적 교류를 취한다. 그런데,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 제시하는 가르침은 참고 사항일 뿐이다. AI 챗봇의 가이드로 해결책을 손쉽게 얻는 것 같지만, 오류와 부작용이 발생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스스로 검증을 생략한 채 의사 결정을 AI 챗봇에 맡기다 보면 ‘뭐가 맞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혼자서는 어려워진다. 이유와 목적을 명확히 하고 활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용이 편리하고 마음이 불안해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면, 맹목적으로 의존하다가 더 큰 불안이 초래된다.
AI·타인에 의존해 선택하면 더 큰 불안
새로운 차원을 향해 나아갈 때, 과정을 스스로 이해하고 파악해야 믿음을 가지고 지속할 수 있다. 물론 시행착오가 있고 기대하는 목표에 바로 이르지 못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안에 확신이 생긴다. 그러한 내면의 믿음은 자신이 경험한 유일무이한 과정과 결과를 뒷받침하는 고유 근거가 된다. 외부의 조언과 가이드를 활용할 때 왜 묻고 어떤 목적으로 답을 들으려 하는지, 나의 선택과 의사 결정을 반영해보자.
때로는 실패를 돈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 스페이스X의 화성 탐사 우주선 개발과 시험 비행 과정이 뉴스로 보도되는데, 번번이 실패인 것처럼 보인다. 발사대 문제가 생기고, 우주선이 공중에서 분해되고, 궤도에 안착하지 못하고, 연료가 누출되고 제어에 오류가 생기고…목표 달성에 끝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우주선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오류를 발견하고, 비행 궤도 진입에 어려움이 생긴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 중인 것이다. 화성 탐사 우주선 비행이라는 전체 목표 아래 부분적인 결함을 찾아내고 있을 뿐 궁극적인 실패가 아니다. 실패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에 성공적인 비행에 이르게 될 터이다.
다음 성공을 위한 시행착오 마주하기
어쩌다 보니 나는 부딪치고 깨지면서 달리기를 체득하였다. 혼자 달리고 또 마라톤 대회를 나가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다. 매일 강변을 달리다, 10km 대회를 나가고, 그다음 영역으로 하프 마라톤, 그다음 단계로 마라톤을 경험하게 되었다. 시행착오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매일 달릴 때마다 마음과 몸에 대해 깨닫고 배운다. 물론 나의 경우 그렇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나는 어떻게 할까?’ 스스로 의문하고 정하면 된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번 실패는 다음에 성공하기 위한 선행 과정이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 무엇이 옳은지, 어떤 방법이 나에게 맞는지 판단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많은 지침과 정보 중 무엇이 옳을까? 스스로 경험하고 내 안에서 체득된 정보가 맞지 않을까? ‘나한테는 뭐가 맞을까?’ 자신에게 질문하자. 세상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맞는 것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동안 답답하고 실망스러운 과정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예측하고 담담하게 하나씩 마주해보면 어떨까?
#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은?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가 연재하는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전문은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 교수가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의 회복’을 원하는 독자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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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연재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SERIES/3322

김세희 |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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