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천] 화천댐 건설 삭도의 숨겨진 비밀

안의호 2025. 9. 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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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쟁물자 공급기지인 경인공업지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화천수력발전소는 우리 속담 '공든 탑'의 반면교사다.

춘천 의암호에 남아 있는 댐 건설 물자운반용 삭도 교각과 화천 곳곳에 남아 있는 삭도 잔해가 그 유물이다.

매경신보 1940년 7월 24일자 기사에 따르면 한강수전은 화천발전소 공사에 사용할 자재를 나르기 위해 75만원(당시 쌀 한가마(80㎏)값 22.68원)의 큰돈을 들여 공중삭도를 그해 4월 준공했지만 당초 설계가 잘못돼 물자를 나를 수 없는 것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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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잘못, 물건만 실으면 수송철선 처지며 땅에 끌림 현상 발생
막대한 예산투입 불구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삭도 잔해만 남아
▲ 1940년 화천수력발전소 건설에 쓰이는 자재를 실어나르기 위해 설치했던 공중삭도의 교각이 화천 곳곳에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전쟁물자 공급기지인 경인공업지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화천수력발전소는 우리 속담 ‘공든 탑’의 반면교사다. 춘천 의암호에 남아 있는 댐 건설 물자운반용 삭도 교각과 화천 곳곳에 남아 있는 삭도 잔해가 그 유물이다.

화천수력발전소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 한강수력전기주식회사(이하 한강수전)가 총 저수량 10억2000만㎥의 댐을 만들어 수로식 발전소로 10만 8000㎾의 전기를 생산한다는 목표로 공사에 착수, 1944년 5월에 2만7000㎾용량의 제1호기를, 같은 해 10월 2호기를 각각 준공했으며 3호기와 4호기는 공사를 하는 도중에 해방을 맞았다. 곧 이은 남북분단으로 북한은 이들 일부시설을 이용해 북부지역에만 전기를 공급하며 남한의 심각한 전력난을 외면했다. 625전쟁중인 1050년 9월 남한이 화천발전소를 수복해 1호기를 복구했다가 다시 빼앗기는 등 전쟁 중 모두 5차례의 쟁탈전 끝에 1951년 9월 완전 수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와중에 화천발전소의 대부분 시설은 파괴됐으며 화천댐은 1951년 4월~5월 보병 6사단과 해병 제12연대가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중공군 제10·25·27군을 완전 섬멸한 역사적 장소가 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현지를 방문, 승리를 기념하며 화천댐을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으로 ‘파로호(破虜湖)’라는 친필휘호를 내려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 1940년 화천수력발전소 건설에 쓰이는 자재를 실어나르기 위해 설치했던 공중삭도의 교각이 화천 곳곳에 남아있다.

화천수력발전소의 겉으로 드러난 이같은 역사 이면에는 잘못된 설계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폐물이 된 한강수전 공중삭도(漢江水電 空中索道)이야기가 숨어 있다.

매경신보 1940년 7월 24일자 기사에 따르면 한강수전은 화천발전소 공사에 사용할 자재를 나르기 위해 75만원(당시 쌀 한가마(80㎏)값 22.68원)의 큰돈을 들여 공중삭도를 그해 4월 준공했지만 당초 설계가 잘못돼 물자를 나를 수 없는 것이 드러났다. 물건을 싣지 않고 시운전했을 때는 정상 작동하던 것이 물건을 실으면 수송철선이 축처져서 운반기가 땅에 끌리게 돼 전혀 수송을 할 수 없게 된 것. 여러차례 고치려 노력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어 공사를 뜯어고쳐야 할 운명에 이르게 돼 하루 200t의 물자 수송능력을 갖춘 반도 제1의 색도가 무용의 공사가 되고 말았다고 기사는 꼬집었다. 기사는 이어 삭도로 실어나를 수 없는 물자를 화물자동차로 수송해야해 공사에 지장이 따른다고 보도하고 있다. 같은 신문 그해 8월 10일자엔 ‘화천수전공사에 전북서 근로보국’이라는 기사를 통해 전북 진안군에서 95명의 노동자를 모아 근로보국대를 편성했다는 기사를 실어 설계 잘못이 노동력 수탈로 이어진 당시의 현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 1940년 화천수력발전소 건설에 쓰이는 자재를 실어나르기 위해 설치했던 공중삭도의 교각이 화천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 의암호의 삭도는 춘천시가 조형물을 설치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화천지역의 삭도 잔해는 역사속 폐물로 방치되고 있다. 그나마 활용하고 있는 의암호 삭도의 경우도 1940년 4월 11일 정식 가동해 서울에서 경춘선 철도를 통해 춘천으로 옮긴 자재를 삭도를 통해 화천발전소 공사현장으로 옮겼다는 잘못된 정보를 실어 빈약한 역사고증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종성 화천문화원장은 “일제강점기 아픈 착취의 역사가 담긴 유적이라 보존과 관리에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연구가 없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화천발전소는 1968년 제4호기 증설을 마쳐 당초 계획대로 설비용량 10만8000㎾를 보유, 연간 3억2600만㎾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담수용량 10억 2000만㎥의 저수지를 통해 한강수계의 홍수조절과 수도권 용수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안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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