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의 아이'를 임신했다… 사랑의 광기와 욕망이 부른 파국

권영은 2025. 9. 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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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이희주 첫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
그동안 멸칭으로 통했던 빠순이들의 사랑에 대해 써온 이희주 작가가 최애하는 보이그룹 NCT 위시.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빠순이와 팬질. 여성 팬을 싸잡아 일컫는 '오빠 순이'에서 유래한 빠순이들의 팬 활동을 팬질이라 한다. 어김없이 낮잡는 의미의 접미사 '-질'이 붙는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인 이희주(33) 작가는 기꺼이 팬심에 대해 써왔다.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탄 단편소설 '최애의 아이'에서는 팬질의 끝을 보여준다. 소설 속 빠순이 '우미'는 급기야 자신의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인 '유리'의 정자를 구매해 임신한다. 파격적이고 논쟁적이다.

'최애의 아이'가 수록된 그의 첫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가 최근 출간됐다. 문단의 최전선에서 가장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로 꽉 채워져 있다.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뜻의 '크리미'와 범죄자를 의미하는 '크리미널'을 함께 연상시키는 제목은 달콤하지만 때로는 범죄로 생각될 만큼 위험하고 파괴적인 사랑을 암시한다.


"원한 건 딱 하나… 최애의 아이를 갖는 거"

'최애의 아이'는 아이돌의 정자 공유 시술이 상용화된 시대가 배경이다. 한 아이돌 팬이 사후 '최애의 아이'로 환생한다는 내용의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작가는 집필 당시 읽었던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플로츠의 '천재공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의 '우월한' 정자를 제공한다며 1980년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문 열었던 정자은행에 대한 책이다.

최애의 아이·이희주 지음·문학동네 발행·416쪽·1만8,000원

우미는 인공시술 동의서뿐 아니라 태어난 아이가 열세 살이 되면 프로필 사진을 찍어 기획사에 보내야 한다는 데도 서명해야 한다. 유리의 유전자를 가진 2세가 창출한 경제적 이득과 소유권의 10%도 기획사로 넘어가게 된다. 우미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얜 진짜 할 수 있을 거예요. 유리의 아이니까."

우미는 "30대 여자의 냉정한 판단력"으로 유리의 아이를 갖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아이돌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생활을 팔지 마라"라며 이런 방식의 인공수정은 "미저리 시술"이라는 비판에도 우미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유리의 아이를 원하니까요. (…)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마음 아닌가요?" 오히려 금기됐던 욕망을 내놓고 즐기는 여성의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크리미? 크리미널?… 가장 논쟁적 질문 던지는 소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소설의 설정을 파격적이라 보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이 구조 자체는 허황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밀감'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돌 사생활의 일부를 파는 산업의 본질을 먼저 짚는다. "우미는 바늘처럼 튀어나온 하나의 '미친X'인 동시에 시스템이 부채질한 욕망, 타인에게 닿고 싶은 마음을 극대화해 수익화하는 생산자의 잔인한 영리함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설명.

2016년 데뷔한 이희주 작가는 단편소설 '최애의 아이', '사과와 링고'로 젊은작가상과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올해 연달아 받았다. 북다 제공

결말은 파국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좋은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기득권 남성들이 케이팝 열풍에 올라타 아이돌의 것인 척 속이고 정자 바꿔치기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최애의 아이를 낳겠다는 꿈이 좌절된 우미는 반격에 나선다. 차라리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선택을 한다. "(너희들의 정자가 들어간 아기는) 유리처럼 예쁘지 않으니까."

소설집의 문을 여는 수록작 '0302♡'는 '이희주 월드'의 전사(前史) 같은 작품이다. '사랑받고 싶다'고 소망한 고교생 유리는 하루아침에 아름다운 얼굴을 갖게 되면서 지나친 애정공세에 곤란을 겪는다. 유리의 곁에 계속 있고 싶은 친구 '희주'는 유리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돌로 데뷔시킬 계획을 세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사랑은 온 세상을 유리의 아이로 채우고 싶다는 꿈을 꾸는 대리모의 이야기('천사와 황새')로 확장된다.


한국문학을 세계 최전선에서 알려

2022년부터 쓴 8편이 담긴 소설집에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애인과 맺어지기 위해 정체를 숨기는 트랜스젠더('해변 지도로부터의 탈출')와 가장 이상적인 여자의 모습을 한 버추얼 휴먼('마유미') 등을 소재로 한 이야기와 올해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과와 링고'도 담겨 있다.

최근 개정판이 나온 작가의 장편소설 '성소년'(2021)은 미국과 영국의 대형 출판사에 각각 1억 원대 선인세를 받는 조건으로 판권이 팔리면서 내년 영역 출간을 앞두고 있다. 남자 아이돌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네 여자의 광기와 욕망을 그린 소설로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출간도 확정됐다. 케이팝 열풍 속에 이희주는 전 세계가 가장 뜨겁게 주목하는 이야기꾼이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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