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수요 못 따라가는 콘서트장, 5만 석 아레나 짓자

한겨레 2025. 9. 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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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CULTURE & BIZ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케이(K)-콘텐츠의 힘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가운데, ‘K-팝 전용 아레나’ 건립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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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케이(K)-콘텐츠의 힘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한국계 스태프들이 기획해 소니픽처스와 넷플릭스 공동제작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하나의 문화로 성장한 K-팝 현상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한국의 전통 무속과 K-팝 문화를 결합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K-팝 아이돌 그룹들이 주인공이 돼 K-팝과 K-푸드, 서울 명소,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이런 내용의 애니메이션이 넷플릭스 세계 시청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했고, 수록곡들도 각종 차트를 휩쓸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힙한 나라 한국’을 종합세트로 엮어 K-콘텐츠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K-콘텐츠, 수출에서 내수로

새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관광업계 출신 인사가 된 것도 변화된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K-콘텐츠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시너지에 주목해 콘텐츠 산업의 중심을 수출에서 내수로 옮기겠다는 뜻이 담긴 듯하다. 최근 미국 관세 부과 등으로 주요 수출 동력이 흔들리면서 우리 경제에서 내수 진작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내수라 하면 자국민이 소비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K-콘텐츠를 즐기려는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면 내수가 늘어난다. 이제 콘텐츠를 외국에 파는 것에서 벗어나, 외국인을 국내로 직접 유인해보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다시 주목받는 것이 ‘K-팝 전용 아레나'다. 수도권에 대형 공연장을 건립해 글로벌 팬들을 불러들이고, 이를 통해 문화 소비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자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경제성’ 문제에 늘 발목이 잡히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1년에 한두 번 쓰기 위해 값비싼 아레나를 지을 수는 없다는 시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5~6년 동안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이 변하면서 ‘경제성’도 재평가돼야 한다는 분위기다.

공연장은 규모에 따라 명칭도, 용도도 다르다. 보통 1천 명에서 5천 명 규모는 ‘홀’이라 하는데, 클래식이나 뮤지컬 공연 정도에 적합하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5천 명에서 2만 명 정도의 규모가 되면 ‘아레나’라 한다. 보통 1만 석 내외의 중소형 아레나는 팬미팅이나 실내 콘서트 등 소규모 공연에 적합하고, 2만 석 전후의 중대형 아레나는 많은 스타의 글로벌 투어용으로 활용된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인 케이스포돔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가 모두 1만5천 석으로 이 정도 규모에 해당한다.

이보다 조금 더 큰 ‘스타디움급 아레나’는 2만 석에서 5만 석 정도의 규모다. 대형 콘서트나 국제 스포츠 이벤트, 대규모 페스티벌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2만5천 석), 서울월드컵경기장(6만5천 석), 현재 리모델링 중인 서울올림픽주경기장(6만 석 예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면 ‘메가 스타디움급 아레나’다. 전세계 팬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플래그십 공연장으로, 국가대표급 브랜드 상징성을 갖춘 공간이 된다. 미국의 로즈볼(9만6천 석), 영국의 웸블리스타디움(9만 석), 프랑스의 스타드 드 프랑스(8만 석) 등이 그런 곳이다. 모두 우리의 자랑스러운 방탄소년단(BTS)이 공연했던 곳들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국내에 아직 없는 것이 5만 석 이상의 공연 전용 아레나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고척스카이돔 등은 규모는 크지만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전용 시설이라 공연 전용으로 쓰기 어렵다. 구조나 음향, 무대 설치 등에 불편함이 많다. 2023년 잼버리 K-팝 콘서트 이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가 많이 훼손됐던 것도 이 공간이 공연 전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규모가 이보다 작은 곳들은 수요가 넘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과 2023년 말 개장해 최신 시설을 갖춘 인스파이어의 인기가 좋다. 하지만 이용하려는 스타가 많고 이용 기간도 대부분 몰려 있어 원하는 때 공연장을 잡기 어렵다고 한다. 인스파이어는 송도에 있어 공연이 밤늦게 끝날 경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BTS나 블랙핑크 등 팬덤 규모가 큰 K-팝 그룹의 단독 콘서트를 열기에는 여전히 규모가 아쉽다는 평가다.

우여곡절 많은 아레나 탄생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계속됐지만 우여곡절이 많다.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 창동에서는 각각 K-컬처밸리와 서울아레나를 건립 중이다. 2만 석 규모인 K-컬처밸리는 씨제이(CJ)라이브시티가 애초 2023년 개장을 목표로 건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민간투자 방식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코로나19 이후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수익성 문제도 생겼고 전력 공급, 하천 악취 등의 문제도 발생했다. 민간의 힘으로만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공사는 계속 지연됐고, 결국 사업을 중단했다. 경기도는 최근 사업 형태를 민관협력 방식으로 바꾸고 새 사업자를 선정해 공사를 재개하려 한다.

