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남기고 폐점 통보…‘긴급생존’은 회사만 하나요?

지난달 13일 오후 2시 반쯤.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홈플러스 원천점에서 직원 대상 긴급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지역 본부장이 업무 시간에 갑자기 일선 직원들을 소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설명회에선 지난 3월 기업 회생 돌입 이후 회사의 경영 환경이 매우 좋지 않다, 다달이 매출이 꺾이고 있다는,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가 15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이윽고 새로운 소식이 전달됐습니다.
"우리 점포 영업 종료일은 11월 16일로 결정됐습니다."
■ 홈플러스 "'긴급 생존' 위해 점포 15곳 문 닫겠다"
비슷한 시각, 홈플러스는 '긴급 생존 경영' 체제에 돌입한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생존' 대책의 핵심, 수원 원천점을 포함한 15개 점포의 폐점이었습니다.
건물 임대주와의 임대료 조정 협상에 진전이 없는 15개 점포를 없애 적자 폭을 줄이겠다는 겁니다. 이달 초 기준 홈플러스가 운영 중인 122개 점포의 12%가 정리되는 셈입니다.
홈플러스 측은 "해당 15개 점포는 과도한 임대료로 인해 대규모 적자를 보고 있다"면서 "임대료를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하지 못 할 경우, 15개 점포의 연간 영업손실만 8백억 원에 달해 회생에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홈플러스는 임대주에게 임대료를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깎아달라고 요구해 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홈플러스는 점포 5곳(수원 원천, 인천 계산, 대구 동촌, 부산 장림, 울산 북구점)의 폐점일을 오는 11월 16일로 확정해 곧바로 직원들에게 통보했습니다.
나머지 10곳은 당초 내년 5월까지 순차적으로 폐점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3일 폐점일을 12월 2일로 일괄 공지했습니다.
보름 간격으로 점포 15곳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되는 겁니다.
각 점포에는 최소 90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점포가 문을 닫더라도 고용은 보장하겠다며, 인근 점포로 발령낼 테니 1~3순위를 적은 희망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3백만 원(세전)의 위로금을 주겠다고도 했습니다.
또 폐점을 계기로 퇴직하는 직원에게는 퇴직금과 별개로, 기본급을 기준으로 계산한 고용안정지원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근속 연수에 따라 최소 630만 원에서 많게는 2천5백만 원가량의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 200만 원 좀 넘는 월급 받으러 1시간 넘게 출근?…"퇴사 인원 상당할 듯"
"처음엔 막 화가 나다가, 나중엔 걱정하다가… 지금은 포기한 상태예요."
11월 폐점이 확정된 홈플러스 인천 계산점 직원 A 씨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 불편해도 다른 점포로 옮겨서 일을 계속하면 되지 않을까?
A 씨는 "이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가좌점이나 부천여월점으로 가더라도 거의 1시간 정도 걸려 출근을 해야 한다"면서 "직원 대다수가 차가 없는 주부들인데, 집에서 그쪽까지 한 번에 가는 대중교통이 없어 전체 출퇴근에 길게는 3시간 가까이 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 씨와 일하는 동료 대부분은 50대 이상 여성. 홈플러스 근처에 살면서 도보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 씨는 "월급도 200만 원 조금 넘는 빠듯한 처지인데 차비로, 교통비로 다달이 몇 만 원씩 대 가면서 다른 점포에 다닐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11월 폐점하는 수원 원천점 직원 추연경 씨도 "이 나이에 과연 내가 다른 근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만둬야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 여러 기분이 교차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회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솔직히 폐점이나 희망 퇴직은 아무래도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려는 의미가 포함되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이 점포가 없어진다고 하니까 슬프고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홈플러스 노조 관계자는 "직원들 중엔 정년을 몇 년 남기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폐점을 계기로 퇴사하는 직원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홈플러스 원천점에서 만난 또 다른 직원은 회사가 내세운 폐점의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직원은 "회사는 건물 임대주가 임대료 조정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지만, 임대료를 50% 인하해달라는 조건을 내건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느 바보가 그걸 수용하겠나"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가 협상할 의지가 있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며 "결국 회사가 적자 점포를 정리해서 매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보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홈플러스 계산점 직원 A 씨도 "기업 회생에 들어가니까 MBK는 나몰라라하면서 뒤로 빠지면서 우리를 버린 거라고 본다"면서 "본인들은 홈플러스에서 챙길 건 다 챙겼다는 거고, 운영 실책에 대한 책임은 쉰이 넘은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입점 상인들 "전재산 투자했는데 날벼락…보상안 터무니없어"
폐점하는 홈플러스 점포들은 입점 상인들의 일터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직원보다 늦게 폐점 통지를 받았습니다. 홈플러스가 지난달 14일과 지난 4일에 각각 발송한 공문을 통해서였습니다.

