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법이 정한 시간표를 따르지 않는다 [경계의 사람들]

샌프란시스코·김인정 2025. 9. 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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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주 이상 후기 임신중지 시술을 하는 의사는 예전에도, 지금도 극소수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디딤돌 삼아 정치적 폭력과 낙인을 감내한다.

※ 기사에 등장하는 환자 이름과 정보는 각색하였습니다.

화요일의 환자들은 만나자마자 울었다. 매주 화요일은 그 주의 시술 환자를 처음 만나는 날이다. “여기까지 오셔야만 해서 정말 힘드셨지요.” 의사 셸리 셀라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긴 여행 끝에 이 병원까지 도착한 환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아기가 많이 아프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거주하시는 곳에서 시술을 받을 수 없어 여기까지 오시게 된 상황도 그렇고요.” 셀라는 차분하고 진중한 어조로 덧붙였다. “이곳에 절대 오고 싶지 않으셨을 걸 압니다.” 이곳은 미국 뉴멕시코주의 임신중지 클리닉 ‘사우스웨스턴 위민스 옵션(Southwestern Women’s Options)’이다. 셀라는 그 병원에서 임신 후기인 24주부터 40주의 여성들에게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출근길은 길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집부터 병원이 있는 뉴멕시코 앨버커키까지 1700㎞를 일주일마다 두 시간씩 비행했다. 미국 전역에서 후기 임신중지 시술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곳은 사실상 3개 주에 불과하다. 셀라가 일하는 클리닉은 그중 하나였다. 병원 주차장 옆 도로에서 시위대를 매일 마주쳤다. 시위대는 피투성이 태아 사진이 붙은 시위용 트럭을 몰고 왔다. “낙태는 살인이다.” “낙태는 여성을 상처 입히고 아기를 죽인다.” “셸리 셀라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라!” 팻말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참을 수 없을 때면 속으로 저주하기도 했지만, 셀라는 시위대를 무시하고 빠르게 운전해서 지나치는 데 익숙했다.

후기 임신중지 시술은 정치적 논란 탓에 교육과정에서 제외되어 도제식으로 전수되곤 했다. 산부인과 의사로 후기 임신중지를 조력해온 셸리 셀라 역시 그렇게 후학을 가르쳤다. ⓒ김인정 제공

화요일마다 여섯 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했다. 셀라의 기억에 선명한 날도 그랬다. 미주리, 아칸소, 텍사스, 플로리다, 오하이오에서 온 환자들이었다. 멀게는 3000㎞를 비행해서 이 병원에 도착했다. 세 명은 태아 이상으로 임신중지를 결정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한 여성들이었다. 다른 세 명은 산모 측 사유로 결정했다. 아이를 원치 않았거나, 환영받지 못한 임신을 했거나, 더 이상 임신을 유지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사람들이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 환자들은 전화로 설명을 듣고 온다. “이 시술은 사실상 진통과 분만입니다. 첫째 날엔 태아에 약물을 주입해 심장을 멈추게 합니다. 자궁 경부를 확장시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자궁 수축을 유도하는 약물을 투여해요. 분만은 아주 빨리 끝날 수도 있고,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진통과 분만을 하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해요. 이런 방식을 쓰는 건 환자분의 생식기관을 온전하게 보존해 나중에 원하실 때 아기를 다시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병원 앞에 낙태 반대 시위대가 있을 거라는 걸 알아두세요. 시위대는 병원에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 무시하고 오시면 됩니다.”

47세인 메리는 소리를 질러대는 시위대에 위축되고 상처받은 채 병원에 들어왔다. 환자들의 상태가 어떨지 잘 알고 있는 셀라는 다른 환자를 만날 때 늘 그렇듯 메리를 만날 때도 침착하게 대했다. 메리의 아기는 척수관 결손과 뇌 구조 이상을 동시에 보였다. 부부는 이미 40대 후반이고, 돌봄이 필요한 부모도 있었다. 이 아이를 기르고 가족을 돌보는 데 필요한 비용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까? 그들이 죽고 나면 이 아이를 누가 돌볼까? 무엇보다 부부는 아이의 삶이 길든 짧든, 아이가 고통받지 않길 원했다. 모든 걸 질문하고 고려한 끝에 내린 답이지만 진료실에서 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셀라는 메리 부부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이 순간부터 메리만이 제 환자입니다. 우리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메리와 아기라는 두 환자가 있었죠. 하지만, 메리가 임신을 끝내는 결정을 했으니 메리만이 제 환자입니다. 신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메리의 건강과 안전이 제 우선순위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이 임신은 아기 없이 끝납니다.” 잠시 뒤, 상담사가 메리를 시술실로 데려가 간호사와 함께 통증 완화 정맥주사를 놓았다. 곧 셀라가 들어갈 차례다.