서울아레나는 최대 2만8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2027년 완공이 목표다. 서울 창동의 서울아레나 조감도. 서울시

서울아레나는 처음부터 민관협력 형태인 민간투자사업(BTO) 방식으로 추진됐다. BTO는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한 부지에 민간사업자가 시설물을 지어 운영하다가 일정 기간 뒤 정부에 귀속시키는 형태다. 서울아레나는 최대 2만8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2027년 완공이 목표다. 카카오가 대주주로 참여했고 블루코 등이 함께 건설하고 있다. 두 아레나는 공통적으로 수도권에 안정적인 공연 인프라를 확보하고 K-팝 산업의 허브 구실을 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추진됐다. 모두 2020년 이전부터 건립을 준비했는데, 10년 동안 완공되지 못할 정도로 사업 추진이 어려웠다. 높은 사업비로 사업 주체 간 조정이 필요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2029년 완공 목표인 경기도 하남의 K-스타월드도 있지만 민간사업자 공모가 성공할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그럼에도 여전히 5만 석 이상의 초대형 공연 전용 아레나는 필요하다는 게 많은 사람의 주장이다. K-컬처밸리나 서울아레나 등이 완공되면 2만 석 내외의 아레나 공급은 늘겠지만, 이 규모는 세계적인 K-팝 스타들의 공연을 수용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BTS나 세븐틴, 블랙핑크처럼 글로벌 팬덤 규모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그룹들은 서울에서 단독 공연을 할 경우 2~3회 공연을 해도 팬들이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외국에서는 가능한 이들의 대규모 공연을 K-팝의 본고장인 한국에서는 공연장이 없어 볼 수 없다는 현실은 매우 모순적이긴 하다.

스위프트 경제효과? BTS 경제효과!

물론 대규모 아레나 건립에는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우려가 항상 따라붙는다. 공연장 가동률, 주변 교통망과 연계, 지역 상권과의 조화 등 고려할 요소가 많다. 대규모 공연장이 연중 내내 안정적 운영수익을 올리려면 5만 석 이상을 채울 아티스트와 콘텐츠가 더 풍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BTS, 블랙핑크 등 극소수 글로벌 아티스트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아이돌들의 경우 대부분 1만~2만 석 규모면 대체로 수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대형 아레나의 유지비와 인프라 조성비가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티켓 수요만으로 수익성을 담보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민간투자 외에 정부 재정 투입이 필요한데, 이 경우 명확한 계획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K-콘텐츠의 위상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몇 년 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경제 자산이 됐고, 수요도 탄탄하다. 관광 수요와 경제적 파급효과를 생각해도 5만 석 이상의 초대형 아레나는 공연장 이상의 기능을 할 가능성이 크다. 국외 팬들이 한국을 방문해 공연을 보고, 숙박·식음·쇼핑·문화 활동을 연계할 경우 관광산업 전체에 강력한 소비 유입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른바 ‘콘서트 관광’ 생태계 구축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을 고려해 다시 타당성을 산출한다면 과거와는 다른 값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스위프트 경제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BTS 경제효과’ ‘블랙핑크 경제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익성과 활용도를 극대화하도록 다양한 복합 콘텐츠 시설과 연계해 지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K-팝 아레나는 세계인이 한국에 모이는 일종의 문화 플랫폼, 관광 허브가 될 수 있다. K-팝의 본거지인 한국에도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 필요하다.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 감동을 공유하고 한국이란 공간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가 현재 한국에는 없다. 일본 도쿄돔은 콘서트 명소로 팬들에게 각인돼, 공연장 방문 자체가 관광 목적이 되기도 한다. 공연장은 빈 건물에 불과하지만 BTS가 늘 공연하는 곳이 되면 새로운 명소로 탈바꿈된다. 이런 명소는 돈만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K-팝이 이룬 성과는 누가 보더라도 자명하다. 이제는 그 성과를 담아낼 '그릇'이 필요하다. 팬덤의 크기에 걸맞은, 한국 문화의 현재를 상징하는 무대가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대중문화라는 이유로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지금은 그 대중문화가 한국이란 나라를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동력이 됐다. 우리 경제력 수준에서 그런 산업을 뒷받침할 인프라를 세우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어쩌면 문제는 경제력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 고정관념은 아닐까. 이것이 지금 K-팝 아레나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일 듯싶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zkim@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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