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안의 중국’ 3·4선 도시, 신성장동력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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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중국 베이징에 출장 올 때마다 왕푸징 뒷골목의 야시장을 자주 묻는다. 예전에는 전갈튀김부터 온갖 ‘혐오 식품’이 넘쳐나던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관광객으로 붐비던 그 골목은 코로나19 이후 텅 비어 휑한 모습만 남아 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이와는 상반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2025년 4월 초 청명절 휴가 때 산시성의 위린에서 옌안까지 아우르는 여행을 다녀왔다. 옌안은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과 맞닿은 ‘홍색여행’ 도시로, 중국 현대사에 관심이 없으면 잘 찾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온통 붉은색으로 물든 옌안의 밤, 특히 옌안 ‘이도 야시장’은 사라진 베이징 골목과는 달리 더 많은 사람과 더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활기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지방 도시의 생동감과 열정은 중국 내수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중국은 여전히 크고 다채롭다. 중국 대도시, 즉 ‘베이상광선’(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과 신(新) 1·2선 도시들이 첨단산업과 디지털경제의 중심을 차지한다. 반면 3·4선 도시는 더 유연하고 현지화된 구조 속에서 ‘덜 제도화된’, 지역 네트워크 기반의 소비와 생산으로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다.
3·4선 도시가 중국 소비 56%
물론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행정 구분(34개 성급 행정구역) 외의 지역은 구분하거나 서열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이두 등 주요 포털에서 ‘○○시는 몇 선 도시인가요?’ 같은 검색이 흔히 이뤄지듯, 도시 간 계층 구분이 사실상 널리 통용된다. 이런 도시의 ‘선 분류’는 민간 분석기관의 기준에 따라 1선부터 4선, 혹은 그 이하 단계까지 경제력과 인구, 시장잠재력 등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신 1·2선 도시는 중국 중앙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에 따라 자본과 인재가 집중되고, 첨단산업 클러스터와 물류·항만 인프라가 빠르게 성장하며 ‘디지털경제 거점’으로 부상했다. 이에 견줘 3·4선 도시는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정책 추진보다는 지역 특색, 사적 네트워크, 소도시 문화자원에 기반해 경제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소상공인, 가족경영, 노상 판매, 임시 야시장 등 비공식 경제가 뿌리 깊게 작동하는데 이는 도시별로 저마다 다른 발전 방정식을 만들어낸다. 즉 신 1·2선 도시가 국가적 기준 아래 표준화된 시장경제의 실험장이자 도시화의 교두보라면, 3·4선 도시는 아직 제도권의 경계 밖에서 현지인과 외부인의 상상력, 그리고 작은 기회가 뒤섞이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3·4선 도시는 인구 9억 명이고 전체 도시의 85%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로, 중국 전체 소비의 56.2%(17조2천억위안, 약 3325조원)를 담당하는 내수의 핵심 시장이다. 최근에는 1·2선 도시 대비 높은 소비증가율을 보인다.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주택가격(평균 1만2천위안, 약 232만원)과 가계부채(55.4%) 등으로 실질 소비 여력이 높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3선 이하 도시가 핀둬둬 전체 주문의 60~70%, 타오바오 신규 소비자의 77%를 차지하며, 각종 온라인·배달플랫폼에서의 주문·소비 증가율이 대도시를 크게 앞질렀다.

3·4선 도시의 새로운 위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개념이 바로 ‘하침시장’(下沉市場)이다. 하침시장은 3선 이하 도시와 농촌을 포괄하는 신흥 성장 시장이다. 원래 2000년대 초 ‘대도시에서 중소도시·농촌으로 내려가는(침투하는)’ 오프라인 유통과 가전 업계의 전략을 지칭하며 등장했다. 이후 2010년대 중반 이후 전자상거래·모바일 경제의 전국적 확장과 함께 중국 산업계의 주요 핵심어로 자리 잡았다. 인구·소비력·시장잠재력 측면에서 하침시장은 이제 중국 소비 트렌드의 중심축으로, 최근 10억 명에 육박하는 인구와 폭발적인 소비성장을 하고 있다.
최근 2~3년간 중국 3·4선 도시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화장품·식품·의류·유통·외식 등 전 산업군에서 뜨겁게 전개됐다. 슈퍼마켓 체인 허마는 전국 400여 개 매장 중 약 3분의 1을 2·3선 이하 도시와 군현에 새로 오픈했다. 샘스클럽도 2025년 5월 기준 전국 56번째 매장을 열며 현급 도시 진출을 가속화했다. 스타벅스도 2024년 현급 시장에 신규 오픈을 이어가며 매장 수를 7600여 개로 확대했다.
반면 유니클로는 2023~2024년 다수의 2~4선 도시 지점에서 매장 철수와 전략 재조정을 단행했다. 이는 현지 소비자 요구, 지역별 가격과 브랜드 전략 부재 등 복합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3·4선 도시는 맞춤형 전략을 내세운 국내외 브랜드에는 신성장 무대가 되고 있으나, 일률적 접근에는 확실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숏폼의 폭발적 위력
최근 3·4선 도시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단순한 성장 기대를 넘어, 실질적인 현장 변화를 뒷받침하는 세 가지 핵심 동인에 집중된다.