시술실 조도를 낮추고, 고요한 명상음악을 틀었다. 셀라는 자궁 경부를 마취한 뒤, 초음파로 위치를 잡으며 질을 통해 디곡신(digoxin)이라는 약물을 주입했다.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안에 태아의 심장박동을 멈추게 하는 주사다. 메리의 자궁 경부를 확장시켜줄 해초 성분의 라미나리아도 삽입했다. 셀라는 메리의 눈을 바라보며 “내일 다시 돌아와 재검진할 때까진 정확한 일정을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이 잘 진행됐다”라고 안심시켰다. 오후엔 메리가 다른 두 명의 환자와 만나 그룹 상담을 하게 될 거라고 안내했다. 다른 환자인 제이미의 아기는 치명적 심장 결함인 저형성 좌심실 증후군이 있었고, 암리타의 아기는 생후 5개월을 채 넘기기 힘든, 10만명 중 한 명만이 앓는 뇌 이상이 진단됐다.

“너는 내가 다음 세대에 남기는 선물”

후기 임신중지 시술은 의학적으로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지만 정치적 논란 탓에 교육과정에서 제외되어 도제식으로 전수됐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기 살인자’라는 낙인을 견디며,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이 일을 하겠다는 의사는 극소수다. 임신중지 시술을 앞두고 진행되는 그룹 상담은 셀라에게 후기 임신중지 시술을 전수한 의사 조지 틸러가 가르친 것 중 하나였다. 그룹 상담이 시작될 때만 해도 환자들은 서로 눈길을 마주치지 못한다. 셀라는 분만 시 호흡 기술과 시술 당일 밤의 주의사항 등을 설명했다. 무겁던 분위기가 조금 풀리자 메리와 제이미, 암리타는 갈색 리클라이너에 기댄 상태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면 다른 사람은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갓 만났지만 서로 손을 잡아주었고, 눈물 닦을 휴지를 건넸다. 한 번의 상담이 끝날 때마다, 셀라는 서로가 공유한 경험과 지혜가 서로를 돕는 걸 목격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지탱하는 모습을 볼 때면 틸러가 그리웠다. 살해 위협에 시달린 끝에 틸러는 극단적 반대파에게 살해당했다. 2009년 5월31일 일요일 오전 9시,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 총에 맞았다. 틸러는 살해 협박을 숱하게 받으면서도 전면에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후배 양성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셀라에게 “너는 내가 다음 세대에 남기는 선물”이라고 말하곤 했다.

화요일 오후, 상담실에는 또 다른 그룹 상담이 열렸다. 그 주의 다른 환자 로라와 이레네, 누르였다. 계절은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지만 로라는 긴소매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손톱은 거의 끝만 남아 있을 정도로 물어뜯겨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 로라가 소매를 걷어올렸다. 오래된 멍부터 새로운 멍까지 색이 뒤섞여 얼룩덜룩한 팔이었다. 선글라스를 벗자, 왼쪽 눈 아래 상처가 선연했다. 남편은 로라를 학대하고 집에 가뒀다. 이미 네 자녀가 있는 로라는 다섯 번째 아기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남편의 눈을 피해 의사에게 가는 것도, 몰래 현금을 모으는 것도 지난한 일이었다. 집에서 몰래 빠져나왔을 땐 임신중지 가능 일수를 4일 초과한 뒤였다. 이레네는 싱글맘인 데다 위암이 재발한 상태로 뒤늦게 임신을 알아차렸다. 누르는 부모에게 도저히 털어놓을 수 없어 임신 후기까지 감추고 감추다 들킨 10대 소녀다. 두 사람은 로라의 상황을 위로했다.

