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진의 리빙+] 전설 따라 길 떠나는 강원 여행

최경진 2025. 9.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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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산세·동해바다 등 신비로운 이야기 품어
자연 경외·인간의 감정 녹여가는 삶의 역사 비춰

강원도의 산과 바다는 단순한 자연을 넘어 삶의 배경이자 신앙의 무대였다. 태백산맥이 이어지는 험준한 산세와 동해의 깊은 바다는 오래전부터 신비로운 이야기를 품고 사람들의 믿음과 생활에 스며들었다. 전설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했는지를 보여주는 생활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 속에 스며든 이야기를 알면 풍경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산에는 신과의 연결을 꿈꾸던 전설이, 바다에는 용왕과 사랑의 신앙이, 호수와 노래에는 삶의 애환이 녹아 있다. 이번에는 강원도의 명소를 산·바다·그 외로 나눠 전설을 따라가 본다.
 

▲ 치악산 비로봉 [원주문화원 제공]

■ 산이 품은 이야기들

설악산 울산바위에는 ‘금강산이 되지 못한 바위’의 전설이 있다. 조물주가 전국의 바위들을 금강산으로 불렀으나, 울산에서 온 바위는 늦게 도착해 결국 설악산에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높이 873m, 둘레 4㎞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는 지금도 동해를 굽어보며 서 있다.

오대산은 불교적 색채가 짙다.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동자로 나타난 보살이 불법의 길을 일러주었다는 설화는 지금도 적멸보궁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원주의 치악산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어떤 나그네가 치악산 기슭을 지나다 꿩을 감아 죽이려는 구렁이를 쳐 꿩을 구해주었다. 꿩과 새끼들은 이후 구렁이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나그네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름에 꿩 치(雉)자가 들어가는 이유라고 전해진다.

태백의 검룡소는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고자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수련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무기가 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 자국이 암반에 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검룡소의 물은 병을 고치고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어졌다.

▲ 삼척 신남리 해신당 전경. 이곳은 아름다운 해안선과 전설을 바탕으로 성 민속공원으로 조성해 신비감을 주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자료사진

■ 바다·호수에 깃든 전설

강릉의 경포호는 옛날에 부유한 백성이 살던 곳이라 한다. 하루는 중이 쌀을 구걸하러 왔는데 그 백성이 똥을 퍼 주었더니 살던 곳이 갑자기 빠져 내려서 호수로 되고 쌓여 있던 곡식은 모두 자잘한 조개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매년 흉년이 되면 조개가 많이 나고 풍년이 되면 적게 나는데 맛이 달고 향긋하여 요기할 만하며 지방 사람들은 적곡(積穀)조개라 부른다.

삼척 해신당의 전설은 더욱 인간적이다. 결혼을 약속한 처녀와 총각이 있었으나, 총각이 해초를 거두러 간 사이 폭풍으로 처녀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마을은 이 원혼 때문에 어획이 줄었다고 믿었고, 이를 달래기 위해 나무로 남근을 깎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 봄철 강릉 오죽헌을 찾은 관광객들이 만개한 매화꽃을 구경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자료사진

■ 마을이 간직한 기억

사람들의 삶터에도 전설은 이어진다. 강릉 오죽헌에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을 때의 길몽이 전해진다. 출산이 임박한 신사임당은 친정인 오죽헌으로 장소를 옮겼는데, 출산을 앞둔 어느 날 검은 용(현룡)이 침실로 날아드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에 오죽헌의 오른쪽 끝 방에 용꿈을 꾼 방이라는 뜻의 ‘몽룡실’ 현판이 붙어 있다.

정선아리랑에도 애환이 담겨 있다. 옛날 정선골에 아직 철이 들지 않은 10살 된 신랑에게 시집간 20살 색시가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강가로 나갔다가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보고 세월도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아 신랑도 자랄 때가 있으리라 깨닫게 되어 집으로 되돌아가면서 부른 노래라는 설화가 있다.

영월 청령포는 단종의 원혼이 서린 곳이다. 이곳에는 수령 600년이 된 소나무 관음송이 있다. 유배를 당한 단종은 비애 속에서 처소 옆 소나무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관음송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觀(볼 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 하여 ‘音(소리 음)’ 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강원의 전설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을 경외하며,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고, 공동체의 믿음을 이어가는 기억의 기록이다. 치악산의 꿩, 600년 수령의 소나무, 검룡소의 용에 대한 전설은 자연과 인간이 오래도록 나눈 대화의 흔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산과 바다, 마을을 찾을 때 전설은 여전히 우리를 맞이하며 삶과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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