첫 번째 축은 숏폼 플랫폼이 만든 폭발적인 ‘로컬 바이럴’(지역 입소문)이다. 중국의 숏폼 플랫폼 이용자는 2023년 기준 10억 명을 돌파했고, 2024년에는 11억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루 평균 이용 시간도 2.5시간이 넘으며, ‘#쯔보꼬치구이’ ‘#톈수이마라탕’ 등 각 도시 해시태그가 전국적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과거에는 생소하던 도시 이름이 단 한 편의 숏폼 영상으로 관광객과 소비자를 직접 유치하는 시대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지역 상인이 힘을 합쳐 지방특산물과 문화행사를 전국적으로 브랜딩하는 ‘디지털 지역마케팅’도 일상화돼 브랜드 가치가 크게 올라가고 있다.

다음으로, 지방정부의 유연한 거버넌스다. 경직된 행정 절차를 벗어나, 문제 발생 즉시 자원을 집중 투입하고 행정 규제를 신속히 완화하는 ‘즉석행정’이 확산 중이다. 예컨대 쯔보는 2023년 노동절 연휴 관광 예약이 전년 동기 대비 2천% 이상 증가하자 무료 셔틀, 임시 숙소, 이동형 공급 차량과 전기료 지원을 신속히 제공했다. 톈수이의 마라탕 열풍으로 한 달 만에 350만 명, 20억위안(약 3870억원)의 소비가 발생하자 시는 버스 증편, 환승센터 운영, 노점 사용료 면제 등 맞춤형 지원을 신속하게 시행했다.
지방정부의 유연성은 신재생에너지 전환 같은 중장기 산업구조 개편 과정에서도 빛난다. 산시성은 2024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50.37%에 이르며, 전통적인 석탄 채굴 침하지를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지방정부는 이런 산업 전환을 위해 토지사용권, 세금 감면, 전기료 지원을 묶은 ‘즉석 지원 패키지’ 정책을 시행하며 민간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투자 유치와 시장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의 큰 틀 정책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동시에, 지역 특성에 맞춘 행정 혁신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또한 혁신적 고속철·물류 인프라가 지방 도시의 접근성과 연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2020년 기준 인구 20만 명 이상의 도시 중 95% 이상이 철도·고속도로망에 연결됐고, 2023년 고속철도망은 4만5천㎞를 넘었다. 전국 208개 국가 물류 허브 가운데 상당수는 3·4선 도시에 있어 내륙 택배 익일 배송 비중이 45% 이상으로 높아졌다. ‘9.9위안 무료배송’ 같은 전자상거래 주문도 지방 중소도시에서 활발히 발생한다.
이와 함께 항만과 내륙 교통망의 결합이 중국 내륙과 국외를 잇는 복합 물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주요 항만은 철도, 고속도로, 내륙 드라이포트(무수항)와 긴밀히 연결돼 해상 물류가 3·4선 도시까지 실시간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롄윈강은 신유라시아대륙교의 동쪽 출발점이며, 항만을 통해 들어온 화물이 철도와 고속도로로 중서부 내륙 및 중유럽, 동남아까지 빠르게 전달된다. 이런 항만~철도~도로~내륙택배 통합 물류 체계는 지방 소도시가 글로벌 공급망 내 ‘노드’로 기능하며, 중국 물류·유통의 공간적 확장과 경제 활력 증대를 견인한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번 역은 피저우둥, 피저우둥역입니다.”
고속열차를 타고 대도시를 이동하다보면 갑자기 난생처음 듣는 도시명에 놀라 잠을 깨곤 한다. 이어서 이런 4선 이하 도시에도 고속철이 다닌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게 된다. 아마 이전에는 베이징에서 서너 번을 갈아타며 이틀을 꼬박 걸려 도착했을 도시가 이제 불과 3시간 남짓 만에 닿는다.
한동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베이징의 훠궈는 깔끔한 식당 안에서 주문한 만큼 위생적이지만, 뤄양의 훠궈는 말 그대로 시장 바닥에서 흙 날리며 포장마차 감성으로 먹는다. 로봇이 만들어주는 베이징의 달걀볶음밥과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했을지 모르는 팬에 마지막에 흰 가루(MSG)를 계량되지 않은 한 스푼으로 마무리하는 옌안 야시장의 달걀볶음밥. 어느 쪽이 더 ‘중국적’인지는 분명하다. 이러한 풍경과 사람들이 3·4선 도시를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베이징에서 사라진 야시장의 연기는 롄윈강과 톈수이의 새벽하늘에서 다시 타오르고 있다. 중국 내수의 다음 10년이 궁금하다면, 고층 빌딩보다는 새벽 2시에 불 밝힌 노점을 먼저 들여다볼 일이다.
남동우 KOTRA 베이징무역관 과장 dannynam@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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