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PICK!] 화마 속에서도 살아 남은 사찰, 국가의 ‘보물’ 되다

김동용 기자 2025. 9.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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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큰 화마 속에서도 살아 남은 경북 안동 광흥사 응진전이 국가의 '보물'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안동 광흥사 응진전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최근 밝혔다.

안동 광흥사 응진전은 조선 시대 불교 건축과 사찰 운영의 변화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유산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응진전의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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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안동 광흥사 응진전 ‘보물’ 지정 예고
1827년, 1946년 대형 화재로 광흥사 주요 전각 소실
화마 피한 응진전, 이후 광흥사 중심 불전 기능 수행
“조선 시대 불전 건축양식 변화 담겨 학술 가치 높아”
경북 안동 광흥사 응진전 정면. 국가유산청

두 차례의 큰 화마 속에서도 살아 남은 경북 안동 광흥사 응진전이 국가의 ‘보물’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안동 광흥사 응진전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최근 밝혔다. 안동 광흥사는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전기에는 불경 간행이 활발히 이뤄졌던 안동 지역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안동 광흥사 응진전은 조선 시대 불교 건축과 사찰 운영의 변화를 보여주는 유산이다.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망와(지붕 마루 끝에 세우는 암막새 기와)에 기록된 글을 통해 1647년(인조 25년) 기와 공사를 했음을 알 수 있어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흥사는 1827년과 1946년 두 차례의 큰 화재로 사찰의 주요 전각이 소실되기도 했다. 다만 응진전은 중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어 화를 면했고 이후 사실상 광흥사의 중심 불전 기능을 수행하게 된 보기 드문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응진전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보면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구성돼 있다.

안동 광흥사 응진전 공포 정면(왼쪽)과 화반 및 포벽화. 국가유산청

건물 정면의 공포(기둥머리에 나무를 짜맞춰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구조부재)는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다포계로 화려하게 조성했으며, 옆면과 뒷면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두고 꽃문양이 그려진 화반(기둥 사이에 설치된 수평부재 위에 상부 무게를 받치기 위해 둔 넓은 판재)으로 장식해 정면을 강조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특히 응진전의 공포는 조선 전기의 양식을 계승해 중기, 후기에 이르기까지 불전 건축 양식의 변화를 시기적으로 잘 보여주는 형태를 지녀 학술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안동 광흥사 응진전에 봉안된 소조석가여래오존상 및 16나한상 일괄. 국가유산청

아울러 응진전에 봉안된 경북 유형문화유산 ‘소조석가여래오존상 및 16나한상 일괄’은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다. 42구로 일반적인 사례에 비해 그 수가 많고 배치가 특이해 학술 가치가 크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유산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응진전의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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