홈플러스 계산점 입점 상인 B 씨는 "공문 하나 보내고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니 기가 찬다"면서 "우리끼리는 오죽하면 뉴스 기사 보는 게 더 소식이 빠르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미용업체를 운영하는 또 다른 상인 C 씨는 "폐점을 하더라도 6개월 정도는 기간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짧아 놀랐다. 말 그대로 날벼락"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기업회생 신청이 발표된 3월부터 이미 매출이 30~40% 줄었는데 이제 거기서 더 빠지고 있다"고 연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입점 상인들은 직원들과 달리, 다른 홈플러스 점포로 이동해 장사를 이어갈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공문에서 "(홈플러스가 철수한 후에도) 건물에서 영업을 계속하고자 하신다면 임대인과 협의해 방안을 추진해보겠다"고도 했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폐점일까지 새 매장을 열 곳을 찾지 못하면, 상인들은 길바닥에 나앉을 신세가 된 겁니다. 이제 폐점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3개월입니다.

홈플러스는 상인들과 개별적으로 보상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했지만, 전망은 녹록지 않습니다.
홈플러스가 정상 기업이 아닌 '회생 절차 중'인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한 변호사는 KBS에 "임차인(상인)들은 영업 손실을 보상하라고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지만, 홈플러스는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손해액 전액을 배상받을 수 있는지는 또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한 입점 상인과의 보상 협의에서 "월 매출의 30%를 순이익으로 보고, 최대 6개월치의 순이익을 보상하는 게 최선의 영업 손실 보상안"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상인은 KBS에 "근거도 알 수 없는 터무니없는 보상안"이라며 "말은 공손하게 하지만, 이 보상안을 받지 않으면 채권단으로 넘어가고 그럼 더 어려워진다, 이게 최대인데 받을 거냐 말 거냐라는 식의 강압으로 느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가 가능한 기간이 몇 년이 남았든 관계없이 최대 6개월치의 이익만 보상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어제도 새 가게 자리를 알아보느라 부동산 다섯 곳을 돌았는데, 이 정도 보상금으론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입점 상인들은 홈플러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배선경 변호사(법무법인 여름)는 "2018년 10월 개정된 상가임대차법에 따라, 임차인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 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다만 법원은 임대차 계약 해지 후의 장래 영업이익 전체를 손해배상으로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임대차 계약이 해지된 이후에도 임차인이 다른 곳에서 영업하거나 취업해 손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점포에서 영업을 못하게 됨으로 인한 수입 감소분 전체가 손해배상 대상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례가 있다는 겁니다.
배 변호사는 "임대인의 위법 행위(폐점 결정에 따른 퇴거 요구)로 인해 '10년간 안정적으로 영업할 기회' 자체를 상실한 것에 대한 손해를 다른 방식으로 입증하고 청구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상인은 홈플러스가 통상 1년 단위로 체결하던 전대차 계약을 올들어 1개월 단위의 '인도유예 합의서' 형식으로 바꾼 것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폐점으로 상인들이 영업하지 못하게 됐다면, 홈플러스는 남은 계약 기간에 해당하는 영업 손실을 보상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가 남은 계약 기간을 최소화해 보상 부담을 덜고자, 전대차 계약 기간을 미리 1개월로 바꾼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다.
한 입점 상인은 "1년짜리 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난 5월쯤 홈플러스에서 찾아와 1개월 짜리 '인도유예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면서 "서명하지 않으면 영업이 불가능하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응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1개월 단위 '인도유예 합의서' 작성은 모든 입점주가 아닌, 기존 전대차 계약이 종료된 일부 입점주들에 한해서 진행된 것"이라며 "임대료 협상 때문에 (점포의) 영업 계획이 확실치 않아 1년짜리 재계약을 맺을 수 없음에 따라, 입점주들의 요청을 반영해 계약 종료가 아닌 인도유예를 통해 지속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편의를 제공한 것"이라고 KBS에 밝혔습니다.
배선경 변호사는 "인도유예 합의서가 실질적으로 임대차의 주요 요소(목적물, 사용·수익권, 대가 지급 등)를 갖추었다면, 전대차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1개월 단위 전대차 계약 요구는 상가임대차법상 임차인 보호를 저해할 수 있어 강행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폐점 아직도 믿기지 않아…무책임한 MBK, 정치권이 나서 달라"

직원들과 입점 상인들은 갑작스런 폐점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홈플러스 원천점에서 근무한 추연경 씨는 "늘 여기서 정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너무 막막하다"면서 "많은 분들이 폐점이 안 되게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습니다.
한 입점 상인은 "대통령과 정치권에서 폐점을 막아주셨으면 한다"면서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 하신 말씀을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지난 5월 1일 비전형 노동자 간담회에서 홈플러스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기업 회생에 들어간 홈플러스 직원·입점 점주들의 시위 소식과 마트 온라인 배송 노동자들의 사정을 민병덕 의원에게 듣고 "눈물 안 나게 해야지 뭐"라고 말한 겁니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안수용 지부장도 지난 3일 대통령실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이 사태는 한진해운 파산, 쌍용차 해고처럼 국가적 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며 "지금이 바로 정부가 나서야 할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노조는 점포 폐점과 구조조정 중단, MBK의 기업회생 시도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철저한 조사와 제재, 정부 주도의 홈플러스 M&A 추진이 필요하다며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에 대한 정치권의 견제와 압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셉니다.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은 "MBK가 투자하면 홈플러스 15개 점포는 폐점하지 않아도 되며, 수익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면서 "MBK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은 MBK의 역할없이 현장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김병주 회장을 반드시 국회 청문회에 세워 책임을 묻겠다며 투쟁을 이어가겠단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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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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