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왕국 신라’ 낮과 밤 색다른 재미에 ‘흠뻑’…MZ 스타일 경주 여행

황지원 기자 2025. 9.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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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제철행복] (6) MZ 스타일로 즐기는 ‘경북 경주’
학창시절 들뜬 추억 벗삼아 출발
황리단길에서 신라풍 한복 입고
대릉원 황남대총 배경으로 찰칵
천년서고·유물 감상에 넋 놓기도
야경 맛집 ‘동궁과 월지’ 인파 가득
풍경에 도취…“왕족 부럽지 않아”
대릉원의 목련 포토존. 지금은 흰 목련 대신 초록이 한가득이다. 경주=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가을을 맞는 마음은 가을보다 한발 앞선다. 한낮의 햇볕은 아직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공기를 느끼며 “가을이 왔다”고 말하게 되는 요즘이다. 가을 하면 수학여행, 수학여행 하면 경북 경주가 아닐까. 특히 경주는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개최를 앞두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유적과 유물만 보고 끝났던 수학여행 속 경주는 잊자. 요즘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가 경주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한다.

서울역에서 고속철도(KTX)를 타고 경주역에서 내린 뒤 택시를 타고 황남동으로 이동했다. 시내에 들어서자 보이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거대한 무덤이 경주에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첫번째 일정은 한복 입고 대릉원 포토존에서 사진 찍기. 우선 한복을 빌리러 ‘황리단길’에 있는 한복업체를 찾았다. 경주에선 서울 경복궁에서와 다르게 신라풍 한복을 입어볼 수 있다. 신라복은 상의인 ‘포’의 길이가 무릎 아래로 내려오며, 옷을 허리띠로 둘러 여미는 것이 특징이다. 색색의 옷 중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입고, 머리까지 땋은 뒤 대릉원으로 향했다. 한껏 화려한 복장에 부끄러움과 묘한 들뜸이 함께한다.

대릉원은 12㏊ 부지에 신라 왕족과 귀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 23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대릉원을 대표하는 인기 무덤은 천마총이지만, 요즘엔 황남대총과 그 동쪽에 있는 작은 고분 2기가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두 고분 사이로 보이는 목련과 황남대총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맘땐 흐드러지게 핀 흰색 꽃은 없지만 휴대전화 화면을 초록으로 가득 채울 수는 있다. 무덤을 덮은 파릇파릇한 잔디, 그리고 그 앞에서 줄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죽은 자의 공간인 능원을 생명력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

다음 일정은 국립경주박물관이다. 가장 먼저 방문한 건물은 전시관이 아닌 신라천년서고다. 2022년 개관한 이곳은 경주와 박물관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다. 목재를 사용한 한옥 스타일 인테리어와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규모가 크지 않아 누군가는 “별거 없네” 하며 5분 만에 둘러보고 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책과 고요한 분위기에 취해 종일 있어도 시간이 모자라게 느껴질 곳이다.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금관과 금제 허리띠.

처음엔 신라천년서고만 가볼 생각이었지만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지 않고 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신라역사관에 들어섰지만 폐장 시간 때문에 마음이 바빠 유물들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천마총 금관 앞에선 오랫동안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전시실 속 유리관 안에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전시된 금관은 조명을 받아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표현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 금관은 모두 6점인데 이들은 경주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국립청주박물관에 흩어져 있다. 경주박물관은 10월31일∼12월14일 신라 금관 6점을 한자리에 모아 ‘신라 금관 특별전’을 연다.

밤이 더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 일몰에 맞춰 조명이 켜진다.

박물관을 나와 저녁식사를 끝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경주 여행 마지막 목적지는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곳, 동궁과 월지다. 이곳은 조선 초기 문헌에 따라 오랫동안 ‘안압지’로 불렸지만, 1980년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유물에서 이곳을 ‘월지’라고 불렀음을 확인하게 됐다. 2011년부턴 공식 명칭을 ‘동궁과 월지’로 바꿨다. 동궁은 세자가 머물던 궁을 말한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4년(674년)에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귀한 날짐승과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세월이 지나며 전각이 모두 소실돼 호수만 남아 있던 공간을 1980년대부터 복원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동궁과 월지는 일몰에 맞춰 조명이 켜진다. 평일임에도 낮에는 어디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밤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이 풍경을 오롯이 차지했던 옛 신라 왕족이 부럽다가도, 그 시절 평민으로 태어났으면 담벼락 너머로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에 만족하게 된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도, 천년 왕국 신라도 결국 과거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하지만 수학여행의 추억이 지금까지 미소와 함께 떠오르는 것처럼, 신라의 자취도 21세기 MZ세대에게 색다른 재미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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