셀라가 올해 6월 펴낸 에는 임신중지를 조력한 20여 년간의 경험이 담겨 있다. ⓒ김인정

누르와 진료실에 단둘이 남았을 때 셀라는 잠시 누르의 엄마가 된 듯 느꼈다. 열일곱 살인 누르는 임신 기간 내내 거의 먹지도, 씻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헐렁한 후드티 안에 배를 숨긴 채 안으로만 침잠해 들어갔다. 이 임신을 끝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털어놓는 누르를 보며, 셀라는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렸다. 이민자였던 부모는 아메리칸드림을 좇느라 바빠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도 꾸짖기만 했다. 셀라는 열두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큰오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부모에게 말하는 대신, 셀라는 입안 가득 값싼 초콜릿 바를 욱여넣었다. 강간당하던 침대 옆 책상에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감추어두었다. 두렵고 외로울 때마다 꺼내 폭식했다. 누구도 어린 셀라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열네 살이 되던 해, 몇 달간 생리가 멈췄다. 오빠의 아이를 임신한 거라면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어찌어찌 알아내, 몰래 혼자 갔던 클리닉에서 임신 테스트를 했고, 음성을 받고서야 피 말리는 시간을 끝낼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원치 않는 임신이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여성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안전망이 되고자 하는 단호한 결심의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남성 중심의 의학 분야에서 버텨내 산부인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동안 셀라가 논쟁적인 후기 임신중지 시술에 매료된 이유이기도 했다.

집단 상담이 끝난 화요일 이후부터는 대기만 남았다. 환자들이 준비되면 분만을 하러 달려갔다. 목요일 밤이 끝나갈 때쯤 여섯 환자의 분만이 모두 끝났다. 셀라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분만을 숱하게 봤다. 그런 셀라도 처음 후기 임신중지 시술을 훈련받을 땐 낯설었다. 아기는 살아 있지 않은 채로 태어난다. 분만 끝에 아기 울음소리는 없다. 때론 부모가 대신 길게 운다. 셀라는 모든 시술이 끝나고 나면 매번, 환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임신중지를 후회하느냐고. 금요일 오전 누르의 최종 검진이 끝날 때도 그 질문을 했다. 10대인 누르의 얼굴은 되찾은 삶의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난 19년간 셀라를 거쳐간 모든 환자들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그랬듯, 누르는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환자들의 ‘이후의 삶’에 대해선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연락을 이어가는 환자도 있지만 드물다. 로라가 가정폭력에서 벗어났을지, 이레네의 암이 완치되었을지, 암리타가 그 이후에 다시 자녀를 가졌을지 셀라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환자들의 미래에 대해 자주 궁금해했던 셀라에게 ‘이후의 삶’을 보여준 환자 중 한 사람은 에리카다. 에리카는 셀라의 환자가 아니었지만, 셀라처럼 후기 임신중지 시술에 투신한 의사 네 명 중 한 명이었던 워런 헌에게 2016년 임신중지 시술을 받았다.

아이 안고 발언하는 ‘임신중지’ 활동가

뉴욕에 사는 에리카는 유산 직후 다시 가진 아기에게 이상 징후가 있다는 걸 16주 차쯤 알게 됐다. 혈액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임신 중 태아의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주요 지표인 단백질 수치가 평균보다 4배 높게 검출됐다. 고위험 산모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즉시 연결됐다. 해당 의사의 의견은 달랐다. 우려스러운 수치라 동의하면서도, 당장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2주에 한 번씩 꾸준히, 초음파 검사로 태아를 지켜보는 걸로 일단 충분하다고 결론 냈다. 그러나 병원에 갈 때마다 아기의 양발이 굽는다든지, 아기가 양 주먹을 펴지 않는다든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징후가 드러났다.

에리카는 ‘아기에게 너무 정을 붙이지 말자’고 매번 마음을 다잡았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게 아이의 특별함의 일부, 아이와 만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믿고 싶었다. 절망과 희망을 혼란하게 오갔다. 희망에 근접한 날엔 아이가 역경과 맞서 싸우는 투사의 혈통을 타고났다고 상상해보곤 했다. 용맹한 고대 투사의 이름을 따서 ‘스파르타쿠스’라는 태명을 붙였다. 의사는 아기가 28주까지 버티면 문제 없이 태어날 확률이 75%, 32주까지 버티면 95%라고 했다. 에리카는 가능성에 매달렸다. 달력의 출산 예정일 칸에 부러 힘차게 적어두었다. ‘스파르타쿠스!’라고. 집안 가족들이 선물하거나 친구들이 물려준 아기 물건이 늘어가고 있었다. 미뤄왔던 영아 심폐소생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땐,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다.

31주 차에 최종 진단을 받았다. “아기가 생명과 양립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아기는 자라지도, 움직이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매우 짧게 살다 고통스럽게 질식해서 죽는 게 유일한 결말이라고 했다. 시술이 시급했지만 에리카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는 임신중지가 불법이었다. 고위험군 산모를 위한 전문 병원이 있지만, 후기 임신중지는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 당시 뉴욕이 허가하는 임신중지 가능 주수는 24주였다. “하지만 우리 몸은 법이 정한 시간표를 따르지 않잖아.” 에리카는 이 말을 그 뒤로 몇 번이고 되뇌게 된다. 법은 태아의 인권을 보장한다고 했지만, 동시에 에리카의 인권을 제한했다. 뉴욕의 병원에서는 일단 24주 이후 임신중지가 합법인 콜로라도주로 이동해 아기의 심장을 멈출 약물을 주사로 주입한 뒤, 뉴욕으로 돌아와 유도 분만하라고 했다. 총 36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그렇게 에리카는 헌 박사를 만났다.

2018년 9월 미국 대법관 브렛 캐버노 청문회 기간 중 그의 임명에 반대하는 뉴욕 집회에 참석한 에리카(왼쪽) 부부. 남편 개린 마샬의 가슴에 달린 배지 ‘RHAVOTE.COM’은 뉴욕 주의 임신중지 형사처벌 폐지와 ‘재생산 건강법(RHA)’ 제정을 지지한 시민 캠페인 사이트다. ⓒErika Christensen 제공

에리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생존 가능 주수’는 법에서 못 박은 것보다 훨씬 다양한 상황 안에서 주관적이다.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는 임신 주수에 따른 임신중지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에리카는 곧 다음 임신을 해 딸을 낳았다. 그러나 같은 고통이 되풀이되도록 손 놓고 있지 않았다. 갓난아기를 안고서 뉴욕의 임신중지 범죄화에 반대하는 활동에 나섰다. 새로운 법안인 재생산 건강법(RHA:Reproductive Health Act)을 통과시키는 데 온힘을 다했다. 갓 태어난 딸을 길에서 키웠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뉴욕 전역을 돌며 발언했다. 아이를 안고 발언하는 에리카는 임신중지 운동의 상징이 됐다. 3년간 온 힘을 쏟아 2019년에는 그간의 상황보다 진일보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24주 이후 임신중지는 예외 조항에서만 가능하도록 한, 한계가 있는 법이기도 했다. 정부가 임신 가능한 몸의 신체 자율성을 훼손하는 걸 온전히 막지는 못한 “씁쓸한 승리”였다고 에리카는 회상한다. 그 뒤로 지금까지 에리카는 후기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을 숱하게 만났다. 복잡한 사회적 낙인과 신체적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확인했다. 에리카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디딤돌 삼아 구조적 문제를 바라본다. 여성이 어떤 이유로 임신 중지를 원했건, 정부가 그 자율성과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여전히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그러하듯, 적지 않은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위해 큰돈을 들여 기나긴 여행에 나선다. 기자회견에서든 인터뷰에서든 에리카에게 안긴 채 함께 싸워온 딸은, 네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임신중지가 무엇인지 물었다. “모든 사람은 임신에서 비롯되지만, 모든 임신이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건 아냐. 어떤 때는 임신한 사람이 자기 건강에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약이나 의사의 도움으로 임신을 끝내는데, 그게 임신중지야.” 에리카가 대답했다. 아이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그 정의에, 감시와 통제와 처벌이 끼어들 틈은 없다. 엄마가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따금 “아이 눈높이로 설명해줄 수 있어?”라고 묻는 호기심이 많은 이 어린 소녀에게, 부당함과 맞서 싸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낀다.

셀라는 2021년 은퇴했다. 바로 다음 해에 임신중지에 관한 가장 중요한 판례인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혀, 임신중지권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 차원의 보호가 사라질 줄은 몰랐다. 각 주가 임신중지를 금지할 권한이 생긴 법적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그래도 다음 세대의 움직임은 희망이다. 임신중지 선택권을 위한 의대생 모임(Medical Students for Choice)에 따르면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혀 폐기되자, 오히려 임신중지 시술을 배우려는 젊은 의사들의 움직임이 급증했다. 에리카 같은 환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눈을 뜨고, 활동가가 되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놀랍다. 틸러가 다음 세대를 위한 선물로 셀라를 남겼듯, 셀라도 에리카의 딸 같은 다음 세대를 위해 선물을 남겼다. 셀 수 없는 의사들에게 자신이 시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딸 같기도 하고, 손녀 같기도 한 여성 의사들을 훈련시켰다. 셀라가 틸러에게 바통을 넘겨받아 환자들 곁에 섰던 것처럼, 셀라가 직접 가르치거나 영향을 준 의사들은 미국 내 드물게 남은 안전지대로 날아가, 오늘도 진료소의 문을 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김인정 (논픽션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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